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을 딛고 흑백 간 화해를 모색하는 영화 ‘그린북’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예의 작품상을 비롯해 3관왕을 차지했다. 멕시코인들의 삶을 그린 스페인어 영화 ‘로마’는 감독상 등 3관왕, 파키스탄계 이민자로 팝스타가 되는 여정을 담은 ‘보헤미안 랩소디’는 남우주연상 등 4관왕, 마블의 첫 흑인 히어로물 ‘블랙팬서’는 미술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올해 아카데미상은 다양성과 균형을 화두로 백인남성 중심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당초 각각 10개 후보에 오른 ‘로마’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가 몇 개 부문을 수상할지 관심이었으나 아카데미는 여러 작품에 오스카 트로피를 골고루 안겼다.

다양성·균형·화해의 축제…'그린북' 3관왕 영예
2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린북’은 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이탈리아계 이민자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알리 분) 간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백인인 발레롱가가 셜리의 운전사 겸 보디가드로 취직해 두 사람은 8주간 남부 콘서트 투어 여정을 함께한다. ‘흑인 피아니스트가 고용한 백인 운전사’라는 흑백 간 신분을 뒤집은 설정으로 인종차별과 화해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유명한 이 작품의 연출자 피터 패럴리 감독은 무대 위에 올라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것”이라며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사랑하라는 것,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로마’는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석권했다.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2014년 ‘그래비티’로 감독상을 거머쥔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감독상을 받았다. ‘로마’는 1970년대 초반 멕시코시티 로마지역을 배경으로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는 원주민 하녀의 시선을 빌려 혼란스러운 시대를 관찰했다. 쿠아론 감독은 “1700만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더라도 우리에겐 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로마’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등을 선보인 명장 쿠아론 감독이 ‘이 투 마마’(2001) 이후 모국에서 찍은 첫 작품이다.

한국에서 993만 명을 모아 대박을 터뜨린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남우주연상과 편집, 음향효과, 음향편집상 등 올해 가장 많은 4개 부문 트로피를 안았다.

다양성·균형·화해의 축제…'그린북' 3관왕 영예
전설의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에서 라미 말렉은 공항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에서 퀸의 리더가 된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말렉은 “나는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의 아들”이라며 “이주자에 관한 이런 스토리를 쓰고 이야기할 수 있어 더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히어로 판타지 대작영화 ‘블랙팬서’는 음악상과 의상상, 미술상을 차지했다. 마블의 히어로물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10개 부문 후보작인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올리비아 콜먼이 여우주연상을 가져가는 데 만족해야 했다. 영국 앤 여왕과 두 측근 여인의 권력 다툼을 그린 이 작품에서 콜먼은 히스테리 넘치는 앤 여왕으로 호연했다.

이번 아카데미는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도 포용했다. ‘로마’뿐 아니라 단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인 ‘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는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