디즈니의 작품이 아니었더도 이런 효과가 났을까. 영화 ‘알라딘’을 보는 내내 ‘이건 디즈니였기에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11일 기준 관객수 950만명을 넘어선 것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실사판인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보며 머릿 속으로만 그렸던 판타지를 구현하고 완성해 준다. 알라딘(메나 마수드),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 램프 속에서 나온 푸르른 모습의 지니(윌 스미스). 이들의 연기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짙은 향수가 밀려온다. 27년 전 애니메이션을 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재밌는 꿈을 꿨을 소년, 소녀들이 어른이 돼 그들을 직접 만난 것과 비슷한 효과다. ‘매직 카펫 라이딩’ 열풍까지 일어난 이유도 마찬가지다.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가 마법 양탄자를 타고 ‘A Whole New World’를 부르며 하늘을 날아 다니는 장면은 많은 화제가 됐다. 굳이 4DX로 보지 않더라도 그들과 함께 양탄자를 타고 날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애니메이션에선 느낄 수 없던 황홀한 경험이랄까. 결국 이 모든 효과는 1923년 설립된 후 오랫동안 콘텐츠를 만들어 온 디즈니가 아니면 누구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것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쌓아올린 디즈니 제국의 힘이 폭발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디즈니의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내 박스오피스도 이미 디즈니거나, 디즈니가 아니거나로 나눠지고 있다. 11일 기준 1~4위 중 3위를 제외하곤 모두 디즈니와 연결된다. ‘알라딘’뿐만 아니라 ‘토이스토리 4’ ‘스파이더맨:파프롬홈’까지 말이다. 토이스토리는 픽사, 스파이더맨은 마블이 제작한 건 맞다. 그러나 디즈니가 픽스와 마블을 인수하지 않았던가. 이뿐 아니라 ‘라이언킹’ 실사판도 오는 17일 개봉한다. 줄줄이 쏟아지는 디즈니 작품들의 제목만 봐도 위축된다. 원작 자체가 세계적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 받아오지 않았던가. 여기에 무궁무진하게 변신을 시도하는 ‘스토리 리부트(story reboot)’ 전략까지 더해졌으니 더 두렵다. 우리는 이 거대한 공세를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디즈니의 몸집은 우리가 인식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앞서 언급했듯 ‘어벤져스’ 등을 만드는 마블,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의 픽사도 디즈니 산하에 있다. 여기에 ‘스타워즈’ 등을 만든 루카스 필름, ‘엑스맨’ ‘아바타’ 등의 20세기 폭스까지 모두 디즈니가 사들였다. 전 세계 대중들이 즐겨온 콘텐츠, 캐릭터 대부분을 디즈니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이 갈수록 더 막강해 지는 건 콘텐츠를 대중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순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처럼 20~30년전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을 다시 꺼내든 것이 대표적이다. 디즈니는 2014년 ‘말레피센트’를 시작으로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등을 실사로 만들었으며, ‘인어공주’ ‘뮬란’ 등도 제작을 앞두고 있다. 최근 ‘인어공주’ ‘뮬란’의 캐스팅이 발표되자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며 화제가 된 것은 실사판에 대한 대중의 커다란 관심을 증명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쯤 자신의 감정과 꿈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투영해 보았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는 데 눈길을 줄 수 밖에 없다.

다른 제작사에서도 이런 걸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어공주’ 등은 디즈니가 캐릭터화 하기 이전부터 동화 속에 존재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화속 인어공주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인어공주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 캐릭터의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있는 디즈니만이 실사판을 만들었을 때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작업이 더 두려운 건 아빠, 엄마와 함께 이 실사판을 본 아이들이 자라나 먼훗날 디즈니가 내놓을 또 다른 버전의 작품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환의 고리는 콘텐츠 왕국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 되고 있다.

게다가 디즈니는 이 변화를 영리하게 이뤄내고 있다. 이번 ‘알라딘’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자스민 공주의 능동적인 태도였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수동적 여성상은 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인어공주’ 실사판의 주인공으로 흑인인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 한 것도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백인으로만 주로 채웠던 점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깊다. 아직 작품 안에서의 실질적인 변화가 매우 크다고 말하긴 어렵다.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는 왕이 될 수 없는 여자지만,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장군 하킴에게 충성심을 호소하는 정도다. 백성들을 위해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모습도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디즈니가 그동한 꾸준히, 그리고 치밀하게 변화를 시도해 온 것을 떠올려 보면 이 또한 점차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디즈니는 90년전 만들어낸 ‘미키 마우스’의 형태를 계속 바꿔왔다. 대중들은 쉽게 인지하지 못했지만, 디테일한 작업을 해왔다. 처음엔 까만 동그라미로만 그려졌던 눈에 하얀 동그라미 바탕을 더하고, 또 시간이 흘러 눈썹을 붙여 표정 변화를 정밀하게 보여줬다. 보다 감정 이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키마우스의 성격도 바꿨다. 처음엔 좀 급하기도 하고 약간의 폭력성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온화한 성격으로 고쳐 나갔다.

연말이면 디즈니가 넷플릭스와 같은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도 선보인다. 대량의 콘텐츠에 새로운 플랫폼까지 갖춘 디즈니의 화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가늠조차 하기 힘든 거대한 문화패권 앞에서 우리는 서둘러 길을 찾아야만 한다. 대중들의 꿈과 환상을 송두리째 빼앗길 순 없지 않은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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