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오는 7일까지 서울 중구 다동 CKL스테이지에서 드라마콘서트 ‘눈부신 길’을 여는 배우 겸 재즈가수 이동우.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오는 7일까지 서울 중구 다동 CKL스테이지에서 드라마콘서트 ‘눈부신 길’을 여는 배우 겸 재즈가수 이동우.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배우 겸 재즈 가수 이동우는 한 때 잘나가는 개그맨이었다. 1993년 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개그그룹 틴틴파이브 멤버로 활약했다. 그러다 2004년 시련이 닥쳤다.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동우는 굴하지 않았다. 재즈 음반을 발매하고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했다. 오히려 그는 “눈을 감으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23일 개막해 오는 7일까지 이어지는 드라마 콘서트 ‘눈부신 길’에서 이동우는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나눈다. 교훈이나 가르침보다는 공감하고 소통하길 원한다. 한 때 “어줍지 않은 재능을 과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으려 했다”는 그는 이제 자신의 능력이 더욱 의미 있는 일에 쓰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동우가 찾은 진짜 ‘멋’이다.

10. ‘눈부신 길’이라는 공연 제목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이동우: 산다는 건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길이 어디에서 내려가거나 올라갈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부신 길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열릴 것이고요. 물론 그 길도 영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길에 오래 머물려고 내가 얼마나 욕심과 고집을 부릴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것이 뭔가를 가르치거나 강요하려는 제목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 길 위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10. 배우 유해진, 안재욱, 문소리, 소유진, 한지민, 가수 이승철, 윤종신, 그룹 샤이니 태민 등 게스트 라인업이 화려합니다. 이들을 ‘길동무’라고 했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이동우: 많은 사람들이 기쁨이나 행복에 집중하고 그것을 바랍니다. 하지만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연에는 내가 얼마나 많은 슬픔과 외로움, 상처를 갖고 있으며 내게 어떤 장애가 있는지를 들여다보자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 의지를 같이 갖고 걸어가 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길동무입니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걸을 때 문득 나타나 손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10. 길동무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동우: 그들이 스타여서 혹은 화려해서 섭외한 건 절대 아닙니다. 일관되게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가진 채로 시대와 손잡으신 분들, 문화 예술인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어루만져줬고 그들에게 충분한 위로를 줬고 그 보람으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을 모시려고 했습니다.

10. 쟁쟁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섭외는 어렵지 않았나요?
이동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물어보십니다. 그런데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길동무를 섭외하는 게 가장 쉬웠어요. 허락을 구하는 데 단 1분도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뭐든 가능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동우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했다.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이동우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했다.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10. 소신과 철학을 섭외 기준으로 꼽았습니다. 자신의 소신, 철학은 무엇인가요?
이동우: 번지르르한 말로 포장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내가 걷는 길이 옳을 방향으로 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저 걸어가자는 겁니다. 이제 성과나 업적은 제게 높은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예전의 저를 돌아보면 어줍지 않은 재능을 과시하고 대접받으려는 심리가 매우 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생각이 조금은 성장했나 봐요. 그리고 제 장애가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10. ‘시대와 손잡은 사람들’이라는 표현도 인상 깊습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은 무엇일까요.
이동우: 저는 정신보다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집단 장애에 걸려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이 뻥 뚫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보면 다들 제법 먹고 삽니다. 취할 건 다 취하는데, 속 터놓고 얘기하면 불평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우리가 왜 이렇게 공허할까 생각해보니 그건 외롭고 슬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더군요. 그런데 문화예술인들은 감정을 갖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슬픔을 직시하고 파고들죠. 시대가 가진 우울함과 슬픔에 빨리 손을 내밉니다. 역사적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런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많았어요. 참 고맙습니다.

10. 자신에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도 있을 것 같군요.
이동우: 우선 길동무들이 그렇고요, 실명을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많은 아티스트가 저에게 영향을 주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움직이는 사람들, 혹은 가슴 속에 따뜻한 정서나 울림을 심어주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들을 흉내 내게 됐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요.

10. 자신은 그들과 얼마나 닮았습니까.
이동우: 저는 아직 10분의 1도 못돼요. 100분의 1은 될까요. 지금은 그저 흉내를 내는 단계입니다. 예전엔 멋진 자동차나 멋진 집이 제 주된 관심사였어요. 그런 것들만 제 눈에 들어왔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용수철 같은 사람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제가 치유가 돼요. 맛있는 음식이나 화려한 여행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입니다. 그들에게서 진짜 멋을 발견해서 저도 닮아가려 하고 있어요.

‘눈부신 길’ 공연은 노래와 연기, 토크 등으로 채워진다.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눈부신 길’ 공연은 노래와 연기, 토크 등으로 채워진다.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10.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원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나요?
이동우: 아주 제대로 느낍니다. 물론 저는 눈을 감고 있지만 예전과 똑같이 느껴져요. 어렵거나 무겁거나 필요 이상으로 들뜨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담백한 마음으로 일어나십니다. ‘그래. 산다는 건 이런 거지. 힘들 땐 잠깐 앉았다가 기력이 보충되면 걸어갈 수 있는 거지. 지금은 과정에 지나지 않잖아’라는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노래를 통해, 길동무와 대화를 통해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습니다! 하지만 참고 극복하면 여러분 모두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요하는 공연은 정말 싫거든요. 아마 그런 식의 공연일 거라고 짐작하고 오신 분들은 깜짝 놀라실 겁니다.

10. 슬픔이나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동우: 네. 장애와 상처는 분명 우리에게 아픔을, 불편함을 줍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를 받아들이고 나면 이것이 선물로 변화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슬픔을 외면하면 그 때부터 진짜 고통이 시작되는 거죠. 하지만 받아들이면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 알게 돼요.

10. 지금 서 있는 곳은 ‘눈부신 길’에 가깝나요?
이동우: 그동안은 어둡고 축축하고 냄새나고 거친 길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눈부신 길로 저를 안내해주는 길동무들을 만나면서 제 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남들도 걸어가니까 마지못해 이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내가 걸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눈부신 길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어둡고 냄새나는 길이 다시 나타난다 하더라도 저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