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공작’에서 정무택 역으로 열연한 배우 주지훈.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에서 정무택 역으로 열연한 배우 주지훈.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지난 주에는 저승차사였지만 이번 주에는 북한군이다. 1000년 전 고려를 지켰던 무사는 1990년대에 ‘공화국’ 수호를 위해 나선다. 올 여름 스크린 속에서 가장 바쁜 배우 주지훈 이야기다. 주지훈은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에 출연한 데 이어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공작’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정무택 과장 역을 맡았다. ‘공작’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주지훈을 만났다.

주지훈은 정무택을 “사냥개 같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극 중 정무택은 대북 무역사업가로 위장한 ‘흑금성’ 박석영(황정민 분)을 만나는 순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군인다운 근성이 투철하고 국가를 위해 충실히 일한다. 언제나 각 잡힌 군복도 정무택의 신념을 대변한다. 자기 잇속을 챙길 때도 있는데 주지훈은 “돈을 착복하는 것조차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주지훈은 이번 작품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그는 “‘공작’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백지에서 작품을 시작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그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감독, 동료배우들과 최대한 많이 만나는 것. 그는 “우리가 하는 일에서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같은 대본을 보더라도 서로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 편한 자리를 만들어놓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일하는 유려한 방식”이라며 “여러 의견들을 조합한 후 디테일을 만들어간다”고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 방법을 설명했다.

주지훈은 ‘공작’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주지훈은 ‘공작’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북파 공작원을 소재로 남북의 첩보전을 다룬 ‘공작’은 최근까지의 남북 정세 변화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주지훈은 “살면서 처음 본 모습이라 신기했다. 정치를 잘 모르는 나도 그런 장면을 보니 뭉클했다. 인간으로서 본능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이어 “평화를 향해 함께 달려간다는 것이 의미 있다”며 “공작원이라는 소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공작’의 큰 주제도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작’은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주지훈은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조금은 아쉬워했다. 뭐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성격 탓에 막상 칸 영화제에 섰을 때는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기 때문. 그런 자신이 “바보 같다”며 ‘공작’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공작’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촬영 현장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주지훈은 “이미 이 영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형들이 많이 말해서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내 “힘든 건 맞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에서는 많이 편집됐지만 실제로 시나리오는 더 방대했어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야기인데 그 시대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시나리오가 술술 넘어갔죠. 어려운 이야기가 쉽게 읽힌다는 건 좋은 글이라는 거잖아요? 책으로서도 이야기로서도 매력을 느꼈죠. 그런데 실제 촬영 때 캐릭터들이 너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거예요. 글로는 쓱 읽혔는데 실제 같은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에 (연기가) 마음대로 안 돼서 모든 배우들이 고뇌하고 절망했던 것 같아요.”

주지훈은 지금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연기의 변주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주지훈은 지금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연기의 변주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주지훈은 작품마다 악당과 악동을 오가며 특유의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캐릭터에 녹여낸다. 쌀쌀맞아 보여도 은근히 다정한 캐릭터의 ‘츤데레’ 면모도 관객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모으는 그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연기자로서 엄청난 고민이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안 하려고 발버둥 쳐보고 불평불만도 해봤지만 바뀌는 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그런 저의 모습을 한 번씩 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관객들을 몰입시키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이 간단한 답을 얻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죽을 때까지 할 일인데 전투적으로 당장의 이미지를 바꾸려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려고 해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는 변주를 주고 있어요. 하지만 ‘똑같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목적은 아니에요. 캐릭터에 몰두하면 자연스럽게 연기의 결은 바뀌어나갈 것이라 생각해요. 나이가 더 들면 제 삶도 연기에 더 묻어나겠죠?”

주지훈은 영화 ‘좋은 친구들’이 배우로서 통과의례 같은 작품이었다고 했다. “30대가 돼도 진짜 30대의 느낌을 갖게 되는 시점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 때가 그런 시점이었던 거죠. 다른 진폭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원하기도 했고요. 이유는 단순해요. 짜장면 3일 먹으면 짬뽕 먹고 싶잖아요? 하하.”

개봉 4일 만에 489만 관객을 돌파한 ‘신과함께-인과 연’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훈은 관객들의 사랑에 대해 “안도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2편에서 관객들의 감정 진폭을 크게 해주는 캐릭터가 해원맥”이라며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좋았던 캐릭터를 내가 열심히 연기한 것뿐이다. 열심히 한 걸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 좋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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