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개봉해 12일 동안 관객 452만 명을 끌어모은 영화 ‘안시성’
지난달 19일 개봉해 12일 동안 관객 452만 명을 끌어모은 영화 ‘안시성’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전투신이 흥행 비결입니다. 성을 함락하기 위한 공성전을 김광식 감독과 스태프들이 치밀하게 연구해 스크린에 구현했습니다.”

추석 시즌 극장가 1위를 달리고 있는 ‘안시성’을 제작한 장경익 스튜디오앤뉴 대표의 말이다. 당 태종의 침공을 고구려군이 격파한 역사를 다룬 ‘안시성’은 지난달 19일 개봉해 30일까지 관객 수 452만 명을 기록, 장기 흥행에 들어갔다. 영화투자배급사 NEW의 대표를 지낸 장 대표는 NEW의 제작부문 자회사인 스튜디오앤뉴를 이끌고 있다. 그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이어 영화 ‘안시성’도 제작해 성공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장 대표를 만났다.

“관객들로부터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 전투신으로는 우선 ‘밀집대형으로 적군을 성벽에서 밀어내는 장면’을 꼽을 수 있어요. 할리우드 영화 ‘300’의 밀집대형이 광고 영상처럼 매끈하게 촬영됐다면 ‘안시성’의 밀집대형 신은 거친 날것의 액션입니다. 군사들이 성벽에서 적군을 밀어 떨어뜨리는 모습을 박진감 있게 촬영했죠. 카메라워크도 횡적인 성(城)과 종(縱)적인 추락 이미지를 잘 대비했습니다.”

장경익 스튜디오앤뉴 대표
장경익 스튜디오앤뉴 대표
후반부 토산(土山) 전투신은 ‘사흘 동안 싸우다 무너졌다’는 기록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한 장면이라고 했다. 당군이 안시성보다 높은 토산을 쌓아 침공해오자 고구려군이 토굴을 파 무너뜨린 장면이다. 공중에 기름주머니를 날린 뒤 불화살로 쏴 불바다로 만드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불화살로는 불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감독과 스태프들이 논의 끝에 창안했다고 한다.

“중국 선양 근처에 있는 여러 고구려성을 탐방해본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환도산성은 매우 공격적이었어요. 정문이 안쪽으로 들어간 곡선 형태를 취해 적군이 들어오면 3면 공격이 가능하도록 지어졌더군요. 고구려성들은 돌로 외벽을 짓고 흙으로 내부를 채워넣어 투석기로도 무너지지 않게 설계됐어요. 세트와 액션신에 이런 점들을 반영했습니다.”

장 대표가 ‘안시성’을 제작한 계기는 할리우드 영화 ‘매드맥스’였다. 단순한 스토리였지만 몰아치는 액션의 긴장감이 뛰어났다. 그때까지 국내 액션물은 스토리 중심으로 구성돼야만 투자받을 수 있었다.

“‘안시성’ 시나리오를 보니 전쟁신만으로도 긴장과 전율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첨단 장비를 동원해 전투신에 공력을 들이기로 했죠. 컴퓨터그래픽(CG) 회사인 디지털아이디어와 주요 전투신을 3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투자자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는 ‘안시성’의 또 다른 매력으로 ‘젊고 섹시한’ 액션 영화라는 점을 들었다. “사극 공식에서 탈피해 30~40대의 젊은 성주와 장수들로 중심을 잡았죠. 성주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친근한 형님 리더십으로 이끌었고요. 사람들의 수명이 짧았던 고구려 시대에 실제 그랬을 겁니다.”

그는 말투도 현대어로 고쳐 관객이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극 말투는 1970년대 성우들이 조선시대를 근거로 연기한 데서 유래했다. 고구려 말투는 완전 달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흉내내기가 싫었다고 한다. 그는 “캐릭터를 잘 살려내 재미를 강화했다”며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영화를 풍부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행’ ‘신과함께’에 이어 ‘안시성’도 해외 흥행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대군을 무찌른 내용의 사극은 적어도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먹힐 겁니다. 할리우드처럼 한국 영화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진짜 한류죠.”

그는 첫 제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성공한 비결로 ‘김은숙 작가의 힘’을 꼽았다. 김 작가는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까지 서사 구조와 멜로를 감칠맛 나게 결합했다는 분석이다. 장 대표는 JTBC의 월화극 ‘미쓰 함무라비’도 제작해 성공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으로 꾸준히 성공 사례를 내고 있는 장 대표의 행보가 주목된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