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배심원들', 법조계 매너리즘을 뒤흔든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지성
오는 15일 개봉하는 홍승완 감독의 영화 ‘배심원들’(사진)은 법과 재판이란 딱딱한 소재를 부드럽고 감동적으로 그린다.

2008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핵심 사건들의 판결을 모아 재구성했다. 할머니, 취업준비생, 스타트업 대표 등 나이와 직업이 제각각인 일반인 8명이 재판 당일 배심원단으로 선정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증거와 증언, 자백이 확실한 살인 사건으로 양형 결정만 남아 있는 재판에서 피고인이 갑자기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배심원들은 예정에 없던 유무죄를 다투게 된다. 역사적 재판을 이끄는 신념의 재판장(문소리 분)과 법은 몰라도 상식을 지키고 싶은 배심원들이 대립하면서 재판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법이란 무엇인지 환기시킨다. 일반인을 대변하는 한 배심원(박형식 분)은 “법이란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고, 재판장은 “법이란 제멋대로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배심원과 재판장은 각자의 진술과 다른 입장에 처한다. 재판장은 법의 취지와 달리 익숙한 관습에 따라 피의자를 처벌하려고 한다. 법의학자도 성심껏 살피지 않고 안일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모두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 까닭이다. 영화는 권위자와 권력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커다란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배심원들의 행동을 통해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는 것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점도 보여준다. 배심원들은 처음에는 빨리 귀가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점차 책임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영화는 국민참여재판이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제도라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한 배심원이 의문을 제시하면 그것이 다른 배심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여러 배심원의 견해와 시선이 모였을 때 진실과 인권을 향해 한걸음 전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형식이 우연히 감방에서 죄수를 만나는 장면은 배심원의 지위와 역할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밝은 곳에서 어둠에 갇힌 죄수를 두려움과 연민이 섞인 눈길로 바라본다. 배심원이란 피의자를 한 번 더 살펴보는 존재라는 의미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