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연 이장호 감독 "후배들이 영화 외적인 예술에도 관심 갖기를"
“회고전을 열기는 너무 어립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해요. 지금 준비하는 작품도 있는데... ”

한국영화계 리얼리즘의 거장 이장호 감독(73)이 7일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데 대한 소회를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2일까지 ‘별들의 고향’(1974),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어우동’(1985),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시선’(2013) 등 이 감독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한다. 가짜 여대생, 윤락녀, 택시운전사, 장애인, 달동네 과부, 노인을 간병하는 간호원 등 변두리 인생들을 앞세워 그려낸 당대의 풍속화들이다.

“돌이켜보면 내 뜻대로 만든 작품이 의외로 없고 결과도 뜻대로 안됐습니다. 정말 공들여 만들어 애정이 깊은 ‘시선’에는 관객들이 차갑게 반응했어요. 이 작품이 두고두고 상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제 내린 비’를 빼고 상영작 목록에 넣었습니다.”

이 감독은 지난 날을 ‘NG인생’이었다고 회고했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이 사상 최대인 46만명을 모아 흥행기록을 세운 뒤 대마초 사건 등으로 내리막과 슬럼프에 빠졌다. 불운의 시기를 새로운 작품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은 것은 다행이었다고 한다.

“NG인생에서 감사와 은혜를 배웠습니다. 개인의 시련과 고난은 때로는 큰 득으로 돌아옵니다.”

억압적인 전두환 정권 시절, ‘바보선언’은 그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사전 검열이 너무 심해 영화를 떠날 작정으로 반 리얼리즘에 입각해 촬영했다. 주인공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 등으로 우회적으로 사회를 비판했지만 당시 실권자들은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홍보영화로 선택했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 그 시절을 견뎌낸 것은 보호본능이 컸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길종 감독은 탄압에 맞서는 스타일있지만 나는 일단 수용했어요. 편집을 잘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였어요. 대마초에 걸렸을 때도 심성이 나빠질 수 있으니까 망가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게 현실을 사는 지혜가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물론 정권에 미운 짓은 계속 했지만요.”

그는 신성일 외 톱스타와 함께 한 영화는 거의 없었다고 술회했다. 남이 길러낸 스타들은 자신과 부딪히는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신인들은 자신과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이보희, 안성기, 김명곤 등이 이 감독과 함께 성장한 배우들이었다. 특히 이보희는 회고전 상영작 8편 중 4편에 출연했다.

“지금 영화계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풍토가 걱정됩니다. 연출도 돈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150억원이란 천문학적 숫자가 한 편 만드는 데 없어지는 게 이해가 안가요. 1억5000만원으로 만들었으니까요. 한국영화계에도 언젠가 위기가 닥칠 겁니다. 그때는 독립영화가 구원투수가 될 것입니다.”

이 감독은 후배 감독들에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후배감독들이 ‘영상 벌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음악,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로 영화를 살찌워야 하는데, 오직 영상과 빛 만으로 재능을 키워가고 있어요. 그러면 영화가 인문학적으로 풍요해지 않습니다. 영화 외의 예술들에 관심을 많이 갖기를 바랍니다.”

부산=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