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뜬 래퍼 산이
“‘산이가 연기를?’이라는 반응, 충분히 이해해요.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어색한데 남들은 어떻겠어요.”

지난 22일 개봉한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라라’(감독 한상희)에 출연한 산이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래퍼에서 영화배우로 깜짝 변신한 그는 극 중 천재작곡가 지필 역을 맡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2010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래퍼로 데뷔한 산이는 ‘맛 좋은 산’ ‘모해’ ‘한여름 밤의 꿀’ ‘아는 사람 얘기’ ‘Me You’ 등 많은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다. 유명 힙합프로그램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에서 프로듀서로 출연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래퍼로서 인기를 모은 그여서 영화 출연은 뜻밖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와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용감하게 도전했죠. 연기가 많이 부족하지만 도전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산이에게 영화는 ‘신세계’였다. 그는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또 다른 직업과 새로운 분야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장기간 많은 분이 품을 들이는 작업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어떤 영화든 허투루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간 줄 아니까요.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산이는 “래퍼 특유의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와 말투를 고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래퍼와 배우를 겸하고 있는 선배 양동근에게 조언을 구했다. “가수가 배우를 하는 경우는 많아도 래퍼가 배우를 하는 사례는 잘 없잖아요.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나니 양동근 선배가 바로 생각났죠. 그런데 특별한 조언을 해주진 않았어요.(웃음)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잘할 것 같다’고 격려를 해주셨죠.”

첫 연기 도전에 너무 에너지를 쏟은 탓인지 촬영이 끝난 뒤 산이는 슬럼프에 빠졌다. 그는 “음악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한동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촬영하면서 음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어요. 영화가 끝나면 음악을 다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마음처럼 안 되는 거예요. 책도 읽고, 여행도 가고, 선배들한테 조언도 구했는데 다 소용이 없었죠.”

역시 사랑이 답이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부모님 집에 다녀오니까 해결됐다”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에서 쉬니까 괜찮아졌다”고 했다.

연기에 매력을 느꼈다는 산이는 앞으로도 연기를 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연기를 하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좋았어요. 저를 내려놓고 새로운 인물에 빠져드니까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 점이 참 매력적이었죠. 기회만 된다면 또 연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글=박슬기/사진=조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ps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