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가고싶다 소풍길 (사진=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가고싶다 소풍길 (사진=KBS)


한강 옆으로 아차산이 우뚝 지키고 있고,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널찍하게 자리한 서울 광진구. 나들이 오가는 사람들 덕에 더욱더 활기찬 동네, 능동 광장동. 김영철은 어린 시절 소풍날을 생각하며 아내가 싸준 김밥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스물여섯 번째 동네 한 바퀴 여정을 시작했다.

1973년, 국내 최초의 놀이공원으로 세워져 어린이들에겐 꿈의 공간이었던 서울 어린이대공원. 그 시절을 떠올리며 배우 김영철은 야심 차게 놀이동산부터 찾았는데, 사실 보기와는 다르게 그는 무서운 놀이기구 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김영철이 선택한 놀이기구는 과연 뭐였을까.

추억의 팔각당을 지나 걷다 보면 오래된 석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부인이었던 순명효황후 민 씨의 능 ‘유강원’ 옆에 세워져 있던 석상들이다. 이처럼 어린이대공원에는 ‘능동’이라는 동네 이름의 배경이 된 역사도 숨겨져 있다. 드디어 소풍 날 빠질 수 없는 김밥을 먹는 시간. 아내가 김영철의 입맛에 딱 맞춰 정성껏 싸 준 ‘콩나물 고추장 김밥’을 꽃잎 흩날리는 나무 아래 앉아 먹다 보니, 그 시절 같이 소풍 왔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보고 싶어진다.

광진구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라고 알려진 수령 7백살 느티나무도 있다. 둘레 7m의 몸집을 자랑하는 이 나무는 말을 관리하던 관청이 있던 세종대왕 때 말 목장 위에 정자를 짓고 말들이 노는 광경을 즐기던 때부터 심겨 있었다고 한다. 동네의 역사를 훤히 다 알고 있는, 광진구 최고령 토박이다.

아찔한 40m 높이의 고가 사다리차 훈련이 한창인 소방서 앞을 지나던 배우 김영철. 그런데 고가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이는 여성 소방관(주현진 대원)이다. 소방관인 아버지를 존경해 그 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는데,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김영철도 뒤로하고 구급차로 뛰어가는 대원들. 아무 일 없는 평온한 하루하루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소방대원 같은 이들이 있기 때문임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젊음이 넘치는 대학가를 걷다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이 있다. 건대 앞 작은 샌드위치 집이다. 10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며 그때 먹었던 일명 ‘필리 샌드위치’(필라델피아 샌드위치)를 한국에서 팔게 되었다는 주인. 벽면 가득 빼곡한 메뉴 중 ‘인완군 샌드위치’, ‘장교수님 샌드위치’, ‘스티브 샌드위치’ 등 사람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단골손님 취향에 맞춘 레시피로 만들어진 특별 메뉴들이란다. 그런데 간판 이름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 알고 보니 미국에서 만났던 옛 연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맘속에 간직한 채, 광진구 그 동네 모퉁이에선 오늘도, 누군가의 옛사랑이 샌드위치를 굽는다.

배도 채웠겠다, 배우 김영철은 광진구를 지키고 있는 아차산 생태공원으로 향한다. 초입에서 만난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 조각상은 광진구가 고구려의 유적지였음을 말해 준다. 590년 고구려 장군 온달이 신라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산길 따라 올라가다 작은 논에서 맨발에 고사리손으로 모내기 체험하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김영철도 일일 농부들을 도와 벼를 심어본다. 아차산생태공원은 아이들의 훌륭한 학습장일 뿐 아니라 일상에 지친 어른들을 위로하는 쉼터다. 아차산 둘레길 한쪽, 구불구불 용트림하며 자란 명품 소나무들이 예술인 솔숲을 만난 김영철은 솔 향기에 취해 잠시 벤치에 누웠다 잠이 든다. 회색빛 콘크리트 숲이 전부라 생각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렇게 싱그러운 오아시스 같은 힐링 명소들을 곳곳에 품고 있다. 우리가 지나치고 찾아가지 않았을 뿐.

광장동 주택가에 접어들면 도로와는 다른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예쁜 쇼윈도 안에서 젊은 여자가 포커 카드를 휙휙 던지며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신기해서 들어가 보니 전직 카지노 딜러가 만드는 앙금꽃 떡 케이크 가게란다. 요즘 잘 나가는 케이크는 일명 ‘돈 말이 효도 케이크’ 대개 SNS로 케이크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제로페이를 이용해 휴대폰 하나로 간편하게 케이크값을 계산하고 찾아간다.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트렌드가 기발하다. 용돈 케이크에 신선한 충격과 감명을 받은 김영철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아들에게 주문한다. “앞으로 다른 선물은 필요 없다. 용돈 케이크로 해라“

‘옛 맛’을 내세운 소박한 간판을 발견한 김영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려 들어가 본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밥집은 79세, 81세 노부부가 운영하는 산나물 밥집이다. 식물 사진들을 평생 찍어 슬라이드로 만든 열혈 식물학자 주인장이 1968년부터 약 50년 넘게 모아온 슬라이드 필름들이 식당 한쪽을 채우고 있다. 몇 가지 안 되는 메뉴판 중, 충청도 사투리 올갱이를 그대로 써넣은 ‘올갱이 장국’과 엄나무 잎, 곰취, 줄기상추, 가시오갈피, 산 두릅 등 귀한 산속 나물이 차려지는 정식이 이 집의 간판 메뉴다. 아버님의 식물 지식에 어머님의 손맛까지 더 해진 이 밥상,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보물 밥상이다.

박미라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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