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진 기자]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임수정/사진제공=명필름, CGV 아트하우스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임수정/사진제공=명필름, CGV 아트하우스
데뷔 17년 차. 누구나 인정하는 베테랑 배우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리고 그 도전을 통해 성장한다. 배우 임수정 이야기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아 열연한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내 모습을 봤다”고 했다.

10. ‘당신의 부탁’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임수정: 너무 재미있었다. 일단 대사들이 너무 좋았다. 엄마 효진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인물들 사이에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사들이 오가는데, 공감이 많이 됐다. 시나리오가 아니라 작고 예쁜 책 한 권을 읽는 느낌이었다.

10. 데뷔 후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한 소감은?
임수정: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맡게 된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들은 물론이고, 동생들까지 다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다. 그래서 엄마 역할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10. 효진 역을 연기하면서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뒀나?
임수정: 무엇보다도 효진이 종욱(윤찬영)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기로 결심한 걸 관객들이 납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효진의 상태를 더 자세히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효진은 남편이 죽고 나서부터 삶이 재미없고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렇게 무료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죽은 남편과 전처 사이의 아들인)종욱의 엄마가 되어 달라는 시동생의 부탁을 받고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겉에서 보기에는 대책 없이 덜컥 지른 게 아닌가 싶지만, 그것도 다 효진이 심리 상태의 연장선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10. 그런 효진의 심리 상태가 표정이나 의상에서도 잘 드러난 것 같은데.
임수정: 옷만 봐도 효진이 전혀 신나 보이지 않는다. (웃음)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는 삶에 지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촬영 전에 의상팀과 상의해서 캐릭터에 맞게 의상 콘셉트를 정했다. 효진의 표정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작년에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끝내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서 피곤에 찌든 게 그대로 나타났다. (웃음) 그래도 종욱이를 데리고 온 후 점점 밝아지고 생기를 찾아가는 효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0. 아들 종욱 역의 윤찬영과의 호흡은 어땠나?
임수정: 찬영이가 내가 데뷔한 해(2001년)에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다. (웃음) 그래도 찬영이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서 연기하면서는 나이 차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찬영이로선 내가 어렵겠지만 문자로 안부도 자주 주고 받는 사이다. 얼마 뒤에는 새로 작품에 들어간다고 해서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 주려고 생각 중이다.

10. 효진을 연기하면서 엄마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이 바뀌기도 했나?
임수정: 일단 엄마와 자식 관계가 단지 혈연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전에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통해 가슴으로 더 느끼게 됐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도 많이 변하고 있고, 1인 가족, 재혼 가족, 입양 가족, 다문화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본 관계자나 지인들도 공감이 많이 된다고 했다.

10. 결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나?
임수정: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딱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결혼을 꼭 해야겠다’ 또는 ‘결혼 하지 않고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을 만난다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해보고 싶다”는 임수정/사진제공=명필름, CGV 아트하우스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해보고 싶다”는 임수정/사진제공=명필름, CGV 아트하우스
10.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로 체감하는 한계도 있을 것 같은데.
임수정: 그렇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가 정말 제한적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남성 중심이라 어쩔 수 없이 영화계도 남성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남녀 캐릭터의 균형이 맞춰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낸다면 점점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10. 최근들어 다양성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임수정: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기 시작했는데 그때 다양성 영화를 많이 접하게 됐다. 그리고 한국 영화의 힘은 바로 그 다양성에 있다는 걸 느꼈다. 신인 감독이나 신인 배우 중에 정말 훌륭한 인재들이 많다. 다양성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영화 시장도 어느 정도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10. 자신이 가진 인지도나 재능을 다양성 영화에 환원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임수정: 그런 부분도 있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한 번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임수정이 저런 것도 했어?’라며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본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다양성 영화를 통해 상업영화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서로 좋은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10. 직접 작품을 기획하거나 연출하고 싶은 욕심이 들지는 않나?
임수정: 연출은 어려울 것 같다. 영화를하면서 감독이라는 직책이 얼마나 위대하고 힘든지 봐왔기 때문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기획이나 프로듀싱 정도는 참여할 수 있을 않을까 생각한다. 계획은 없지만 관심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배우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기획해보고 싶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내 이름을 내건 토크쇼도 해보고 싶다.

10. 어느덧 데뷔 17년 차가 됐다.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기도 하나?
임수정: 사실 아직도 내가 어떻게 배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웃음) 어렸을 때는 사람들 앞에 서면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 땀만 흘리는 아이였다. 지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하는 자리에 서면 너무 떨리고 미칠 것 같다. (웃음) 그 정도로 내성적이다. 아직도 촬영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지켜보는 게 여전히 힘이 든다. 하지만 나에게 딱 맞는 배역을 만났을 때 느끼는 행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작품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걸 느낀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배우 생활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이 남기보다는 ‘그래도 잘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은진 기자 dms3573@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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