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3년 만에 첫 영화 주연… 기적 같은 일화
“데뷔 23년 만에 영화 주연을 맡았으니 기적 같은 일이죠. 공백기도 있었고 엄마 역으로 돌아선 지도 꽤 오래됐으니까요. 주어진 역할에 감사하며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렇게 주인공을 맡는 일도 있네요.”

지난달 25일 개봉한 민병국 감독의 영화 ‘천화’에서 미스터리한 여인 윤정 역을 맡아 연기한 이일화의 말이다. 영화에서 그는 TV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엄마’의 모습 대신 온전한 여인이 돼 나타났다.

“늘 새로운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게 관객과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요. 실패도 하고 때로는 쓴소리도 듣겠지만 노력하고 싶어요. 관객이 새 캐릭터로 온전히 봐주는 것만큼 배우에게 좋은 것도 없잖아요.”

‘천화’는 보기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몽환적이고 묘하다. 이일화도 연기하면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천화’의 매력이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님은 ‘이일화 씨가 생각하는 게 답일 수도 있다’면서 가장 어려운 디렉션을 주셨어요. 감독이 짜놓은 틀이 있지만 배우의 생각도 답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천화’도 그런 작품이에요. 보는 분들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 영화죠. 보고 나면 긴 여운이 남을 거예요.”

이일화는 후배 정나온이 보고 있던 ‘천화’ 시나리오를 우연하게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가 탐냈던 역할은 주인공 윤정 역이 아니었지만 민 감독의 제안으로 주인공을 맡게 됐다. 20대였던 설정도 30대로 바뀌었다.

“사실 부담스러웠죠. 캐릭터의 나이를 바꿔가면서까지 저를 캐스팅했으니까요. 그런데 자신은 있었습니다. 하고 싶었고요. 윤정을 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으로 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지금껏 맡은 캐릭터 중에 극 중 윤정과 제가 가장 닮아서 더 자신 있었어요. 간병인인 윤정은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는데 제가 만약 배우가 아니었다면 그 분야를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저는 혼자 있을 때 충전되는 스타일인데 윤정도 그렇거든요.”

‘천화’는 이일화의 첫 주연작이라는 점 외에도 노출 신, 흡연 장면 등으로 인해 더욱 관심을 끌었다. 연기 외에 자극적인 장면들로 주목받는 게 불편하진 않을까.

“제가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도 어쩌겠어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서 우리 영화에 도움이 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리 높은 수위의 노출 신이 아니거든요. 관객들도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15세 관람가인데’라면서요. 하하.”

이일화는 “배우라서 정말 행복하다”고 거듭 말했다. 연기에 대한 애착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제 직업이 정말 좋아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가 저를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이미지로 관객과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런 게 배우의 매력이 아닐까요? 늘 기다리며 꿈꾸는 배우로 살고 싶습니다.”

글=박슬기/사진=이승현 한경텐아시아 기자 ps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