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머드바운드’ 포스터
/사진=영화 ‘머드바운드’ 포스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두 명의 젊은이가 미시시피로 돌아온다. 한 사람은 비행기 조종사였던 제이미(가렛 헤드룬드), 또 한 사람은 탱크부대 병장으로 전역한 론셀(제이슨 미첼)이다. 그들의 행선지는 같지만 처지는 무척 다르다.

제이미는 백인 농장주인 헨리(제이슨 클락)의 동생이고 론셀은 그 땅에 붙어사는 흑인 소작농의 아들이다. 둘 다 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은 전쟁영웅이지만 미시시피에서는 그 누구도 두 청년을 동등하게 보아주지 않는다. 미국 남부는 세상사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불평등의 땅이었던 것이다. 진흙이 뒤덮인 대지, 그야말로 ‘머드바운드’(Mudbound)다.

론셀은 고향에 돌아오던 날 상점에 간다.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귀향 선물을 사주려던 것이다. 고작 설탕과 사탕 막대기 정도인데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파피(조나단 뱅스)를 만나 봉변을 당한다.

왜 흑인이 가게 뒷문이 아니라 정문을 사용하냐는 것이었다. 그 때 론셀이 한마디 던진다. “패튼 장군은 우리를 당당하게 맨 앞에 세웠고 우리는 독일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덕분에 당신들은 여기서 편안히 지냈던 겁니다.” 이 말 한마디 덕분에 결국 론셀은 KKK단에게 지독한 린치를 당하고 혀마저 뽑히고 만다. 세계 대전이 났다 하더라도 진흙이 뒤덮인 땅은 결코 변하는 법이 없다.

영화에는 두 가족이 나온다. 제이미의 가족은 농장을 꾸려보겠다는 헨리의 고집으로 멤피스 시에서 미시시피주 델타로 옮겨오긴 했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헨리의 아버지 파피는 매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가부장적인 인물이고 농사일에 대한 준비 없이 이주해온 헨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다. 헨리의 부인 로라(케리 멜리건)는 험한 환경에서 두 딸을 키우면서 시아버지나 남편보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시동생 제이미에게 더 의지한다. 비록 농장주이긴 하지만 안으로부터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 가족이다.

그에 비해 론셀의 가족은 소작농 처지지만 나름대로 화목하다. 론셀의 아버지인 햅(롭 모건)과 어머니 플로렌스(메리 제이 블라이스)가 사랑이 돈독한 부부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문제의식을 끌어낸다. 론셀이 입대하는 날과 전쟁이 끝나 돌아오던 날을 주목해 보면 이들 가족이 얼마나 끈끈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콩가루 헨리네 가족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무리 큰 부상을 입어 생계가 막막할지라도, 아무리 플로렌스가 야밤에 차출되어 자식들보다 주인집 아기들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리 론셀이 혀가 잘린 채 처참하게 실려 돌아올지라도 튼튼한 가족애를 끊을 수는 없다.

이로써 ‘머드바운드’는 현실의 비참함을 그리는 것 같지만 결국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존심의 정체를 알려주는 데 성공한다. 영화 마지막에 햅이 가족의 원수인 파피의 시신을 묻기 위해 삽을 들고 기도하는 장면은 글자 그대로 감동이었다. 햅은 흑인 마을의 목사이기도 했다.

/사진=영화 ‘머드바운드’ 스틸컷
/사진=영화 ‘머드바운드’ 스틸컷
‘머드바운드’를 가치 있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제이미와 론셀이 험한 조건에서 나누는 쉽지 않은 우정이었다. 그래서 하릴없이 이리저리 트럭을 타고 한적한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데 대화 내용이 아주 맛깔스럽다.

두 사람은 미시시피를 떠나고 나서야 드디어 마음에 평화를 찾는다. 제이미는 도시로, 론셀은 사랑하는 여인이 기다리는 벨기에로 돌아가야만 했다. 두 사람은 어차피 농사일이나 인종차별 따위에 속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머드바운드’는 선댄스 영화제와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내년에 열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문제작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 제기하는 주제의식을 심사위원들이 십분 이해한 결과로 보인다.

두 가족을 교차 서술하고 전쟁이 시작하기 전부터 전쟁과 전쟁 후까지 꽤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눈이 나빠 낮에는 언제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 하는 플로렌스의 상징성과 힘은 없지만 늘 옳은 생각을 하는 로라가 주는 안락함. 플로렌스와 로라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참여자이자 증인으로 내레이션을 담당하며 그녀들의 차분한 목소리는 영화가 갖는 서사에 힘을 보태준다. 그리고 흑인 영가를 유도하는 햅의 설교는 활력에 넘친다. 그의 설교 일부분을 옮겨보겠다.

“그 아침이면 그 전날 아침보다 우리는 훨씬 편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 아침이면 아이들은 여기서 깨어나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하늘 아래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 아침이면 우리는 우리 목을 죄는 틀과 발목을 채운 족쇄를 끊어내고야 말 겁니다. 나는 지금 사후(死後)가 아니라 현생(現生)에서 일어나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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