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사진=JTBC ‘스케치’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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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야기를 만들면 여성 시청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스케치’를 연출하는 임태우PD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잘 만들어진 작품은 그것이 어떤 장르든 성별에 관계없이 고른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스케치’가 첫 회부터 그런 우려를 자아냈다.

‘스케치’는 정해진 미래를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약혼자를 잃은 강력계 형사 강동수(정지훈)와 72시간 안에 벌어질 미래를 그림으로 스케치할 수 있는 형사 유시현(이선빈)이 힘을 모아 살인 사건을 쫓는 과정이 담긴다.

◆ ‘남탕 영화’의 재현, 피해자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사진=JTBC ‘스케치’ 방송화면
사진=JTBC ‘스케치’ 방송화면
지난 25일 방송된 1회에서 시현은 동수의 약혼자인 민지수(유다인) 검사가 살해당하는 미래를 봤다. 시현은 동수에게 이를 알렸고 동수는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지수의 곁을 지켰다. 그런데 시현은 동수에게 뜻밖의 얘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본 미래에서 동수가 죽은 지수를 품에 안고 있었다면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가 지수의 옆에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동수는 지수의 집을 떠났다. 대신 시현과 함께 지수를 살해할 범인을 찾기 위해 나섰다.

범인은 성범죄 전과자였다. 그는 일행과 함께 한 여성을 강간을 계획을 꾸몄다. 동수와 시현은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 여성은 벌써 한 달 전 범인에게 강간을 당한 상태였다. 범죄 발생 시점까지 남은 시간은 약 30분. 1회는 혼란스러워하는 동수·시현과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범인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긴장감을 높이려는 의도겠지만 성범죄 현장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그려진 점이 염려스럽다. 강간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설정은 필요 이상으로 선정적이다. 가해자의 악랄함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해도, 작품이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섬세함이 요구된다. 강간이 일종의 포르노처럼 소비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스케치’ 1회는 섬세하기는커녕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었다.

또한 인물 설정에 따르면 동수는 지수의 죽음을 계기로 각성한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성폭행이나 살해 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범죄는 남성의 복수심을 불태워 이야기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피해자의 서사는 작품 안에서 지워진다. 지난해 유행한 이른바 ‘남탕영화’에서 수차례 반복됐던 설정이다. ‘스케치’는 특별한 고민 없이 이를 답습했다. 하지만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2차 가해가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이 같은 설정이 여성 시청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 베일에 싸인 인물들

사진=JTBC ‘스케치’ 방송화면
사진=JTBC ‘스케치’ 방송화면
특수전사령부 707특임대 소속 중사 김도진(이동건)과 경찰 내사과 과장 장태준(정진영)은 ‘스케치’를 이끄는 주요 인물이다. 1회 말미에서 도진은 지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제안했다. 동시에 도진의 아내 이수영(주민경)은 훗날 지수를 죽인 범인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도진과 지수는 어떤 사연으로 얽힌 것인지, 또한 아내와 약혼자의 희생이 도진과 동수를 어떤 인연으로 엮어갈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장태준은 2회부터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도진의 배후에 있는 인물로 반전을 숨기고 있다. 장태준을 연기한 정진영은 지난 2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1회에 내 분량이 없는데도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촘촘한 복선이 있고 사건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귀띔했다. 베일에 싸인 두 인물이 1회에서 드러난 ‘스케치’의 약점을 메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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