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물음표] ‘돈’ 류준열, 아직 그는 젊기에 (인터뷰)

[김영재 기자] 3월20일 개봉작 ‘돈’ 조일현 役

충무로가 사랑하는 배우 류준열(32)을 만났다. 이름 앞 수식어가 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 허나 영화 ‘택시운전사’ ‘침묵’ ‘리틀 포레스트’ ‘독전’ ‘뺑반’ 그리고 신작 ‘돈(감독 박누리)’까지, 그는 지난 2년간 그 필모그래피를 두툼히 채워온 배우다.

오해는 말라. 앞서 기자는 “무채색 얼굴에 이해영 감독이 원색을 덧칠한 것일 뿐 배우의 공은 아니다”고 ‘독전’에서 영락을 연기한 류준열을 평했다. 사실 tvN ‘응답하라 1988’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기자에게 류준열은 연기력 출중한 배우이기보다 스타덤에 오른 한 신인 배우였다. 특출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나지도 않은 연기력. 젊은 남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충무로에게 류준열의 등장은 고구마 먹은 후 마시는 탄산수와 같았겠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심정은 검정이거나 하양이거나 혹은 회색의 얼굴을 만나는 경계심과, 홍보 차 배우를 만나는 익숙함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요동쳤다.

‘돈’의 주인공 조일현(류준열) 역시 소용돌이에서 신음한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고 하는 일현은, 우연히 신화적 존재 번호표(유지태)를 만나 수수료 0원의 무능한 브로커에서 바하마 계좌에 17억 원이 예금된 성공한 금융인으로 거듭난다. 일확천금은 그에게 기쁨을 주나, 일에 가담할수록 코를 비릿하게 자극하는 주변 피 냄새는 그가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것은 물론, 부모를 구박하는 안하무인으로 만든다. 늘 그렇듯 감정의 기승전결은 그 해소로 끝을 맺는다. 일현의 결단은 그 자신에게 안식을 제공한다.

늘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에서 원거리 문답만 하다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이와 눈을 보며 마주 앉았다. 명함을 건네려니 갑자기 기자가 쓰는 노트북 색에 관심을 보인 그는, 다른 기자에게는 점심 여부를 묻는 질문으로 긴장을 해소시키려 노력했다. 더불어 영화 기자의 일터 삼청동에 대한 궁금증까지. 벽을 깨려는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고작 말 몇 마디로 화자의 의도를 유추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가 내뱉은 고백 때문이다. 이날 그는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오기를 어려워했다고 털어놨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데”란 말을 영화 촬영 끝날 때쯤에야 듣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그때부터 변화를 시작했다. 유해진에 관해 ‘택시운전사’ 촬영 때는 선배님이었지만 영화 ‘전투’ 촬영 후에는 너무 가까운 형이 됐다고 자랑한 류준열. 그는 현장에서 체득한 남과 살가워지기를 인터뷰 자리에서도 여지없이 익숙하게 실천했다.

테니스를 치는 듯했다. 사담의 서브와 리시브. 그리고 삼청동과 그의 연인을 연관 짓는 질문은 본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이에 류준열은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자,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불편한 기색 없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그는 차갑기보다 보호색을 띤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 가도 배경과 동일한 색을 띄는 보호색. 그건 류준열이 그간 출연해온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영화에서도 그는 늘 그 시대의 청춘을 연기했다.

―작품에 대한 공감이 ‘돈’ 출연 이유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그게 이유 중 하나였어요. 우리 시대 청년이 갖고 있는 돈에 대한 고민, 돈을 바라보는 시각, 돈을 가졌을 때의 행동이나 꿈에 대해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 점을 이야기하고자 했고, 또 그게 충분히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돈’의 조일현과 인간 류준열의 가치는 서로 대척된다. “출근 열 달째.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결국 난 쓰잘데기 없는 모지리 병신이 되었다” 하는 일현은 결국 유 과장(김민재)의 제안에 번호표를 만나러 간 반면, 배우는 “바르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신념이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름길을 원하는 자와, 정도를 걷는 자의 차이. 스스로를 차갑지 않다고 강조한 류준열은 정도를 목표한다는 내용을 인용할 때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요? 좀 있어 보이는데요?”란 추임새로 그가 느낀 놀라움을 가감 없이 표시했다. 모든 기자는 배우의 말을 여과해서 기사에 싣는다. 그는 자신의 말이 정리정돈 아래 활자화된 것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여과기는 또 한 번 작동했다. 그는 “일현이란 인물을 만나고 나니까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했다.

“분명 우리는 돈이 꼭 필요하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우리 영화는 ‘돈은 중요하지 않아’ 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대신 ‘돈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가 되면 안 돼’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죠. ‘사람이 돈보다 위에 있어요! 끝!’은 아닌 거 같아요.” 순간 가수 안치환이 생각났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안치환처럼 사람이 비교 우위를 차지하는 일은 상식일 터. 그래서 주목이 새삼스러웠다. 과연 사람은 늘 돈 위에 있을까? ‘돈은 중요하지만’이란 시인(是認) 자체가 돈의 힘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극 중 일현조차 “난 그냥 부자가 되고 싶었다”를 두 차례나 이야기하지 않는가.

“뒤에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에는 우리 영화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부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그리고 돈이 안 중요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거고요. 단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건 ‘돈을 최선에 둘 것이냐 차선에 둘 것이냐’죠.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나 인생의 질이 전혀 달라지니까요. ‘어떤 자세로 돈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가 나중 대사에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 ‘돈’이 원작이에요.

“원작은 전혀 안 봤어요. 앞에 작품 하면서도 원작은 한 번도 안 봤습니다. 원작 대신 대본만 쭉 보는 편이에요.”

원작 주인공 조익현과 영화 주인공 조일현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가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자라면, 후자는 대중이 익히 알아온 류준열이 ‘수수료 0원’ 브로커에 빙의된 모양새다. 이에 배우는 “그 다른 게 중요한 포인트”라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총 67회차 촬영 중 60회차에 등장한 류준열은 조일현의 입장에 서서 그 차이에 대한 당위성을 별 무리 없이 증명해냈다. “일현이가 불법 거래에 있어 단호히 아니라고 하는 장면이 초반에 나와요. 그래서 저는 그 친구가 나빠서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 그 수많은 유혹 사이에서 한 번 실수를 했다고 봐요. 계속 시험을 당하는 인물인 거죠. 주인공의 원래 성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올바른 친구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가 중점인 거 같아요.”
[일곱물음표] ‘돈’ 류준열, 아직 그는 젊기에 (인터뷰)

수원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류준열은 영화 ‘소셜포비아’로 정식 데뷔하기 전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고깃집에서 일하는 류준열, 마트에서 물건을 상하차하는 류준열, 편의점에서 바코드 찍는 류준열 등. 극 중 인물의 전사를 유추하듯 배우가 배우가 되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늘 흥미롭다. 특히 국회의사당 앞 한 카드사에서 일한 경험은 그가 브로커를 연기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됐다고. 그곳에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류준열은 “엑셀 파일에서 틀린 걸 찾아내는 일을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회사에 출근해 스프레드 시트를 뚫어져라 보는 류준열이라니.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 과거와 배우로 성공한 지금의 비교를 부탁하자, 사람을 겉모습과 첫인상으로 평가하는 그때의 편견을 깨나가고 있다고 했다. 카드사 아르바이트생과 충무로 대표 배우. 멀어도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그 간극을 류준열은 지나왔다. “여의도에 출퇴근하는 느낌이 재밌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이번 영화에 많은 도움이 됐죠.”

카메라 앞에 서는 것 대신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바위와 같은 인내심을 배우에게 요했을 터. 앞서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서 류준열은 덤덤한 표정으로 “오디션을 한 천 번 정도 보려고 했다”고 무명 시절을 회상했다.

독립 영화에서 ‘커플남자’ 등 이름 없는 배역에 출연해온 류준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온 그가 이제 원 톱 주연작 ‘돈’을 관객 앞에 선보인다. 압구정에서도 강남에서도 “평범하게 벌어서 부자 되겠어?” 하며 웃어 보이는 포스터 속 류준열을 만날 수 있다.

―첫 원 톱 영화기도 하죠.

“배역의 경중에 따른 부담감보다, 이 영화가 저한테 준 의미가 있어요. 뭐랄까? 영화 하는 재미를 알게 해준 영화라고 할까요? 그것에 큰 의미가 있죠.”

‘돈’ 고사(告祀) 날 류준열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입봉작임에도 배우 정우성, 황정민 등 박누리 감독을 응원하는 손님이 다수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그들은 그간 조감독으로 다수작을 거쳐온 박누리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한 영화계 동료들이었다. 류준열은 그 모습을 보며 ‘영화 찍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고. 촬영이 좋으면 기분 좋고,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분 달래고, 추억이 쌓이고, 흥행이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안 되는 이유를 보고 다음작 준비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옆에 좋은 사람들이 생기고. 류준열의 말을 들어보면 배우에게 현장은 곧 집이고 놀이터고 또 일터였다.

더불어 ‘돈’은 ‘배우가 감정을 솔직하게 연기하는 게 다인가?’를 질문하게 하는 영화였다고. 그는 솔직한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불구, 계속 새로움을 요구한 박누리 감독의 디렉션에 잠시 의문을 가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집요한 요구대로 더 감정을 끌어내고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더니 전에 없던 새로운 연기가 창조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유지태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제가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받을 때 지태 선배님 작품으로 수업을 했어요. 이미 레전드시고, 선배님만의 마스터피스? 걸작을 갖고 계신 배우시죠.”

그는 감격에 젖은 듯했다. “참 멋있는 배우시죠. 그 분과 같이 작업한다는 의미가 저에겐 크게 다가왔어요.” ‘동감’을 보며 꿈을 키운 햇병아리 연극영화과 학생으로 돌아간 듯 그는 또 한 번 감회에 젖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저는 행운아죠.”

행운은 선망해 마지않던 배우와의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류준열은 배우 이제훈과 JTBC ‘트래블러’를 통해 쿠바로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어제 보셨나요?” 하며 그가 흥이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여흥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체 게바라 장면만 잠깐 봤다고 하니 늦은 시간대 방영을 지레 짐작하며 그가 쓰읍 입맛을 다셨다. “제훈이 형은 트래블 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에요. 계획을 짜면 ‘준열아 난 너가 하는 대로만 할게’ 하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여행을 두 명 이상 같이 하면 불화가 생기기 마련인데 단 한 순간도 그런 순간이 없었어요. 좀 아옹다옹하기도 해야 좀 리얼 한데 전혀 그런 장면이 없어서 제작진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웃음)”

대중과 류준열의 2019년 첫 만남은 ‘트래블러’도 ‘돈’도 아니었다. ‘뺑반’이었다. ‘돈’ 제작보고회에서 그는 “‘뺑반’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인물로 여러분과 만나게 돼서 기대된다”고 했다. ‘뺑반’은 누적 관객수 약 182만 명을 모았다. 여름엔 독립군이다. ‘전투’에서 대한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를 연기할 예정. 류준열은 연기를 ‘상황의 컨디션’으로 정의했다. 연기에만 애쓰는 것과 다른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고도 했다. 형 유해진과 동생 류준열의 우정이 두 사람의 연기 호흡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벌써 궁금하다.

―‘뺑반’ 개봉이 얼마 전입니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없나요?

“아직까진 그런 부담감에 에너지를 쓸 순 없는 거 같아요. 계속 뭔가 배우는 입장이거든요. 이번 ‘돈’을 통해서도 인물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도전을 했고 실험을 했고 고민을 했죠. 기자 분들께서 ‘소준열(소처럼 쉼 없이 일하는 류준열)’ 어떻게 생각하냐고 여쭤보시는데, 이미지 소비나 소준열에 초점을 두기보다 다른 재밌는 게 뭐가 있을지 계속 고민하는 편이에요. 조금 더 해보고 진짜 큰 문제가 생겼을 때 한번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전투’ 이후 차기작은?

“아직 없어요. 그 사이에 빨리 ‘트래블러’를 한 번 더 가야 하나 싶어요.(웃음) ‘트래블러’ PD님께서 ‘준열 씨 다음엔 어디 가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이맘 때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했죠. ‘리틀 포레스트’ 이후 ‘독전’ ‘뺑반’ 그리고 이번 ‘돈’까지. 거의 매 분기마다 신작이 쏟아지고 있어요.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어요. ‘리틀 포레스트’가 잘 됐고, ‘독전’도 큰 성적을 거뒀죠. 2019년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웃음) 어제만 같아라’ 뭐 이런 느낌으로, ‘리틀 포레스트’ 같은 느낌만 돼도 좋겠는데요? ‘리틀 포레스트’ 너무 좋았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더라고요. ‘인생 영화’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그런 말씀 해주시면 전 너무 좋죠.”

인터뷰는 카페 3층에서 이뤄졌다. 아래층에서는 ‘돈’에 함께 출연한 배우 조우진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상황. 그런데 2층이 소란스러웠다. 2층 대화에 3층 스태프까지 웃음이 터졌다. 듣자 하니 조우진이 “준열아 뭐라고 그럴까?” 하고 의견을 구한 모양. 류준열 또한 큰소리로 화답했다. “형 좋다고 해요 좋다고. 맞다고 해요 맞다고.(웃음)” 배우의 웃음이 타인에게도 전염된 것은 물론. 이어 혼잣말로 “뭔진 모르지만 뭐 일단 좋다고 해야죠” 하는 류준열이었다. 어떤 말이든, 어떤 전개든 불쑥불쑥 웃음이 터져 나오는 현장이었다.

사실 ‘돈’은 류준열의 마스터피스는 아니다. 조일현과 대립점에 서있는 번호표 역의 유지태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올드보이’ ‘봄날은 간다’ 등의 마스터피스를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류준열의 최고작은 여전히 그때 그 드라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젊고―유지태는 ‘올드보이’를 16년 전에 촬영했다. 만 27세 때의 일이다.―, 영화 현장을 사랑하며, 또 웃긴 사람이기보다 타인이 경계심을 풀게 할 만큼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분명한 건 영화 찍는 재미를 알게 된 류준열의 ‘돈’은 배우 류준열 연기 인생의 초입이라는 것. 아직 그는 젊기에, 다음 인터뷰 때는 경계심보다 기대감을 안고 그를 만나보려 한다. 3월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200만 명. 총제작비 80억 원.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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