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기방도령’에서 방년 25세의 괴짜 도인 육갑 역을 연기한 배우 최귀화./ 사진제공=판씨네마(주)
영화 ‘기방도령’에서 방년 25세의 괴짜 도인 육갑 역을 연기한 배우 최귀화./ 사진제공=판씨네마(주)
영화 ‘기방도령’(감독 남대중)은 폐업 위기에 처한 기방 ‘연풍각’을 살리기 위해 조선 최초의 남자 기생이 된 꽃도령 허색(이준호 분)이 조선 최고의 여심스틸러로 등극하면서 벌어지는 코믹 사극이다. ‘기방도령’에서 최귀화가 분한 ‘육갑’은 ‘육십 간지에 통달한 갑(甲) 중의 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현실은 짠내가 풀풀 나는 ‘을(乙) 중의 을’이다. 방년 25세의 숫총각인 육갑은 우연히 만난 허색과 기방결의를 맺은 뒤로 ‘연풍각’의 든든한 식구가 된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기방도령’ 웃음의 8할을 책임진 최귀화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육갑의 첫 등장은 임팩트가 강했다. 훨씬 말끔한 모습이긴 하지만 tvN 드라마 ‘미생’의 박대리 역이 겹쳐지기도 하고.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떠했는지?

최귀화: 사실 좀 부담이 됐다. 노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감독님한테도 말했고. 그런데 감독님이 단호했다. 이 장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그래서 집사람과 상의를 했는데 하지 말라고 하더라. (웃음) 그 장면 때문에 안 할 수는 없고. 그래서 대안을 찾은 것이 대역을 쓰는 것이었다.

10. 육갑이라는 인물을 어떤 식으로 접근했나?

최귀화: 일단 시나리오에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잘 쓰여 있었다. 육갑의 행동들을 보면 어떤 성격이겠구나 바로 알 수 있어서 내가 크게 덧붙인 것은 없다. 조금 첨부한 부분들은 있다. 육갑이 원래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허색이 해원(정소민 분)을 만나고 육갑에게 “떡쇠”라고 부르면서 도와달라는 사인을 보내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내가) 갑자기 사투리를 썼다. 한 번 사투리를 썼기 때문에 해원쪽 측근을 만나면 계속 써야 하는 상황이 현장에서 만들어졌다. (웃음) 감독님도 재미있다고 하셨다.

10. ‘기방도령’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의 적어도 8할에 육갑이 존재한다. 지금껏 해왔던 역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던데.

최귀화: 감사하다. (웃음)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웃음을 주는 역할은 처음이다. 굉장히 부담이 됐다. 다만 긴 시간 유명한 작가들의 코미디 작품을 공연으로는 많이 했다. 코미디는 작가의 색깔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어떤 작가는 상황으로, 어떤 작가는 대사로 재미를 준다. 그런 경험을 다년간 하다 보니까 코미디를 했을 때 재미가 있고 없고의 판단 기준은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처음 볼 때 재미있게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첫 공개라는 부담감 때문에 긴장이 된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부담감 없이 봤다. 내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어서 적잖이 민망했던 상황이었다.

10. 육갑은 걸인(乞人)처럼 보이지만 고려 왕족 출신이다.

최귀화: 대본상에는 전사(前史)가 없었다. 그냥 마냥 저냥 웃기기만 한 캐릭터였다. 그렇게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육갑한테 전사를 좀 줬으면 좋겠다고. 고려 왕족 출신으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고려가 망하고 긴 시간 숨어살 수밖에 없는 시간을 겪다가 산속에서 허색을 만나서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는 쪽으로 해보자고. 육갑은 왕족 출신이라서 허색이나 난설(예지원 분)을 낮게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첨부가 된 것이다.

10. 육갑피셜에 근거하면, 고려 왕족 출신에 방년 25세에 거기에다가 숫총각이다. 특히 고려 왕족 운운하는 대목은 육갑의 농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귀화: 나는 연기할 때 진짜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 감독님도 그것을 믿지 않으셨다. 끝까지 인정을 안 하셨다. “귀화씨,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였다. 그 누구도 믿지 않고, 나만 믿는. (웃음)

영화 ‘기방도령’ 스틸컷.
영화 ‘기방도령’ 스틸컷.
10. 극 중 육갑이 자신을 “육십 간지에 통달한 갑 중의 갑”이라고 소개하지만, 현실은 을 중의 을이다. 짠내가 풀풀 나는. ‘부산행’(2016)의 노숙자 역도 얼핏 스칠 만큼.

최귀화: 나도 분장하기 전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분장을 하고 나니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싶었다. 아무래도 뭔가 어울리는 부분이 있으니까 감독님들이 자꾸 찾는 것 같다. 정우성 형한테는 이런 역할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역할을 그만해야 하는데… ‘기방도령’을 끝으로 자제하려고 한다. (웃음)

10. 허색과 육갑, 즉 이준호와 최귀화의 브로맨스가 돋보였다. 현장에서 두 사람의 호흡은 어떠했는지?

최귀화: 좀 놀랐던 부분이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갑자기 사투리를 쓰는 상황이었다. 보통 상대 배우들이 당황하는데 준호씨가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하기는커녕 내 에너지를 받아서 그 에너지를 소화시키고, 나한테 다른 에너지를 주더라. ‘이 배우가 진짜 보통 배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촬영 전부터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10. 육갑도 특유의 매력으로 남자 기생이 되었다면, 허색과 콤비 플레이로 색다른 웃음을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최귀화: 그 제안도 감독님한테 드렸다. 연습생들처럼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해서 그런 장면도 넣었다가 빼기도 하고…. 감독님이 육갑이 그렇게까지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10. 육갑과 난설의 케미가 좋아서 외전이 있어도 흥미로울 것 같다. 야릇하면서도 코믹한, 엇박의 무언가가 나올 것 같다.

최귀화: 감독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 있다. 만약에 우리 영화가 혹시라도 잘 되면 2편이 있는데 제목이 ‘기둥서방’이라고. 난설이 다른 도시에 가서 기방을 차리고, 육갑이 기둥서방을 하는 내용이다.

10. ‘기방도령’엔 오래 전 TV에서 봤던 마당놀이의 웃음 코드가 있다. 허색과 육갑처럼 캐릭터의 특징을 압축한 듯한 작명도 그렇고.

최귀화: 맞다. 원초적인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우려한 부분도 사실 없잖아 있었다. 마냥 웃기기만 해서는 좋지 않아서 육갑에게 전사도 주고, 성격도 고집도 있는 걸로 첨부했다.

최귀화는 징글징글할 만큼, 본격 액션이 주가 되는 인물도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판씨네마(주)
최귀화는 징글징글할 만큼, 본격 액션이 주가 되는 인물도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판씨네마(주)
10. 당신의 이글이글한 눈빛에서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의 감정 친구 중에서 버럭(앵거)의 모습이 겹쳐진다.

최귀화: 그런가? 생각을 못했는데 듣고 보니까 음….

10. 올해만 해도 ‘말모이’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기방도령’까지 벌써 3편의 개봉작을 가지고 있는 대세 배우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가 있다면?

최귀화: 본격 액션을 안 해봤다. 정말 징글징글한 액션들, 그런 액션이 주가 되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10. 올해로 데뷔 23년차 배우다. 단역을 거쳐서 조연 그리고 이렇게 주연까지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최귀화: 지금도 내가 대단히 잘됐구나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그냥 연기가 너무 좋아서 극단에 들어갔고, 그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갑자기 아빠가 되면서 생계형 배우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 부담감으로 힘들어서 연기가 재미없어졌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작품들 반응이 좋아서 성장을 해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사실 큰 계획은 없다. 지금처럼 작품마다 최선을 다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10. 개인적으로는 ‘미생’의 박 대리처럼 그 인물의 심장 박동이 바로 앞에서 들리는 듯한 역할로 작품에서 다시 만나고 싶기도 하다.

최귀화: 휴먼극을 되게 좋아한다. 항상 대본을 받았을 때 내가 끌리는 것은 사람 냄새 나는 휴먼극이다. 그래서 그런 갈증을 해소하려고 작년에 tvN 단막극 ‘진추하가 돌아왔다’를 했다. 사실 그런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에서도 ‘진추하가 돌아왔다’ 같은 작품이 있다면 도전하고 싶다.

10. 다음 작품은 OCN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이다. 그간의 역을 짚어보면, 국가의 녹을 받는 직업군과 유독 인연이 깊지 않나?

최귀화: 그렇다. ‘달리는 조사관’은 휴먼 조사극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진정이 들어오면 그것을 조사해 나가는. 거기서 나는 검사 출신인데 빈말을 못해서 좌천이라고 할까 인권위로 발령이 되고 거기서 베테랑 조사관들과 같이 협업을 하면서 진정한 조사관이 되어가는 역할이다. 진한 휴먼극이라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 끝으로, 좋아하는 배우 혹은 연기가 있다면?

최귀화: 브래드 피트를 좋아한다. 외모 때문에 약간 저평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뛰어난 배우다. 작품마다 엄청난 노력을 하고, 감정의 폭도 깊고 넓고, 정말 완벽한 배우다. 외모부터 연기, 역할까지. ‘넘사 배우’인 것 같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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