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실화 영화'…가을 극장가 점령하다
실화에 바탕을 둔 스릴러 ‘암수살인’(暗數殺人)이 지난 15일까지 290만 명의 관객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실화를 옮긴 또 다른 영화 ‘미쓰백’은 흥행 3위다. 6·25전쟁 직후 북한이 전쟁고아들을 폴란드로 보낸 사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사진)도 오는 30일 개봉한다. 다음달 28일엔 외환위기를 소재로 한 ‘국가부도의 날’이 관객을 만난다. 가을 극장가를 실화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이 점령했다.

실화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끌어올려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암수살인’을 홍보한 박혜경 엔드크레딧 대표는 “내 이웃에게서 일어난 사건이라 관객들이 믿고 보는 심리가 강하다”고 말했다.

김태균 감독의 ‘암수살인’은 복역 중에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한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와 물증 없는 자백만 믿고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11년 부산의 한 유흥업소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수감된 이모씨가 안면이 있던 김정수 형사에게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편지를 보낸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흥행 성공 비결은 기존 형사물의 틀을 깨는 파격에 있다. 감옥에서 형사를 움직여 이용하려는 살인범과 자신이 바보가 돼도 좋다며 끝까지 물증을 찾아나서는 형사 간의 팽팽한 심리전이 핵심이다. 살인범이 수많은 형사 중 왜 하필 김 형사를 선택했는지,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받고도 굳이 추가 범행을 자백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의 자백 중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역추적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과한 폭력과 다혈질 형사라는 기존 형사영화 틀에서 벗어난 기획의 힘이 컸다”며 “강력범죄와 휴머니즘을 결합한 색다른 형사영화”라고 평가했다.

‘미쓰백’은 아동폭력에 대한 이지원 감독 개인의 체험과 뉴스로 소개된 사건들을 곁들여 풀어냈다. 어린 시절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미쓰백(한지민 분)이 자신과 닮은 아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의 아동보호 시스템 부재와 경찰의 무능을 질타한다. 누리꾼들은 “모성애가 아니라 아이와 미쓰백 간의 우정과 연대로 해결책을 모색한 게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6·25전쟁 고아들과 그들을 돌봤던 폴란드인 교사들의 사랑을 담은 작품. 추상미 감독이 탈북 여성과 함께 현장을 찾아나선, 치유와 회복을 위한 여정의 보고서다. 김일성은 한국과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같은 공산권 국가들에 전쟁고아들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1959년 북한의 경제개발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고아들을 전부 소환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까지 남은 1주일이란 기간 동안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외환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프랑스 국민배우 뱅상 카셀이 연기해 관심을 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