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코미디언 박영진. / 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코미디언 박영진. / 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2007년 KBS 공채 22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박영진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오랫동안 KBS2 ‘개그콘서트’에서 사랑받은 그는 지난 6일부터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 중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콩트 형식이 아니라, 혼자 무대에 서서 마이크 하나로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한 것. 데뷔 10주년을 맞은 박영진은 “스스로 나태해지고 타성에 젖었다고 느껴져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하고 다시 개그 지망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설렌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10. 스탠드 업 코미디라는 생소한 장르에 왜 도전하게 됐나요?
박영진 : ‘개그콘서트’를 쉬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새로운 걸 하고 싶다, 다른 걸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러던 중 개그맨 지망생 때 대학로에서 공연하던 기억이 떠올랐죠. 초심으로 돌아가 공연장에서 코미디를 해보고 싶더군요. JDB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할 때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극장 개관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중에서도 스탠드 업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서 지난 3월부터 꾸준히 준비했습니다.

10. JDB스퀘어의 개관과 동시에 공연을 시작했는데, 어때요?
박영진 : 공연하기 전에 동료들과 관객들 앞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전날부터 못할 것 같더라고요. ‘괜히 한다고 했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막상 시사를 끝내고 주변에서 “괜찮다”며 용기를 줘서 떨리고 부족하지만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10. 오랫동안 ‘개그콘서트’에서 콩트 위주의 코미디를 해오다가 혼자 서서 개그를 한다는 게 쉽지 않죠?
박영진 : 스탠드 업 코미디를 처음 하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웃고, 또 어떤 건 싸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약간 당황하죠. 그러면 서둘러 내려오고 싶은데, 적어도 준비한 건 다 보여드리려고 애쓰고 있어요. 아직까지 그렇게 길게는 못하고 15분에서 20분 정도로 준비해요. 콩트는 상대와 주고받으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또 제가 많이 웃기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기댈 수 있는데 이건 오롯이 혼자 해야 하는 거니까요. 호흡과 기술을 아직 배워가는 단계예요. 어려워요.(웃음)

10.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니까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박영진 :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수박 겉핥기 정도의 큰 이슈만 알았죠. 하지만 이제는 세세한 것들을 살피고 크게 화제가 되지 않은 이면의 부분까지도 들여다 봅니다. 모든 것을 소재로 삼을 수 있으니까요. 단어나 중의적인 표현에도 관심을 갖고 있죠.

10. ‘개그콘서트’의 ‘두분 토론’ 코너에서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인기를 얻었어요. 생각해보면 시대를 앞서간 개그였네요.(웃음)
박영진 : 시작부터 “여자가 말이야”로 입을 여는 캐릭터였고, 수위가 높았죠. 실제로 길을 가다가 혼나고 그랬어요. “그렇게 살지 말라”면서요.(웃음) 지금은 없는, 구한말에나 있을 법한 사람 역할이어서 웃어주고 받아주신 것 같아요. 개그에 성역이 없다고 하지만, 민감한 부분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지금 하면 그때의 반응은 얻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10. 스탠드 업 코미디만의 희열은 뭔가요?
박영진 : 혼자 날린 펀치로 웃음이라는 답을 받는데, 그걸 오롯이 혼자 받는 게 매력이에요. 열심히 준비한 걸 공감해주시고 화답해주니까 짜릿하죠. ‘개그콘서트’를 처음 했을 때, 선배님들 나갈 때 따라나가는 역이고 저를 향한 환호도 아닌데 짜릿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혼자 다 받으니까 더 짜릿하죠. 아직 너무 부족하지만,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요. 설렘도 있습니다. 스탠드 업 코미디 시장이 더 활발해지면 좋겠어요.

10. 스탠드 업 코미디계의 대선배로 이주일·김형곤 등도 있죠. 참고를 합니까?
박영진 : 김형곤 선배님의 극장식 코미디쇼 테이프를 갖고 있어요. 지금 봐도 정말 재미있어요. 선배님이 여러 이야기를 하시는데, 보면서 공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쟈니윤, 이용식 선배님도 굉장히 멋있죠. 후배들이 선배님들의 명맥을 이어야 하는데…어느 순간 물꼬가 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더 열심히 해야죠.

10. 혼자서 대본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영진 : 작가, 동료들과 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만들 때는 재미 있으면 웃고, 그렇지 않을 땐 바로 폐기하면 되는데…혼자서는 반응을 해줄 사람이 없잖아요.(웃음) 게다가 대본을 쓰는 시간마다 감정도 달라요. 밤에는 굉장히 재미있다고 썼는데, 아침에 보니까 엉망인 거죠. 꿈에서 아이디가 막 생각나고 그래요. 혼자 하니까 어렵습니다. 콩트라면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나 목소리의 변화로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데, 스탠드 업은 조금 다르죠. 만약 그렇게 하면 처음의 제 의도와 달라질 것 같아서, 과장해서 표현하는 건 절제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상시 공연을 할 수 있는 코미디 클럽에 가서 관객들 앞에서 해봅니다. 그렇게 반응을 확인하고 대본을 수정하죠.

10. 대본을 완성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군요?
박영진 : 들어보니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성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이들도 있다고 해요. 콩트와는 다른 장르여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더디긴 합니다. 공부도 더 필요하고, 기술적인 부분도 익혀야 해요.

코미디언 박영진. / 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코미디언 박영진. / 사진제공=JDB엔터테인먼트
10. 버럭 화를 내는 ‘박영진 표 개그’를 기대하는 관객도 있을 텐데요.
박영진 : 일단은 마이크 하나로만 해보고 싶어요. 표정 연기나 성대모사가 물론 필요할 때도 있지만 아직 초보여서 그런 기술이 먼저 들어가면 이야기가 변질될 것 같아요. 미국에서 17년 째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온 대니 조가 하는 걸 옆에서 보면, 그는 매우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요. 저도 계속 연마해야죠.

10. 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습니까?
박영진 : 뭔가를 계속 끄적이면서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하고 있어요. 하루에 한 끼만 먹고요. 요즘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고 유행도 느끼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도 하죠. 그렇게 생산적인 활동을 하게 돼요. 어느 순간, 집과 회의실·방송국만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이 돼 버렸어요. 그러면서 나태해지는 것 같았고, 그때 무대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을 다잡고 싶었습니다. 코미디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10. 올해로 데뷔 10년이 됐는데, ‘코미디’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박영진 : 코미디는 배출의 느낌이에요. 웃기면 웃고, 무언가 메시지를 얻어야 한다거나 ‘왜 그런 이야기를 해?’라고 묻는 게 아니라 ‘와 하하하’ 웃고 풀면 돼요. 관객들도 뭔가를 얻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웃고 스트레스를 배출하고, 뿜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자신은 어디서 웃고, 배출합니까?
박영진 :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무엇보다 관객들이 웃어줄 때 힘이 나요. 대본을 만들 때는 힘들지만 관객들의 웃음 한 번이면 그걸로 다 돼요. ‘너 잘한다’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기분이에요.

10.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박영진 : 우선 지금 하고 있는 스탠드 업 코미디의 공연 시간을 늘리는 게 목표예요. 올 연말에는 30분 정도는 하는 거죠. 그러면서 멀리 내다본다면 ‘박영진 쇼’도 해보고 싶어요. 토크쇼의 형태가 아니라, 제 이름을 걸고 혼자서 여러 가지 코미디를 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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