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사진=MBC ‘검법남녀’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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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검법남녀’가 시즌2를 암시하며 종영했다. 지난 17일 방송된 최종회에서 백범(정재영)은 죽은 줄 알았던 약혼녀 한소희가 살아있으며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첫 회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된 재벌가 아들 오만상(김도현)의 시체가 부검대에 올랐다. 백범의 비장한 눈빛에 이어 ‘이야기는 계속됩니다’라는 자막이 시즌2의 여지를 남겼다.

지난 5월 방송을 시작한 ‘검법남녀’는 신입 검사 은솔(정유미)과 괴짜 완벽주의자 법의관 백범의 특별한 공조 수사를 다뤘다. 법의학 지식들로 통쾌하게 풀려나가는 에피소드들과 정재영의 열연이 빛났다. 무엇보다 3회에 걸쳐 하나의 에피소드가 종결되고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속도감 있는 구성이 ‘검법남녀’를 월화극 1위로 이끌었다.

하지만 최종회에서 보여준 마무리는 ‘시즌2’라는 ‘떡밥’으로도 수습되지 않는 아쉬움을 남겼다. 지금껏 ‘검법남녀’는 크게 두 가지의 축으로 진행되어왔다. 한 쪽에 국과수와 검찰의 공조로 풀어나가는 사건들이 있었다면 다른 한 축에는 백범의 전사(前史)가 있었다. 검사 은솔과 주위 동료들에게 “소설 쓰지말라” “질문이 틀렸다”며 시종일관 소리를 지르는 ‘괴짜’ 백범을 만든 그의 과거 서사말이다.

장르적 전개는 ‘합격’, 질질 끄는 주인공 과거사는 ‘글쎄’
사진=MBC ‘검법남녀’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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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은 트라우마를 가진 존재였다. 사랑했던 연인 한소희는 절친 강용과 바람이 났고, 자신이 낸 차 사고로 그녀가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의사의 지위를 버리고 법의관이 됐다. 이러한 설정과 지난한 서사는 극 중 백범의 괴팍한 성격을 이해하게 만드는 친절한 해설서가 되어줬다. 무엇보다 흉부외과 의사 이해성(윤지민)의 의료사고와 강용의 동생인 강현 검사(박은석)와 얽히면서 ‘검법남녀’의 중심 스토리를 끌어왔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검법남녀’의 지난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회상 장면에 소환되었던 연인 한소희가 사실은 식물인간으로 살아있었음이 공개됐다. 또 그녀가 임신한 아이 또한 강용이 아니라 백범의 아이였음이 밝혀지면서 허망함을 줬다. 특히 한소희가 10여 년만에 백범과 재회한 뒤 기다렸다는 듯이 죽어버리는 장면은 허망함을 넘어 마치 한소희라는 캐릭터가 독립적 주체가 아니라 엘리트 남성 백범을 위해 준비된 도구로 다뤄진 듯한 인상을 줬다.

무엇보다 의문인 것은 각각의 에피소드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검법남녀’에 이러한 과거 서사가 특별히 필요했느냐이다. 극 중 반복된 백범의 과거 서사는 ‘천재 괴짜’인 엘리트 남성 캐릭터의 괴팍한 성격을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힘을 얻지 못한 백범의 서사는 ‘에피소드식 장르물’의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억지로 부여했다는 인상도 줬다. 특별히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었다면, 오히려 에피소드와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자 주인공’ 논란, 꼭 그래야 했을까

이처럼 중심 서사를 통해 작품이 백범 캐릭터에 긴 주석을 달아주었지만, 정유미가 연기하는 은솔은 달랐다. 연기력과 ‘민폐 여주인공’ 논란에 시달리던 은솔 캐릭터는 중반부터 비중이 줄어들기까지 했다. 연기력은 차치하더라도 하이힐을 신고 사건 현장에 난입하거나, 수사에 방해되는 역할을 한 것이 논란의 요지였다. 하지만 이런 논란 때문에 애초에 백범과 투톱으로 출발한 인물의 비중을 줄인 건 납득하기 어렵다. 성별을 떠나 검사까지 맡게 된 인물에게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을 제시한 점도 마찬가지다. 배우가 아니라 제작진에게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백범과 은솔, 성장했을까
사진=MBC ‘검법남녀’ 방송 캡처
사진=MBC ‘검법남녀’ 방송 캡처
사진=MBC ‘검법남녀’ 방송 캡처

연출을 맡은 노도철 PD는 지난달 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드라마에서 여검사는 흙수저 열혈 검사로 똑 부러지게 일한다. 그게 더 현실 같지 않았다”며 “실수하며 배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은솔은 자신이 갖고 있는 메모리와 오지랖을 바탕으로 조금씩 딱딱한 남자와 교감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게 성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솔이 변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극 초반, 동부지검 검사들이 제조한 전근대적인 ‘전통주(酒)’를 거부하고 자신은 와인만 마시겠다던 은솔이 지난 30회에서 달라졌다. 미제 사건의 범인을 잡고 열린 회식에서 은솔은 강동식 계장(박준규)의 발가락 양말이 들어간 폭탄주를 먼저 나서서 들이킨다. 아마도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던 ‘금수저 여성’이 조직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존의 조직 문화에 익숙해지고 무리한 분투를 통해 남성의 인정을 받는 것이 과연 성장일까. 어쩌면 무작정 돌진했던 과거의 은솔이 어떤 면에서는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약혼녀 한소희의 진실을 알게 된 백범은 트라우마를 안고서도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제 제발 좀 머리 굵은 주변 동료들에게 소리를 덜 지르는 배려심 같은 것 말이다. 탄탄한 사건으로 시청자의 눈을 끌었던 ‘검법남녀’ 시즌2를 환영하는 이유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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