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를 연출·제작한 류승완(왼쪽)·강혜정 부부.
영화 ‘군함도’를 연출·제작한 류승완(왼쪽)·강혜정 부부.
대표적인 ‘영화인 부부’로 꼽히는 정지우 감독과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최근 한 달 간격으로 각자의 영화로 흥행에 도전했다. 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최민식·박신혜 주연의 ‘침묵’이 지난 2일 개봉해 상영 중이고 지난달에는 곽 대표가 제작한 ‘희생부활자’가 스크린에 걸렸다. ‘희생부활자’를 연출한 곽경택 감독은 곽 대표의 오빠다. 곽 대표가 원작 소설 판권을 구입한 뒤 오빠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정 감독과 곽 감독은 처남과 매제 사이다. 정 감독은 가족 구성원이 영화사업을 하는 데 대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서 좋다”며 “일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조언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피만큼 진하네"…'패밀리 비즈니스' 확산
영화계에 ‘패밀리 비즈니스’가 확산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부부나 남매, 친척 등 가족이 영화 일을 함께하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가족협업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영화인 부부인 류승완 감독과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는 올여름 화제가 된 ‘군함도’를 함께 제작했다. 류 감독이 연출하고 강 대표가 제작했다. 류 감독이 메가폰을 들고 현장을 지휘했다면 강 대표는 캐스팅과 현장 인력 지원 및 물자 조달 등 영화 제작에 필요한 모든 법적 책임을 졌다. 이들 부부는 관객 1000만 명 이상을 모은 ‘베테랑’도 함께 일궈냈다.

최동훈 감독과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도 1000만 명 이상 동원한 ‘도둑들’과 ‘암살’을 함께 제작했다. 두 작품 모두 최 감독이 연출하고 안 대표가 제작했다. ‘박쥐’ ‘아가씨’ 등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겸 모호필름 대표와 김은희 모호필름 이사도 ‘부부 영화인’이다. ‘설국열차’를 제작한 오퍼스픽쳐스의 이태헌 대표는 박 감독의 매제다. ‘아이 캔 스피크’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 등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이은 공동 대표는 제작자로 함께 일하는 부부다. 오정완 영화사봄 대표와 이유진 영화사집 대표는 사촌 사이다. 둘은 함께 일하다 이 대표가 독립했다.

가족이나 친척이 함께 일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영화계가 폐쇄성을 띠기 때문이다. 지인을 통해 일정한 역할을 맡는 방식으로 영화계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연고가 없는 사람이 영화계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다른 직업보다 일상에서 영화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영화계에서 함께 일하고 의견을 나누다가 부부가 되는 사례도 많다.

가족이 영화를 함께 만들 때 강점은 영화의 내적 요소(품질)를 책임지는 감독과 외적 요소(스케줄과 예산 등의 현장 관리)를 책임지는 프로듀서가 ‘타인’보다 좀 더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추진력도 강력해진다. 이해타산에 따른 갈등 소지가 적고, 작품의 완성과 흥행에 있어 말 그대로 ‘일심동체’의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때 가 많다.

반면 작품에 대한 의견 교류나 결정에 폐쇄적인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제3자 및 외부 의견에 귀를 닫으면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 흥행에 참패한 ‘리얼’의 주연 김수현과 감독 겸 제작자 이사랑은 사촌 간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리얼’은 검증되지 않은 감독이 친척이란 이유로 대형 프로젝트를 연출해 실패한 케이스”라며 “폐쇄적인 측면 말고도 가족 간 사적인 감정이나 갈등이 작품 영역으로 전이될 때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