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TV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선보이는 박찬욱 감독. /사진제공=왓챠

TV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선보이는 박찬욱 감독. /사진제공=왓챠

TV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선보이는 박찬욱 감독. /사진제공=왓챠

영화계 거장 박찬욱 감독이 TV 드라마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지난해 방영된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을 감독판으로 새롭게 편집해 오는 29일 왓챠플레이에서 여섯 편 모두를 공개한다.

‘리틀 드러머 걸’은 스파이 소설의 대부로 불리는 존 르 카레가 1983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북 치는 소년이라는 의미의 ‘드러머 보이’는 서양 전쟁사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독려하는 존재였다. 박 감독은 “주인공인 찰리(플로렌스 퓨 분)가 낭만에 이끌려 참혹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순진한 아이, 혹은 어른들에게 이용 당하는 아이라는 의미에서 ‘리틀 드러머 걸’”이라고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극심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인해 유럽에서 발발하는 테러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극 중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깊은 곳으로 침투하는 작전을 세운다. 이를 위해 무명배우 찰리에게 특별한 제안을 한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인 미셸의 애인 역을 ‘현실에서 연기하라’는 임무를 ‘부탁’한 것. 모사드는 미셸을 붙잡아두고, 요원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분)에게 찰리가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미셸의 대역이 되는 임무를 부여한다. 그러나 서로에게 반해버린 가디 베커와 찰리. 첩보 작전을 위한 연인 연기와 진짜 사랑의 감정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 이야기의 묘미다.

10. 원작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박찬욱: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매료됐다. 베커는 찰리를 사랑하지만 이스라엘 요원으로서 그를 잘 훈련시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애인 역할을 맡겨야 한다. 찰리가 진짜 (사랑의)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적인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미셸을 연기해야 한다. 찰리에게 임무를 준다는 것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험한 곳으로 내몬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커는 찰리에게 자꾸 힌트를 준다. ‘이건 위험한 일이다’ ‘안 해도 된다’. 흔들리는 베커의 정체성(도 흥미로웠다). 찰리는 모험을 사랑하고 대담하다. 베커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임무에 뛰어들었다. 베커가 ‘안 해도 된다’고 할수록 더 하고 싶어한다. 그런 관계가 흥미로웠다.

10. 책을 읽고 영상으로 만들어봐야겠다고 바로 생각했나?
박찬욱: 물론이다. 탐정소설에 셜록홈즈가 있다면 스파이소설에서는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 분)가 독보적 아이콘이다. 내가 소설을 읽고 쿠르츠에게 반한 이유는 그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설계해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화 끝에 찰리와 쿠르츠가 처음 만날 때 쿠르츠가 “내가 이 드라마의 작가이자 프로듀서, 감독”이라고 하는 (원작에 없는) 대사를 새로 썼다. 그 점이 나 같은 직업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도 바로 매료됐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포스터. /사진제공=왓챠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포스터. /사진제공=왓챠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포스터. /사진제공=왓챠

10. 소설을 읽고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면?
박찬욱: 소설에서는 베커가 찰리의 잔다르크 공연을 볼 때 빨간 재킷을 입는다고 돼 있다. 나는 왠지 초록색이면서 스웨이드 소재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찰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 미셸 연기를 하는 베커가 그 옷을 입고 있고, 또 현실에서 베커가 그 옷을 입고 있는 모습, 그것이 글보다 영상일 때 환상의 세계와 진짜 세계가 교차되는 느낌이 더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베커 역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도 미셸을 연기할 때는 약간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 것들도 글로 읽을 때보다 훨씬 실감나게 느껴진다.

10. 플로렌스 퓨,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등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는?
박찬욱: 얌전하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배우가 했다면 찰리 역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플로렌스 퓨의 에너지라면 설득력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이클 섀넌은 변화무쌍한 사람이다. 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유연한 배우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극 중 “(찰리에게) 네가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너를 데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연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10. 그래도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박찬욱: 영화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읽긴 했다.(웃음) 좋은 디테일이 많아 잘라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10. 시즌제로 하는 건 어땠을까?
박찬욱: 시즌제로는 가기 힘든 이야기인 것 같다. 농담으로 스핀 오프 시리즈에 대해서 얘기한 적은 있다. 찰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사회학과 대학원생으로 변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공부밖에 모르게 생긴, 안경을 낀 귀여운 캐릭터로 변장하는데 재밌었다. 플로렌스가 남아공 억양을 잘 써서 이 캐릭터를 가지고 스핀 오프를 만들자고 농담했다. 대학원생으로 변신한 스파이. (웃음)

‘리틀 드러머 걸’의 한 장면. /사진제공=왓챠

‘리틀 드러머 걸’의 한 장면. /사진제공=왓챠

‘리틀 드러머 걸’의 한 장면. /사진제공=왓챠

10. 찰리가 입은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의 드레스, 붉은색 벤츠 등 원색에 가까운 높은 채도의 색을 많이 쓴 것 같다. 색채를 어떻게 구성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박찬욱: 연출진끼리는 ‘단순한 블록컬러’라고 불렀다. 옷, 실내장식, 벽 등에서 선명한 원색을 쓰고, 패턴도 거의 쓰지 않기도 했다. 있더라도 아주 단순하게. 그렇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런던 한복판에서 활동하는 젊은 배우라면 유행에 민감한 사람일 테고, 또한 1980년대를 조금 앞당겨온 설정을 하고 싶었다. 1970년대 주류였던 히피룩은 좀 뒤쳐진 유행이라고 생각해 피하자고 했다. 또한 찰리가 가진 활력과 무모함, 용기, 대담함 등을 표현하는 선택이었다.

10.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나?
박찬욱: 극 중 그리스 해변에서 찰리와 베커가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긴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무막대만 남은 찰리에게 베커가 그걸 달라고 해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 깨알 같은 모습.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고려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로맨스의 긴장은 ‘베커가 찰리에게 잘해주는 게 어디까지가 연기냐’다. 그게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둘의 첫 정사 장면이다.

10. 마음에 들었던 로케이션 장소를 꼽는다면?
박찬욱: 극 중 독일 아우토반 근교의 ‘트랜스모텔’이라는 곳이다.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국) 팀이 계획을 꾸미는 방이다. 실제로는 체코에서 발견한 모텔인데, 방 구조와 색깔이 아주 특이했다. 앵글을 잡을 때, 편집할 때 그 특이한 구조를 잘 써먹을 요량이었는데 잘된 것 같다. 방송판에 비해 감독판에 (특징이 드러나게) 더 잘 편집됐다. 저렇게 생긴 방이 어딨나 싶을 정도로 인위적으로 꾸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긴 방이다. 로케이션 팀에서 ‘여기는 안 고르겠지’ 했던 방을 내가 골랐다. 그 구조를 잘 써먹은 게 자랑스럽다.(웃음)

‘리틀 드러머 걸’ 촬영 현장. /사진제공=왓챠

‘리틀 드러머 걸’ 촬영 현장. /사진제공=왓챠

‘리틀 드러머 걸’ 촬영 현장. /사진제공=왓챠

10.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를 다수 선보였다. 이번 영화도 여성인 찰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별히 여성 서사를 많이 다루는 이유가 있나?
박찬욱: 원대한 계획을 가졌던 건 아니었는데, 남성 캐릭터 위주의 기획들에 대한 투자가 자꾸 미뤄졌다. 여성 중심 서사가 투자자들에게 더 매력적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오랜 시간 공 들여서 각본을 쓴, 완전히 남성적인 이야기 두 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웃음) 다른 사람들보다 여성 서사에 관심을 더 가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아내, 그리고 자식이 딸 하나다. 딸이 성장하니 관심을 더 갖게 되는 이유도 있다. 또한 유능해서 기용했을 뿐인데 계속해서 함께 일하는 주변 동료, 예를 들면 미술감독, 시나리오 작가, 분장팀장, 의상팀장 등 여성이 많아서 그들의 영향도 받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내면이 (남성보다) 좀 더 복잡한 것 같다. 그래서 레이어가 더 풍부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10. OTT 기반 플랫폼에서 드라마가 공개된다. 영화가 이러한 플랫폼으로 공개되는 것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박찬욱: 이것은 대세이고 현실이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는 것뿐이다.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0. 박찬욱의 작품에 기대를 하는 이들은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박찬욱: 등장인물이 엮이는 양상과 그들의 심리가 복잡하다. 단순히 한두 개의 형용사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그런 복합성 때문이 아닐까.

10.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되나? 할리우드 영화 ‘브리건드 오브 래틀클릭’을 연출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박찬욱: 보도된 내용은 맞지만 아직 투자가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영화도 준비 중이다. 로맨스가 가미된 미스터리 수사물이다. 남녀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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