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마약왕’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마약왕’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이두삼(송강호)은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다. 마약에 손을 대기 전부터 그랬다. 조강지처와 토끼 같은 자식들, 시집 보낼 세 명의 여동생, 유난히 아끼는 사촌동생까지··· . 가족을 책임져야 했기에 놀고 먹고 세월을 헛되이 보내진 않았다. 돈이 되는 일이면 물불 안 가렸다.

금을 좀 볼 줄 알던 그는 부산에서 밀수업자로 생활했다. ‘열 번 실패해도 한 번 성공하면 팔자 고친다’며 한탕주의에 빠져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비교적 쉽게 돈을 벌었다. 하지만 돈 없고 빽 없는 하급 밀수업자의 끝은 허망했다. 남들 다 살 때, 혼자 망했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죽도록 맞고 감옥살이까지 했다.

강단 있고 똑똑한 아내 성숙경(김소진) 덕에 일찌감치 풀려난 그는 또다시 ‘한방’을 노렸다. 우연히 마약 밀수에 가담했다가 제조와 유통 사업에 눈을 뜬다. 추진력 하나는 최고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선수들을 모아 마약 밀매업을 시작한다. “애국이 별 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믄 바로 애국인기라”라며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이두삼은 뛰어난 눈썰미와 위기대처 능력, 신이 내린 손재주와 특유의 말발로 단숨에 마약업계를 장악한다.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 라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다. 돈이 손에 쥐어지니 권력이 뒤따랐다. 자신을 괴롭혔던 조폭도, 뇌물을 받고 뒤를 봐주던 형사도 모두 그의 밑에 있다. 자신을 죽도록 팬 중앙정보부 상급자도 두렵지 않다.
[TEN 리뷰] '마약왕' 139분 동안 관객은 송강호에게 취한다
영화 ‘마약왕’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마약왕’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마약에 중독되듯, 그는 승승장구하는 삶에 취했다. “이 나라는 내가 먹여 살렸다 아이가”라고 소리치는 그에게 옳고 그름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1972년부터 시작된 유신체제의 끝이 다가온다.

이 영화가 다루는 건 마약 범죄 이야기만이 아니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유신시대를 산 한 남자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다. 독재 정권의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마약 밀수가 성행했던 아이러니한 현실을 이두삼을 통해 그려냈다. 산업화로 달려가던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를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2015년 개봉한 청불 영화 ‘내부자들’로 900만 관객을 동원한 우민호 감독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8년여 시간을 2시간 20분 안에 담기란 역시 무리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다 보니 관객들은 감정 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여느 작품보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도, 이야기의 흐름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인물마다 임팩트 있는 장면들이 담겨있어 분량과 관계없이 연기파 배우들의 향연을 보는 듯하다.

영화 ‘마약왕’의 김소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김대명, 배두나, 조정석, 조우진, 이희준./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마약왕’의 김소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김대명, 배두나, 조정석, 조우진, 이희준./ 사진제공=쇼박스
송강호는 명불허전이다. ‘복수는 나의 것'(2002)의 동진, ‘살인의 추억'(2002)의 박두만, ‘괴물'(2006)의 강두, ‘박쥐'(2009)의 상현, ‘택시운전사'(2017)의 김만섭 등 그간 송강호가 연기했던 다채로운 얼굴이 ‘마약왕’에 다 담겨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두삼의 이야기 속에서 송강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히 영화가 절정에 치달을 때쯤 지금껏 보지 못한 송강호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난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그의 연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강렬하다. 이두삼이 돈과 권력, 마약에 취하는 사이 관객은 오롯이 송강호의 연기에 취한다.

오는 19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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