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마지막 시리즈인 ‘어벤져스 엔드게임’.  /마블 제공
어벤져스 마지막 시리즈인 ‘어벤져스 엔드게임’. /마블 제공
어느 영화의 ‘쿠키영상’이 이토록 화제가 된 적이 있을까.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첫날인 지난 24일. 포털 사이트엔 영화 제목이 아니라 ‘어벤져스 엔드게임 쿠키영상’이 종일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쿠키영상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간 뒤 공개되는 짧은 영상이다. 마블은 2008년 ‘아이언맨’ 이후부터 작품당 1~2개의 쿠키영상을 제공했다. 대부분 후속작에 관한 작은 힌트를 담았다. 네티즌 사이에선 엔드게임 쿠키영상 때문에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영상 내용에 관한 게 아니었다. 쿠키영상 자체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 영화가 ‘어벤져스’ 시리즈 마지막 편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쿠키영상이 없다는 소식을 접한 마블 팬들은 ‘정말 끝인가’ 하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들에게 쿠키영상은 징표였다. 히어로가 돌아올 것을 약속하듯 남긴 상징과도 같았다. 이를 손에 꼭 쥔 채 일상 속에서 거친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다시 ‘짠’ 하고 나타나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22번째 히어로물이자 어벤져스 마지막 시리즈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아이언맨’부터 이어진 히어로 이야기를 총망라한 것만이 아니었다. 이들과 함께 켜켜이 쌓여온 대중의 시간과 욕망을 한곳에 모아놓은 영화였다. 아이언맨부터 헐크, 캡틴아메리카 등 히어로들은 작품 속에서 시간 여행을 하며, 그동안 동행해준 팬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듯했다. 관객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남아 이들을 배웅했다.

마블 히어로들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깊다. 그리고 지속적이다. 10년간 한국에서만 1억 명 이상이 히어로를 만났다. 2015년과 2018년 개봉한 작품은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대중은 마블 히어로의 아픔과 성장을 지켜보며 자신을 투사했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던 영웅의 모습을 구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히어로(hero)의 어원은 그리스어 ‘heros’다. 헤라클레스 같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을 의미한다. 즉, 신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처럼 나약한 면도 있다. 왕따 소년 스파이더맨, 감마선 노출 이후 분노 통제가 안 되는 헐크 등 마블 히어로는 대부분 아픔을 지닌 캐릭터다. ‘천둥의 신’인 토르조차 술에 약한 면이 있다.

처음부터 미국 히어로물이 이렇진 않았다. 마블의 아이언맨부터 달라졌다. 이전 슈퍼맨, 배트맨 등 DC 히어로들은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자신이 만든 무기 때문에 세상이 위협받는 걸 목격하고 고뇌했다. 세상과 함께 실패를 맛본 히어로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오랫동안 억눌린 사람들의 자존감은 이들의 활약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나 마음껏 솟아오르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었다.

대중의 시간과 욕망은 작품 밖에서도 작동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다음 이야기를 예상하는 콘텐츠를 고안해냈다. 이번 작품 개봉을 앞두고도 사라질 히어로가 누구일지, 결투 장소가 어디일지 등을 예측하는 글과 영상이 쏟아졌다. 히어로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이들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을 즐기며 콘텐츠의 생동하는 주체가 됐다. 스타워즈 이후 최고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창조)’이 구현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엔드게임’에서 가장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는 순간은 대규모 전투 장면이다. 마블 히어로들이 모두 모여 “어벤져스 어셈블(assemble)”을 외치며 돌진한다. 카메라가 반가운 얼굴들을 하나씩 비출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셈블’도 검색어에 올랐다. ‘집합’ ‘모여라’ 정도로 해석되는데 뜻보다 더 중요한 건 히어로들의 결합이 준 감동이었다. 어벤져스가 끝났다 해도,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히어로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힘을 합쳐 ‘어셈블’할 일 없고, 마음껏 솟아오를 일도 없는 일상을 견뎌내며.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