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돈’, 원작 소설을 배신하다

[김영재 기자] 3월20일 ‘돈’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6/5)

영화 ‘돈(감독 박누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가 장현도 작가의 원작 소설 ‘돈’을 부정하는 것에 있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조익현이다. 반면 영화 주인공은 조일현(류준열)이다. ‘익’과 ‘일’의 차이일 뿐이지만, 둘은 같으면서 다르다.

조일현은 부자를 꿈꾸는 이다. 그래서 그는 주식 브로커가 됐다. 하루 평균 거래 대금 약 7조 원. 여의도 증권 시장은 일현이 꿈을 이루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다.

“코스피 종목 코드 죄다 외운 또라이” 일현의 하루는 늘 바쁘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주식 장(場)에 매진하고, 이후 일과는 변 차장(정만식)과 함께 고객 감동을 목표로 발에 불이 나도록 동분서주하는 것. 하지만 이름마저 잘생긴 입사 동기 전우성(김재영)은 출신 성분부터 그를 기죽이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는 몸이 편찮으며, 회사 상사는 짬뽕에 고춧가루가 빠졌다며 오늘도 입맛 타령이다. 매수와 매도를 헷갈리는 일현을 두고 김 부장(김종수)은 1년도 못 채우고 잘리고 싶냐며 호통치기까지 한다.

출근한 지 열 달이 지났음에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조일현. 이 가운데 하늘에서 동아줄 하나가 내려온다. 전설 속 번호표가 나타난 것이다. 줄 서서 번호표 뽑고 기다릴 정도로 증권계의 신화적 존재인 그를, 조익현은 만난다. 전화 지시에 따라 주문만 넣으면 된다는 번호표. 아직도 작동하는 게 신기한 스타택을 열고, 전화 지시대로 매수하고, 계산기로 몫을 확인하고. 별안간 수중에 돈 7억 원이 생긴 일현은 침대에 누워 바보처럼 웃는다. 꿈에 그리던 부자가 된 일현. 이제 그는 세상을 다른 식으로 대하기 시작하는데….
[스포없는리뷰] ‘돈’, 원작 소설을 배신하다

‘돈’은 신선하기보다 익숙한 영화다.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 출신의 주인공,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과 실패, 의문의 인물이 건넨 돈다발 티켓 등, 결국 ‘돈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주제 의식까지 일찍이 다른 작품에서 본 듯한 인상이다. 그 뼈대를 이루는 원작 소설이 재밌는 이유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돈에 대한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작품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인공의 결말을 두루뭉술하게 그리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책은 다음 장이 술술 넘어가는 몰입도로 독자를 놀랜다.

돈에 대한 탐구가 없는 빈자리는 남성이 이성을 탐욕으로 대하는 시선, ‘맹방(盟邦/상호 이익을 떠나 지속적 인간관계까지 이어지는 모임)’ 등 여의도 증권가 용어, 그리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인공이 그의 평범함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등의 몫이었다.

다시 말해 소설 ‘돈’은 남성 독자가 그들의 물욕과 성욕을 이합집산으로 책에 투영하는 데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독자는 증권가를 주름잡고 있는 고려대-서강대 학벌에 맞서는 성균관대 출신 브로커 조익현에 빙의된다. 이어 ‘전과 다른 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암시를 유 과장으로부터 받고, 몸 전체에서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번호표로부터 지령을 전달 받은 뒤, 좌파적 성향을 가진 열성 개혁가 같은 이들에게 원망을 퍼붓는 것은 물론, 사냥개 같은 자로부터 추적의 위협을 느끼며, 결국 누군가의 파멸에 협력한 대가를 온전히 계좌에 예금한 채 새 삶을 시작하기까지의 여정을 고스란히 함께한다.

‘돈’은 탐욕스러운 책이다. 게다가 지극히 남성 지향적 책이다. 그런데 그 소설이 윤종빈 감독이 기획하고, 충무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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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인물과의 대화를 단번에 끊고 그 나머지는 플래시백으로 불러온다든지 하는 연출은 원작을 읽은 이에게는 당황을 불러일으키나, 이는 박누리 감독이 공들여 찍은 소설 파훼법이었으리라. 연출과 함께 각색까지 떠맡은 감독은 장현도 작가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독자와 대화하듯, 일현의 입을 빌어 정보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는 개인의 의지부터, 여의도 일일 유동 인구, 증권 시장 하루 평균 거래량, 브로커와 증권 시장 전반에 대한 이해, 상황 및 등장인물의 전환을 알리는 안내 등이 그것. 총 67회차 중 60회차에 출연한 배우 류준열의 내레이션은 영화와 소설의 경계를 희미케 한다.

다만 원작의 여러 각색은, 특히 주인공 조익현에 가해진 각색은 원작 ‘돈’의 정신을 뒤흔드는 셈이기에 찬반양론을 불러올 듯하다. 다음은 소설 속 조익현의 묘사다.

《조익현. (중략) 다소 멍청해 보이는 뿔테 안경, 옆으로 찢어진 작은 눈과 불그스름한 얇은 입술, 그리고 여성스러운 말투……. 그는 어딘지 모르게 소심해 보이고 기가 죽어 있는 듯했다., 장현도 작가의 ‘돈’(새움출판사, 2013) 中》.

원작의 조익현은 비관적이고, 염세적이고, 세속적인 인간이었다.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 입학 후 농촌 출신을 촌스럽고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이였다. 소위 ‘상대적 가난함’을 깨달은 그는 금융가에서 일하는 자신을 향한 친척들의 반가움을 자격지심과 억지 동질감으로 곡해하며 토악질을 머릿속에 그리는 이였다.

여자친구를 대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사귀어온 연인의 “남편 될 사람” 언급에, 그 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고 하는 이였다. 조선일보보다 한겨레를 좋아하고 부자가 되기보다 가난한 이를 걱정하는 애인에게 지겨움을 느끼는 이.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고 발전보단 정체에 머무르는 이였고, 여의도 건물의 1평조차 그의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물질주의자였다. 또한, 작은 키와 왜소한 어깨, 제멋대로 생긴 이목구비를 언급하는 그는 진실로 외모 지상주의자였다. 그리고 또, 그는 공포와 욕심 사이에서 결국 이익을 좇는 이기주의자였다.

하지만 영화의 조일현은 조익현과 본은 같되 속은 반대다. 아버지 복분자 농사를 돕는 일현은 부모의 일을 도우면서 쉼 없이 구시렁댄다. 허나 “아저씨들 와 가지고 반나절이면 뚝딱뚝딱 할 텐데 이걸 굳이 그냥 당신이 하겠다고. 나 안 왔으면 어떡할 뻔했어” 하는 그의 말 속에는 원망이나 경멸이 없다. 또 그가 그 자신을 경멸하는 이유는 자취방 월세 내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경제적 관념보다,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매수와 매도를 구분 못하는 그의 모자람이 근원에 더 가깝다. 언제나 팀 내 수수료 꼴찌를 도맡아온 익현 및 일현의 주문을 의심하는 회사 동료를 향해 익현은 주문을 정상적으로 넣었음에도 그를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지만, 반면 일현은 머리 굴리지 말고 시키는 대로 주문 넣으라고 한 변 차장의 말을 인용하며 어리바리하게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일현은 생사기로와 정의 사이에서 보란 듯이 영화적 상식을 택한다. 선과 악의 중간쯤 걸터앉은 조익현이 조일현으로 변모하는 고갱이에는 이 영화의 소위 ‘원 톱’ 류준열이 있다. 그의 열연은 조일현과 찰떡궁합이다. 다만 너무 정석을 걷기에 아쉽다. 연출 탓일까, 각색 탓일까, 배우 탓일까. ‘대개 관객은 선한 주인공에 끌린다’란 정석의 선택이 아쉬움을 부른다. 특히 원작의 ‘항해자와 도망자’를 영화 ‘타이타닉’ 대사 ‘난 세상의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 식으로 바꾼 각색은 각색이기보다 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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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찢고 나온 듯한 캐스팅과, 열연이 박누리 감독의 입봉을 축하한다. 조일현에게 “장중에 딱 한 번 울릴 거니까 꼭 받도록 하세요” 하는 번호표를 연기한, 유지태의 어미 처리는 배우 특유의 화법과 맞물려 말에 재미를 부여한다. 특히 슈트, 니트, 야구 잠바 등을 오가며 냉혈한을 표현하는 유지태의 모습엔 영화 ‘올드보이’ 우진이 아른거린다.

6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절제 연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제작진이 원하는 결인지 많이 생각하는 편”이라고 연기관을 전했다. 그렇다면 번호표가 돈놀이를 재미로 여기는 소위 ‘악날한 우진’이 된 이유는 감독에게 있는 것일까. 최근 안타고니스트를 연이어 연기한 유지태다. 이번엔 전사를 특정할 수 없는, 주인공마저 그의 의도를 궁금해 하는 악역으로 관객이 ‘돈’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이유를 마련한다.

돈에 몰입한 나머지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게다가 이마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거래에 몰두하는 조일현을 표현한 류준열도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무채색 외모의 공(功)이 크다. 다만 ‘독전’보다 생동감 있고 활기 넘치는 류준열이 ‘돈’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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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받고 있는 수수료에서 한 천 배 정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그러면 뭐든지 할 수 있겠냐?” 유 과장(김민재)이 조일현에게 건넨 물음이고, ‘돈’의 시발점이다. 인간은 일확천금을 꿈꾼다. 한 방송에서 MC 전현무는 “‘복권 당첨 되면 뭐 할 거냐?’처럼 부질없는 질문이 없다”고 서두를 뗀 뒤, “상상만으로 행복하긴 하다”며 공상에 의한 만족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출연진도 “상상은 해볼 수 있다”며 얼굴에 행복을 내비쳤다.

하지만 일확천금은 생각에 그칠 때가 가장 달콤한 법.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말했다. “역사는 스스로 반복되고 현재는 과거의 또 다른 반복”이라고. 욕망에 충실한 복(福)은 도리어 화가 되어 주인을 덮치곤 한다. 돈을 탐구하기에 앞서 분에 넘치는 욕심은 일상을 깨고, 관계를 해체하며, 낭자한 선혈이 뒤따르는 앙숙의 보복 가능성에 시달려야 함을 ‘돈’은 말하고 있다. 3월20일 개봉. 15세 관람가.(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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