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배우 이동휘./사진제공=화이브라더스
배우 이동휘./사진제공=화이브라더스
드라마응답하라 1988’ 이어극한직업’(2018)까지 잘됐어요. ‘응답하라 1988’ 때도이렇게 인기를 얻을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극한직업까지 잘되니 말도 되는 같더라고요. 진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입니다.”

2013년 데뷔한 배우 이동휘는 그새 ‘대박 작품’을 두 번이나 만났다. 그런데도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겸손함을 먼저 되새겼다. 그가 1600만 관객을 모은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 이후 선보이는 작품은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어린 의뢰인’(감독 장규성)이다. 평범한 변호사 정엽 역을 맡아 학대 당하는 다빈(최명빈 분), 민준(이주원 분) 남매와 우정을 이어간다.

‘어린 의뢰인’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동휘는 넥타이까지 갖춰 맨 정장 차림이었다. “처음 만난 분도 있을 텐데, 예의 있게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마음 씀씀이가 섬세한 배우다.

10. 코미디 영화 ‘극한 직업’ 이후 아동학대 사건을 담은 영화 ‘어린 의뢰인’을 선택한 이유는?

이동휘: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안 좋았다. 정엽(이동휘)처럼 정의로운 역할은 어느 배우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겠지만, 배우로서 내 역할보다 시나리오에 마음이 움직였다. 아동학대에 관한 기사를 영화를 찍기 전에도, 찍으면서도, 홍보하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영화보다 더 어려운 현실이 있다는 게 아팠다. 배우로서의 성취보다는 사건을 보고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10. 정엽처럼 ‘사는 게 바쁜 시절’에 ‘어린 의뢰인’을 만났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기였는지 궁금하다.

이동휘: ‘어린 의뢰인’은 어떤 시기에 만났어도 하고 싶고, 했어야 할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생각이 많은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됐다. ‘부라더’라는 작품을 끝내고 1년 정도 원치 않은 휴식을 가졌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갖게 된 휴식기가 아닐까 한다. 원래 내가 고민이 많은 편인데, 그때는 좀 더 고민이 많았다. ‘나는 연기로 뭘 보여주고 싶은 걸까’ ‘내 초심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고민하던 때였다.

10. 질문에 대한 답은 얻었나?

이동휘: 아이들을 보고 얻었다. 휴식기를 갖고 나서 실제로 아이들과 촬영하는데 선물 같은 시간을 받았다. 아이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초심을 떠올렸다. 연기에서 빠져나와서도 그랬다. 명빈(다빈 역)이와 주원(민준 역)이가 촬영을 안 할 때에도 너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아이들과 끝도 없는 넌센스 퀴즈를 하는 과정을 통해서. (웃음) ‘어떻게 이렇게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있는 걸까’ 궁금했다.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에 휩싸이지 말고 아이들의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연기를 하면서의 설렘,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의 떨림 같은 것 말이다. 아이들에게 고맙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컷.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컷.
10. 자신을 알린 ‘응답하라 1988’부터 전작인 ‘극한직업’까지 코믹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이번 작품으로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

이동휘: 꾸준히 진지한 연기도 해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KBS 단막극 ‘빨간 선생님’을 출발로 스스로는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나는 지금 만약 정상이란 게 있다면 거기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보다 나중에 50대, 60대가 돼 받는 평가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행복하게 하나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대중이 내 코믹한 이미지를 원하는 걸 떠나서 날 봐주는 감사함이 더 크다.

10. ‘선생 김봉두’ 등을 만든 장규성 감독이라 그런지 극 초반에는 코믹하게 환기되는 장면도 많았다.

이동휘: 그렇다. 연필깎이 통이 쏟아지는 신을 자주 말하고 다니는데, 그 장면이 애드리브였다. 기적처럼 정확한 궤도를 그리며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촬영해 아이들(최명빈, 이주원)에게 보여줬다. 거짓말 좀 보태서 100번을 보여줘도 100번을 웃더라. 아이들은 참 대단하다.

10. 극 초반 아이들과 붙는 장면도 좋았지만 고수희와의 남매 케미가 특히 좋았다.

이동휘: 고수희 선배와는 영화 ‘타짜2’에서 만났는데 그 전부터,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친근한 남매로 나와서 너무 좋았다. 촬영장에 선배만 오면 너무 기뻤다. 집안에서 모습은 친근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대화를 통해서 많이 맞춰갔는데 선배가 정말 다 받아줬다. 수희 선배님과의 장면은 참 만족스럽다. 선배가 극 중 다빈을 안아줄 때도 참 좋았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펑 맺혔다. 처음으로 운 장면이었다.

10. 연기는 훌륭했지만, 정엽이 변화하는 장면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동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정엽이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겨서 생긴, 사소한 것을 놓친 상실감과 슬픔이 변화의 매개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것을 놓쳤을 때 올라오는 감정은 더 크게 느껴지지 않나. 내가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아하는 장면이 정엽이가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부분이다. ‘못난 어른이라서 아저씨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고, 또 괜찮다고 말을 해줘야 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서 이 영화에 나왔다.

아이들과 연기하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됐다는 배우 이동휘./사진=화이브라더스
아이들과 연기하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됐다는 배우 이동휘./사진=화이브라더스
10. 앞서 ‘초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에게 ‘초심’이란 ‘응팔’ 이전, 영화사에 프로필을 돌리던 그 시절의 마음을 말하는 건가?

이동휘: 그렇다. 그런데 프로필을 돌려서 오디션을 보고 이런 과정들이 너무나 행복한 힘듦이었다. 리딩하는 날이 너무 기다려지고, 리딩이 끝나면 또 촬영날이 너무 기다려지는 그런 것들. 초심을 잃었다기보단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거기 미치지 못하면서 뒤로 밀렸던 설렘이 좀 있었던 것 같다. 배우가 아닌 다른 직업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것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부담감 때문에 진짜 설렘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나. 아이들처럼 순수한 설렘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10. ‘극한직업’으로 ‘1000만 영화’의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동휘: 없다. (웃음) 그 스코어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아서 감사할 뿐이다. 그런 큰 사랑을 나는 ‘응팔’ 때도 받지 않았나. 이렇게 한 번 더 받는다는 게 놀랍다.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을 때도 ‘이런 사랑 (다시)받기가 힘들 거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한 번으로도 감사한데 한 번 더 받으니, 더 겸손해지고ㅤ더ㅤ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일을 이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다. 너무 설명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았다.ㅤ아직도 잘 믿기질 않는다.

10. ‘극한직업’ 흥행 이후 ‘어린의뢰인’을 비롯해 ‘국도극장’ ‘출국심사’ 등 작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앞으로 경력이 쌓여도 작품만 좋다면 작은 영화에 출연할 건가?

이동휘: 당연하다.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찍은 순서를 말하자면 ‘극한직업’을 찍고 ‘국도 극장’을 찍고, ‘어린 의뢰인’을 차례대로 찍었다. 작품 규모부터 내용, 역할 크기도 많이 다르다. ‘더콜’에도 나오는데 조연이다. ‘부라더’ 끝나고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이때의 선택들이 내가 앞으로 촬영하는 데 영향을 많이 끼칠 것 같다.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향성이 옮겨가고 있다. 이번에 유선(지숙 역) 선배를 보고도 많이 생각했다. 아이의 엄마이고,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까지 맡은 분인데 악역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위해서 힘든 선택을 한 거다. 선배의 선택이 앞으로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데도 영향을 미칠 거다.

10. 뜬금없지만 질문하고 싶다. 오늘 넥타이까지 꼭 여미고 등장했다. 원래 옷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나?

이동휘: 그건 아니다.(웃음) 평상시에는 더 편한 차림이다. 인터뷰는 아무래도 처음 보는 분들이 많으니까 넥타이를 좀 더 단정하게 하고 만나는 게 좋지않을까 해서 집에서 이렇게 한번 입고 나와봤다. 다른 일정은 없다. 오직 인터뷰 때문에 입었다. (웃음)

이동휘는 ‘어린 의뢰인’에서 아동학대사건을 해결하려는 정엽 역을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고, 정의의 기사가 아니고, 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사진제공=화이브라더스
이동휘는 ‘어린 의뢰인’에서 아동학대사건을 해결하려는 정엽 역을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고, 정의의 기사가 아니고, 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사진제공=화이브라더스
10. ‘어린 의뢰인’은 좋은 어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나?

이동휘: 아니다.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다. 작품을 통해서 느낀 건, 먼저 아이들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거였다. 아이들에게 약속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참 아이들과의 약속은 쉽게 넘어간다. 약속에 대한 무게감을 찾는 것만으로 소중한 일이 아닐까.

10. ‘어린 의뢰인’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나?

이동휘: 그냥 늘 생각해오던 게 있다. 늘 밝은 부분만 봐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어두움과 마주하고 그걸 거울 삼아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어린 의뢰인’을 통해 거창한 걸 바라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작은 실천들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마음이다. 우리 영화가 아동학대 근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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