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손’이 온 것 같은 연기였다. 배우 김동욱은 이 말에 깔깔 웃었다. “저 지극히 정상적인 배우예요. 늘 이성적이려고 노력하죠. (웃음) 눈빛이 미쳤다고요? 그렇게 봐주셨다면 좋네요.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김동욱이 주연한 OCN 드라마 ‘손 the guest’(이하 ‘손 더 게스트’)는 한국형 엑소시즘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청률 또한 선방했다. 청소년관람 불가 등급이었던 마지막 회는 평균 4.8%(수도권, 닐슨코리아 기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는 김동욱에게 유독 남다른 의미를 준 작품이다. 그는 데뷔작이나 다름없었던 MBC ‘커피 프린스 1호점’(2007)으로 눈도장을 받고, 강산도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의 흥행으로 소위 말해 ‘대박’을 냈다.

‘진짜 주연은 김동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목받았지만, '손 더 게스트’는 김동욱의 연기력과 흥행력을 검증 받을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였다.

두 달여 동안 시청자를 무서움에 떨게 했던 박일도는 동해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만난 김동욱은 홀가분해 보였다. 박일도의 빙의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냐는 말에 그는 “아직 못빠져 나왔다”며 “스케줄이 안 끝났다”고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물, 더구나 심야 시간대 시청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많은 시청자는 ‘1인 가구 시청 금지’, ‘웰메이드 스릴러’ 등의 말을 양산하며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종영되자마자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첫 방송 후 솔직히 좀 의아했어요. 왜 무섭지? 공포 드라마가 아닌데 이게 무섭나? 싶었죠. 잔인하고 수위 높은 장면이 있어 방송으로 얼마나 편집돼 나올지 궁금하긴 했지만 무섭게 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회차가 거듭되면서 밤 11시, 텅 빈 집에서 혼자 보면 무서울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좋아해야 하나, 속상해야 하나 모르겠네요.”
'손 더 게스트' 스틸컷 /사진=OCN
'손 더 게스트' 스틸컷 /사진=OCN
이 드라마에서 김동욱은 령(靈)을 보고 느끼는 영매 윤화평으로 분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만든 '손(악령)' 박일도를 쫓는데 강한 집념을 가지고 같은 비극을 겪은 구마 사제 최윤(김재욱 분), 형사 강길영(정은채 분)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어두운 분위기 속 촬영은 김동욱을 지치게 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건물에서 찍기도 하고 세트이더라도 어둡고 더러운 느낌을 주려고 미술적인 효과를 많이 썼어요. 항상 스모그가 깔려있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는 구마 사제 최윤 역의 김재욱과는 ‘커피 프린스’ 이후 11년 만에 조우했고, 길영 역의 정은채와는 이번 작품이 처음이다.

“김재욱은 사석에서 술 마시며 ‘그땐 이랬지’ 하면서 안주 같은 추억 팔이를 하는 사이에요. 늘 고민하고, 열정이 많은 친구죠. 오랜만이었지만 낯설기보다 편안했습니다. 이야기에서 밝은 장면이 전혀 없어서,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때라도 웃고 장난치며 리프레시 했죠. 제가 장난을 많이 쳤는데,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자꾸 웃어주더라고요.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네요.”

김동욱은 첫 등장부터 윤화평에 온전히 녹아 든 모습으로 완벽한 캐릭터 변신을 선보였다. 전무후무한 영매 캐릭터로 빙의, 감응 등 안방 극장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선을 브라운관에 담았다. 그의 눈물 연기엔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우는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신기하고 기뻐요. 저는 모니터 하면서 ‘참 못생겼다’ 하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일상에선 눈물이 거의 없어요. 학교 다닐 땐 울고 화내는 연기를 못해서 F학점을 받은 적 있어요. 그래서 최근 그런 칭찬을 들으면 의아하기도 해요. 사실 우는 연기는 배우에게 큰 부담이죠. 연기 하는 사람이 보는 사람보다 먼저 울어버리면 안 되거든요. 개인적으로 작품 안에서 배우가 눈물 흘리는 것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자기 연민에 도취돼 연기하는 순간이 올까 봐 항상 경계 하고 있습니다.”
'손 더 게스트' 스틸컷 /사진=OCN
'손 더 게스트' 스틸컷 /사진=OCN
결국 밝혀진 박일도의 존재는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게 만들었다. 김동욱은 실토했다. 본격적인 대본이 나오기 전부터 박일도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고.

“김홍선 감독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협박 아닌 협박을 했죠. ‘박일도가 누군지 실토를 해라’, ‘답을 내놓지 않으면 작품을 들어갈 수 없다’고. 강한 협박과 회유의 시간들이 있었어요. 다른 배우들은 모르고 셋만 알고 있었죠. 그걸 안다는 게 연기에 큰 영향은 없었어요.”

주연 배우는 ‘손 더 게스트’의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 박일도를 알고 있었지만, 시청자는 매회 방영될 때마다 등장하는 캐릭터를 의심하고 나름의 추리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극이 절정에 다다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계속해서 반복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등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절절한 연기로 풀어냈다. 처절한 절규, 가슴 저릿한 오열 등 호소력 짙은 연기가 시청자들을 극 한가운데로 끌어당겼다. 김동욱이 꼽는 ‘손 더 게스트’의 명장면은 마지막회의 수중 구마신이다. 무려 8시간 동안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촬영을 했다.

“애정이 가는 장면이 너무 많지만 수중구마 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모니터를 전혀 못 하고 촬영한 장면이에요. 대사 때문에 NG가 나지 않는 이상 연기 때문에 테이크를 다시 갈 수 없었고, 그렇게 빙의 된 연기를 끝마치자 희열을 느꼈어요. 강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라 큰 성취감과 보람이 있었습니다.”
'손 더 게스트' 김동욱 /사진=키이스트 제공
'손 더 게스트' 김동욱 /사진=키이스트 제공
바다로 돌아간 박일도, 애꾸눈이 돼 동해를 떠나지 못한 윤화평. 그는 길영과 최윤을 만나며 그렇게 ‘손 더 게스트’는 끝이 났다. 시즌 2 제작을 기대하게 하는 ‘열린 결말’에 팬들은 기대를 품고 있는 상황.

“솔직히 화평이의 구마가 성공한 것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가 바닷가에 터를 잡고 격리된 삶을 사는 이유는 박일도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저희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 했어요. 시즌 2가 되면 뭐라도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이 화평이는 영매인데 굿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해 세습무 집안의 남자라 악귀를 다루죠. 길영이는 마동석처럼 벌크업 해서 신체 능력이 강화되면 어떨까 싶어요.”

김동욱은 ‘손 더 게스트’를 아직은 놓지 못한 상태다. 기대보다 큰 사랑을 받고, 시청률까지 만족스러웠다. 드라마의 성공에 대해 그는 의외의 인물들에게 공을 돌렸다.

“감독님이 작품 시작부터 부마자(악마에 들린 사람) 캐스팅 오디션을 거듭하셨습니다. 인지도, 대중성 관계 없이 무조건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었죠. 그것이 이 드라마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다음 작품에서 만나게 되면 길게 보고 싶은 배우들이 많아요.”

김동욱의 필모그래피에 ‘손 더 게스트’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작품”이다. “어떤 작품이 잘 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죠. 분명한 것은 촬영하면서 그런 기운을 받기도 해요. 잘 만들어 질 것 같다, 잘 나올 것 같다 하는. ‘손 더 게스트’는 그런 작품입니다. 화평이가 저에게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러다 진짜 시즌 2 만들어지면 제게 ‘신 내렸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하.”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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