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말모이' 스틸컷
/사진=영화 '말모이' 스틸컷
언어는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 말과 글을 없애려 했고, 우리 조상들은 목숨 걸고 우리 말과 글을 지켰다. '말모이'는 처절하고도 간절했던 우리의 역사에 가족애와 유머를 한스푼씩 가미한 영화다. 135분 동안 한 눈팔지 않고 돌직구로 메시지를 전하며 질주한다.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순수 우리말이다. 제목 그대로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목숨을 건 사전편찬기가 주요 내용이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던 엄유나 감독이 '말모이'를 처음 시작한 첫단추 역시 "조선어학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낀 감동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다.

영화 '군함도', tvN '미스터 션샤인' 등 최근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몇몇 작품들이 역사 왜곡 논란에 횝싸이기도 했지만, '말모이'는 정직하고 우직하게 일제 강점기를 전한다. 일본군을 미화하거나, '일본을 배워 조선이 발전했어야 했다'는 식민사관 따윈 없는 청정한 작품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건 조선어학회 회장 류정환(윤계상 분)이 아닌 까막눈 김판수(유해진 분)다. 김판수는 먹고 살기 위해 감방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던 전과자다. 그러면서도 아들과 딸은 제대로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무리를 해서 학교를 보내는 평범한 아버지다.

아들의 학비를 내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는데, 하필 조선어학회 주시경 선생이 남긴 친필 원고가 든 가방이었다. 판수와 조선어학회 인연의 시작이다. 이후 판수는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이 되고, 서서히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유해진은 판수 그 자체다. 소매치기를 해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짓말을 해도 밉지 않다. 오히려 모든 언행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유해진의 호흡과 손짓, 눈빛이 서사가 된다.

웃겼다, 진지했다가, 뭉클했다가 캐릭터의 감정이 날뛰지만 유해진은 중심을 잡고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끌어간다.

유해진 뿐 아니라 조선어학회 회원들 하나하나가 명연기를 선보인다. 조선어학회 홍일점 김선영 뿐 아니라 도입부 1분 등장만으로도 극을 압도하는 유재명, '미스터션샤인' 함안댁과는 다른 존재감을 보여준 이정은까지 조연들의 연기 열전이 볼 만하다.

다만 전체적인 연출력과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묵직하게 하나의 이야기, 감정을 풀어나가는 기세에 집중한 모양인지 몇몇 장면들이 이음세가 튀면서 아쉬움을 자아낸다. 대사 역시 돌직구로 계몽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니 지루함을 더한다.몇몇 관객들은 "오그라든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독립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친일파와 일본에 대항해 결국 독립을 쟁취한 우리네 승리의 역사와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유산인 한글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일깨워 준다는 것만으로도 '말모이'는 의미를 갖는 다 할 수 있다.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가 난무하고, 간판엔 한글보다 외국 문자가 더 많은 현실에 '말모이'는 분명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내년 1월 9일 개봉. 12세 관람가. 런닝타임 135분.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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