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드라마 ‘마음의 소리2’에 조석 역으로 캐스팅돼 촬영 중인 배우 성훈./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드라마 ‘마음의 소리2’에 조석 역으로 캐스팅돼 촬영 중인 배우 성훈./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배우 성훈은 수영 선수 출신이다. 한 때 수영은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 하지만 뜻밖의 부상이 찾아왔고 평생의 목표를 접어야 했다. 깊디깊은 우울의 시기. 성훈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견디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2011년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SBS 드라마 ‘신기생뎐’으로 연기에 입문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그를 찾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성훈은 또 다시 버텼다.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성훈을 만났다.

10. 분위기 있는 바에는 자주 오는 편인가요?
성훈: 포장마차를 더 자주 가요. 우선 금전적으로 부담이 덜 하니까요.(웃음) 편안한 분위기도 좋아요. 위스키를 좋아해서 한 번 와보고 싶긴 한데, 그럴 거면 면세점에서 사와서 ‘혼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네요.

10.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촬영입니다. 방송에서 ‘집돌이’처럼 보였어요.
성훈: 최근 1~2년 사이에 바뀐 거예요. 그동안 집은 잠자고 샤워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그 안에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집다운 집에 이사 오면서부터 집에 있는 게 좋아졌어요.

10. 집에선 뭘 해요?
성훈: 방송에서 보신 것처럼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해요. 휴대전화를 갖고 놀 때도 있고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째깍째깍 보내는 게 편하고 좋아요.

성훈은 집을 좋아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성훈은 집을 좋아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10. 드라마 ‘마음의 소리2’를 촬영하고 있죠. 쉬는 시간이 짧아서 활용을 잘해야겠습니다.
성훈: 피곤하더라도 잠깐이나마 운동을 하는 게 체력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다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정신적인 활력소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버티는 것 같아요. ‘끝나면 쉬어야지’ ‘끝나면 여행가야지’ 생각하면서요.

10. 캐스팅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파격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성훈: 저도 마찬가지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고 생각하시겠죠. 저 역시 ‘내가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촬영을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게까지 파격적이지는 않더라고요. 제 원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10. ‘나 혼자 산다’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캐스팅에 보탬이 됐을까요?
성훈: 사실 ‘나 혼자 산다’를 찍을 땐 이게 저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계산 없이 편하게 찍었어요. 콘셉트를 잡고 촬영하면 어색한 게 분명 보일 테니까요.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10.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던 전현무와 한혜진이 지난달 교제를 인정했습니다. 무지개 회원들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하던데요.
성훈: 저도 마찬가지에요. 사적인 모임에서도 관계를 전혀 티내지 않던 두 분의 절제력이 존경스럽습니다.(웃음) 기사가 난 뒤 현무 형이 단체 채팅방에 ‘미안하다’고 했는데 우리가 서운해 할 일은 전혀 아니에요. 두 분은 축하만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0. 자신의 절제력은 어때요? 얼굴이 알려지면서 행동에 제약이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
성훈: 저는 그게 문제에요,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 거. 하하하. 현장에서 농담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치는 편입니다. 얼마 전에는 ‘마음의 소리2’를 함께 찍는 유리에게 혼나기도 했어요.(웃음) ‘잘못했다. 다신 안 그러겠다’ 약속했습니다.

10. 사람을 좋아하나봅니다.
성훈: 네. 낯을 가리긴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요. 20대 땐 사람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많이 휘둘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별의별 사람들을 겪으면서 달라졌어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저 사람은 원래 저런가보다’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상대가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 수 없더라도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게 됐고요.

데뷔 후 3~4년 동안 차기작을 잡는 게 힘들었다는 성훈은 “그 땐 무작정 버텼다”고 했다./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데뷔 후 3~4년 동안 차기작을 잡는 게 힘들었다는 성훈은 “그 땐 무작정 버텼다”고 했다./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10.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으로 데뷔했습니다. 첫 작품부터 높은 시청률을 받았는데 차기작을 결정할 때 고민은 없었나요?
성훈: 작품은 잘 됐지만 저는 차기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연기를 못했으니까요. 처음 3~4년 동안은 다음 작품을 잡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10. 그 때 성훈을 지탱해준 것은 무엇입니까.
성훈: 대표님 하나만 보고 왔어요. 내가 힘들다고 그만두면 나 때문에 매니지먼트 회사를 시작한 형(소속사 대표)은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팬들입니다. 팬 들에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조금만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10.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이 있을 텐데요.
성훈: 그래야 하는데 저는 더 철없어지는 것 같아요. 하하. 소속사 직원들이 많아져서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요즘 느끼는 건 돈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끼니를 거르거나 누워 잘 곳이 없는 상태는 아니니까요.

10.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성훈: 연기에 대한 욕심이요. 날이 선 연기, 깊이 있는 연기를 늘 찾고 있어요. 배우의 자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저는 다른 배우에게서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기력이든 인성이든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요.

성훈은 수영 선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편하다. 연기는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성훈은 수영 선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편하다. 연기는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10.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적 있어요?
성훈: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나마 괜찮다 싶은 건 웹드라마 ‘6인실’과 KBS2 ‘아이가 다섯’ 정도에요. 스스로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은 아니라서 제 연기가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10. 수영 선수 시절이 정신력을 강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성훈: 수영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편해요. 수영은 기록이든 경기든 누군가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연기는 승패의 문제를 벗어나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남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호흡을 맞춰야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10. 수영을 할 때와 지금, 자신이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성훈: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성숙했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는 방법도 터득한 것 같고요. 어릴 땐 무조건 열심히만 했어요, 몸 망가지는 것도 참아가면서. 만약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시합이든 운동이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어요?
성훈: 아니요. 다시 힘들고 싶지 않아요.

10. 연기를 일찍 시작할 수 있잖아요.
성훈: 안 돼요. 그 땐 철이 없어서 연예인 하겠다며 까불고 다녔을 거예요.(웃음) 늦게 발을 들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10. 수영을 그만 둘 땐 어땠나요. 줄곧 해온 일을 스스로 접는다는 게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성훈: 그동안 인터뷰에서 ‘박태환 선수의 기록을 보고 수영을 접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핑계에요. 몇 번 수술을 하다 보니 기록은 늘지 않는데 체력은 떨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결정하게 됐어요. ‘할 만큼 했다’ 싶었죠.

“힘들었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는 성훈./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힘들었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는 성훈./사진=최승광(STUDIOESKEY) 장소제공=볼트82(BAR)
10. 평범하지 않은 인생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크게 달라졌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성훈: 고등학교 1학년 큰 수술을 받았을 때, 대학 진학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우울증을 겪었을 때, 그리고 연기를 시작했을 때. 그 때마다 심적인 변화가 크게 일었어요.

10. 우울증을 겪었을 때 어땠는지 혹시 물어봐도 되나요?
성훈: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다는 것 자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수술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졌습니다.

10.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한 힘은 뭐였어요?
성훈: 없었어요. 그냥 버텼습니다. 지금도 고민 상담을 해오는 동생들에게 ‘그냥 버텨라’고 말해요. ‘힘든 일을 단 번에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은 너에게 없다. 그러니 버텨라. 언젠가는 지금이 좋은 약이 될 거다’라고요.

10. 스스로 깨달은 게 많아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성훈: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살아온 인생이나 내가 하는 말이 언제나 정답이 아니다, 동생들의 말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천하려고 합니다. 물론 어려워요. 하지만 적어도 동생들이 피하는 형이 되진 않으려고 합니다.

10. 지금은 어때요? 행복해요?
성훈: 많이 편해졌어요. 예전에 수지 씨가 ‘너무 기쁜 일에 기뻐하지 않으려고 하고, 슬픈 일에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굉장히 공감해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너무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로 지내고 싶습니다. 극단적인 감정은 연기로 표현해내고요.

10. 지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뭐예요?
성훈: 저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예전에는 제가 찾아가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는데 요즘에는 저를 먼저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인생에 굴곡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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