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 이정재, 박정민/사진=영화 '사바하' 스틸
영화 '사바하' 이정재, 박정민/사진=영화 '사바하' 스틸
새롭다. 탄탄하다. 하지만 결론만 놓고 본다면 관객들의 의견이 엇갈릴 전망이다.

영화 '사바하'는 한국 영화에서 이제껏 본 적 없었던 작품임엔 틀림없다. 돈을 목적으로 '이단' 혹은 '사이비'로 불리는 신흥 종교를 쫓는 박목사(이정재 분)가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불교 단체를 취재하게 되면서 기묘한 이야기의 실체가 드러나고, 이를 통해 '신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철학적 주제를 던져진다.

시작은 기괴한 염소 소리다. "내가 태어날 때도 염소가 저렇게 울었다"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금화는 태어날 때 쌍둥이 언니에게 다리를 뜯겨 걷는 것도 불편한 소녀다. 온 몸에 돋아난 검은 털, 그리고 동생의 다리를 물어 뜯는 잔인함에 태어날 때부터 어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아기는 "곧 죽을 것"이란 의사의 말과 달리 16년을 금화와 함께 성장했다.

이름도 없는 쌍둥이 언니의 울음 소리를 감추기 위해 가족들은 개를 길렀고, 그들이 이사를 한 동네에서는 가축들이 집단 폐사하는 저주가 일어났다. 용하다는 무당도 쌍둥이 언니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다른 장소에서 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됐다. 공사를 마친 터널 콘크리트가 벗겨져 나간 틈 사이로 중학생 소녀의 손이 드러난 것. 황반장(정진영 분)은 이 사건을 '터널 여중생 살인사건'으로 이름 붙이고, 몸에서 팥과 부적이 발견 된 피해 소녀를 살해한 범인의 행방을 쫓는다.

박목사는 "불교가 더 돈이 된다"며 석가모니를 수행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신흥 불교단체 사슴동산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취재에 나섰다. "세상에 이유 없는 돈도 없고, 이유 없는 종교도 없다"고 믿는 박목사에게 헌금도 받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하고 선한 사슴동산은 이상한 단체로 보였다. 박목사가 사슴동산에 집착하게 된 건 단순히 그 이유에서 였다.

금화와 황반장, 박목사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을 하나로 잇는 건 미스터리한 정비공 나한(박정민 분)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경찰 보다 먼저 터널 여중생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았고, 결단과 행동을 독려했다. 그리고 사슴동산의 신도의 도움을 받아 금화에게 접근하면서 박목사의 의심을 받지만 거침없는 행동으로 그를 제압했다.

전혀 관련이 없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서사로 모아지는 과정은 탄탄하게 설계돼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전작 '검은 사제들'을 통해 544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형 엑소시즘과 오컬트를 선보인 장재현 감독의 감각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하지만 극의 중반부 이후 펼쳐지는 반전이 극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과연 신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음에도 충격적인 캐릭터들의 변화는 혼란을 야기했다. 박목사가 천신만고 끝에 귀신을 잡는다는 전형적인 엑소시즘 영화의 쾌감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배신감을 느낄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바하'가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어느 한 종교에 대한 일방적인 강요없이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극의 곳곳에 녹아 있다.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아니 무신론자라도 이해에 어렵지 않을 정도다.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정한 배우 이정재는 기독교인, 박정민은 종교가 없었다.

여기에 각 종교의 감성을 불어 넣은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큰 소리로 불경을 외우고, 통성 기도를 하는 등의 모습이 다소 섬뜩하게도 느껴지지만, 그 자체로 처절한 신에 대한 깊은 갈망을 보여줬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 비현실적인 사건을 '있을법 하다'고 납득하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었다. 담배를 태우고 외제차를 모는 돈 밝히는 박목사 역의 이정재, 신을 위해 인간성을 버려야 했던 나한 역의 박정민은 그 누구도 대체 불가능한 캐스팅이었다.
영화 '사바하' 이재인/사진=영화 '사바하' 스틸
영화 '사바하' 이재인/사진=영화 '사바하' 스틸
특히 신예 이재인의 활약이 돋보였다. '검은 사제들'에선 박소담이 오싹한 접신 연기로 스타덤에 올랐다면, 이재인은 '사바하'에서 다른 톤의 공포와 미스터리를 극에 불어 넣는데 성공했다. 이정재조차 "어떻게 이렇게 연기하나 싶었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2분. 오는 20일 개봉.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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