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국악인 한승석(왼쪽), 피아니스트 정재일 / 사진제공=블루보이
국악인 한승석(왼쪽), 피아니스트 정재일 / 사진제공=블루보이
‘환상적인 조합’. 최근 시즌2의 막을 올린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2’의 ‘잡학박사’들은 류성룡 선생과 이순신 장군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특히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혼자 있을 땐 모자란 점을 채울 수 없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며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비슷한 사례를 들었다.

그의 말에 퍼뜩 떠오른 이들이 최근 만난 국악인 한승석과 피아니스트 정재일이다. 각자 음악 색깔이 뚜렷한 두 사람의 접점은 ‘판소리’. 2004년 국악 밴드 푸리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2014년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음반 ‘바리 abandoned’를 내놨다. 한승석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스물아홉에 소리의 길을 걷기 시작한 ‘판소리꾼’이다. 정재일은 세 살 때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고, 열네 살에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무대에 오른 ‘천재 음악가’다. 둘의 인연은 다른 만큼 더 단단하게 묶였다.

3년이 흘러 두 사람은 지난 13일 2집 음반 ‘끝내 바다에’를 발표했다. 더블 타이틀곡 ‘저 물결 끝내 바다에’와 ‘자장가’를 앞세워 총 7곡을 담았다. 이들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 김소월의 시 ‘왕십리’, ‘청구영언’에 기록된 시조 ‘오늘이 오늘이소서’, 단원 김홍도의 한문 서신 등 다양한 한국문학을 재료로 삼아 따뜻한 정과 삶의 희망을 노래했다.

10. 3년 동안 공들인 음반을 내놓고 한숨 돌려야 하는데, 오는 11월 18일 열리는 공연 준비에 한창이겠습니다.
한승석 : 사실 음반은 올 2, 3월에 내는 게 목표였는데 재일 씨가 영화 ‘옥자’의 음악을 담당해서 그 기간 만큼 조금 늦어졌어요. 제가 노래하는 거야 똑같은데 악기 구성이 1집과 달라졌죠.
정재일 : 무대에 24명의 오케스트라와 같이 오를 예정입니다. 그들과 합주를 해야 하고 그에 맞는 음향과 무대 장치도 필요합니다.

10. 1집 발매 당시 김홍도의 편지를 언급하며 ‘정으로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번 음반에 고스란히 담겼네요.
한승석 : 당시 2집에 대한 구상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재일 씨와 얘기 나눈 것도 없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건데, 2집에 담게 됐습니다.(웃음)

10. 문학을 토대로 만들어서 그런지 1집보다 일상의 언어들이 돋보입니다.
한승석 : 김홍도 선생의 편지도 자세하게 들어가면 할 얘기가 정말 많아요. 보완이 필요해 자료도 찾고, 여러 문헌을 뒤져 보는데 점점 그 양이 방대해지더군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직접 쓰기도 했어요.(웃음) 문학이 전공도 아니고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쉬운 점을 채웠죠. 그 작업이 어려웠어요. 글을 가사로 만들면서 빈틈을 메꾸는 게 쉽지 않았죠.

10.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한승석 : 글이 완성되면 ‘어떤 멜로디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구상하는 식이죠. 김홍도의 글은 워낙 옛스럽잖아요, 거기에 판소리 멜로디를 붙이면 너무 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재일 씨에게 “특별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문장은 옛스러워도 멜로디는 현대의 감각으로 갔으면 좋겠더군요. 음악 진행은 재일 씨에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묻고, 또 반대로 재일 씨가 제안하기도 하고요. ‘돈타령’도 “웅장했으면 좋겠다”고 전달했더니, 멋지게 구상을 해왔죠. ‘음악천재’ 재일 씨는 대부분 “좋아요”라며 제 의견을 수용해줘요.(웃음)

10. 대학 시절 읽고 감명받은 ‘장길산’을 담아내 감회가 남달랐겠습니다.
한승석 : ‘장길산’을 읽었을 때 두 대목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민주화 열망이 강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 동아리에서 타악을 배우고 전통 춤도 추면서 창작을 했는데, ‘장길산’을 표현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거죠. 시간이 흘러 소리꾼의 생을 살면서 음반에 ‘장길산’을 녹이다니, 감회가 깊은 정도가 아니에요.(웃음) 황석영 작가의 문장을 쓰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니 이메일로 장문의 글을 보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고요. 지난주 음반을 보내면서 ‘선생님 덕분에 천명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고 싶은 건 일단 했어요.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한이 없어요.(웃음)

정재일(왼쪽), 한승석 / 사진제공=CJ문화재단
정재일(왼쪽), 한승석 / 사진제공=CJ문화재단
10. 연주는 1집과 어떤 점이 달라졌습니까?
정재일 : 1집 때도 모든 작업을 할 때 가사와 선율이 주는 영감으로 완성했어요. 그래서 특별히 다른 건 없었지만 아무래도 문장의 결이 다르기 때문에 그 안의 감정을 읽으려고 했습니다. 또 이번엔 음악 구성에 제한을 두지 않아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했죠. ‘돈타령’은 “의뭉스럽게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브라스 밴드(금관악기를 주체로 한 합주)를 떠올렸어요. 시도하지 않았던 건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녹음을 하면서 망하든지 잘 되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죠.(웃음)
한승석 : 저는 현대 음악에 대해선 설명을 잘 못하니까 ‘돈타령’을 구상하면서 재즈풍의 색소폰을 언급했어요. 돈을 해학적으로 푸는 곡인 만큼 서구의 음악이 들어가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브라스 밴드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재일 씨가 아주 멋지게 완성해줬죠.

10. ‘권세가 아닌 정으로 사는 세상’이 이번 음반이 품은 큰 메시지 입니다. 음악 작업 중이었을 지난 겨울, 촛불 집회가 한창이었죠. 작업이 쉽지는 않았겠지요?
한승석 : 글 작업은 재작년 말부터 시작했는데, 지난해 구체적인 손질을 할 때 확실히 진도가 안 나가더군요. 당시 ‘옥자’의 OST 작업으로 재일 씨는 한동안 같이 못하게 돼 혼자 숙제를 짊어졌다는 무거운 마음이 있던 중에 밖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고… 글 한 줄 쓰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죠. 그래서 한동안 놓았던 것 같아요. 광화문에 나가서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서 ‘정으로 사는 세상’ ‘끝내 바다에’가 울려퍼지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이번 음반을 듣고 일부에선 ‘촛불 집회 이후 만들었구나’란 의견도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웃음) 훨씬 이전부터 구상했습니다.
정재일 : 2집에 담은 내용을 소리로 만들고 싶다는 건 제가 형을 처음만났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였어요.
한승석 : 김홍도 선생 이야기도 재일 씨를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 둘이 이렇게 음반 작업을 할 줄도 몰랐던 상황에서 “이거 어때?” 하면서 보여줬죠.(웃음) 재일 씨는 늘 “좋네요, 좋아요” 그래요. 현실화 되리라곤…(웃음)

10. ‘장길산’을 읽었을 때와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묘한 기분도 들겠습니다.
한승석 : 허망하기도 하고 힘이 빠질 때도 있죠. 퇴행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먼 시각으로 보면 이만큼씩이라도 전진하고, 물러나는 듯하다가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그런 희망을 안고 살지 않으면 너무 팍팍할 것 같아요.

10. 현대 음악을 할 때와 판소리를 할 때 다른 점이 있습니까?
정재일 : 항상 좋은 음악을 만들자, 감동 주는 걸 하자는 마음인데 특히 판소리는 한국어를 가장 아름답고 방대하게 담아내는 장르입니다. 대중음악은 담을 수 있는 어휘가 한정돼 있고 점점 줄어드는 반면 판소리를 들으면 ‘한글에 이런 표현도 있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언어와 소리가 하나 되는 느낌이어서 거기서 영감을 받고, 다른 음악을 할 때보다 더 풍성해지죠. 영화 음악을 만들 땐 화면을 보며 그림을 그리지만 판소리는 그 자체, 노랫말이 의미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관객으로 전통 음악을 좋아했어요. 음악으로 뭘 해보자는 마음은 없었는데, 푸리의 리더 원일이란 친구를 만나면서 소리꾼의 언어로 대화를 한거예요.

10. 판소리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나요?
정재일 : 중학생 때 강석희 작곡가가 주최한 현대음악 페스티벌에 갔는데, 개막작이 종묘제례악이었습니다. 뭔가 이 세상 소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이후 푸리에서 멤버가 되면서 판소리를 접했죠. 일본은 외형으로, 중국은 규모로 압도하는데 한국의 판소리는 들어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그 안에 우주가 다 들어있죠. 슬픔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 내면 깊숙히 표현하는 음악이 한국의 전통이죠.

10. 판소리를 피아노, 기타 등 현대음악으로 표현할 때 답답함은 없습니까? 서양 악기로 국악을 표현하는 한계랄까요?
정재일 : 대표적으로 한국, 일본, 미국이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교류가 없는 나라예요. 스페인, 인도,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전통 음악을 서양의 악기로 연주해요. 예를 들면 바이올린으로 인도 전통 음악 라가(raga)를 연주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죠. 그런데 우린 단절돼 있어요. 서로 공부하지도, 친하지도 않죠. 저도 더 했어야 하는데…그래서 안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줍잖게 표현하기는 싫으니 다른 방식으로 조화를 꾀하는 거예요.

10. 또 한편으로 판소리만큼은 우리의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승석 : 모든 사람이 한승석, 정재일의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의 만남을 우려의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어요. 판소리는 그만의 어법과 구수함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죠. 맞아요, 우리가 하는게 정답은 아닙니다. 단지 ‘이런 음악도 있다’고 소개하는 거예요. 듣는 이들도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 되죠. 판소리에 새로운 옷을 입혀보자라는 생각을 왜 했냐면, 판소리는 굉장히 좋은 예술이에요. 저도 대학 졸업하고 한참 있다가 판소리를 만났고 그때부터 소중하게 생각했죠. 바탕을 일일이 공부하고 완창 발표회까지 몇 년에 걸쳐서 연구했으니 얼마나 잘 알겠어요? ‘조상들은 어떻게 이런 걸 표현했지?’ 싶을 정도로 대단해요. 감탄하고 또 감탄하죠. 음악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관조가 있고, 달관의 경지가 표현돼 있어요. 조상들의 지혜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녹아있죠. 그러니까 나만 알고 있기 아깝잖아요. 그들끼리 가르치고 배우며 공연하는게 안타깝고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판소리를 알리고 싶었죠. 가사의 아름다움, 인생의 깊이, 가사를 풀어내는 음악의 심오함, 이런 것들을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피아노로 표현해보면 좀 더 듣지 않을까? 한자를 한글로 풀어내면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정재일 : 모든 음악이 결국 같은데, 문화재란 개념이 생겨서 거리를 두게된 것 같아요. 어떤 음악이든 다 동시대라고 생각해요.

10. 긴말 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통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정말 운명처럼 보입니다.
한승석 : 제가 인복이 있죠.(웃음) 재일 씨가 아니었다면 브라스 밴드를 입힌 판소리가 나왔을까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습니다.

10. 협업 중 각자의 음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없습니까?
한승석 : 실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수업은 전통 음악을 가르치는데, 발표 수업 때 종종 전통에 기반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라고 과제를 주죠. 그러면 학생들이 우리의 1집을 참고합니다. 그때 책임감을 느끼죠. 우리 음악을 콘셉트로 삼거나,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이 많아요. 노래 한마디를 얼마나 잘 만들어야할지 다시 생각해보죠.

10. 그중에서 반짝이는 친구들도 보이고, 자극도 받겠지요?
한승석 : 그럼요, 자극받죠.(웃음)

공연 중인 정재일(왼쪽), 한승석 / 사진제공=CJ문화재단
공연 중인 정재일(왼쪽), 한승석 / 사진제공=CJ문화재단
10. 꼭 지키고 싶은 고집이 있습니까?
한승석 : 전통을 무조건 잘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중요하게 전달하죠. 전통은 전통대로 공부를 하면서 새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고요.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하잖아요. 전통 판소리를 하면서 현대음악화할 수 있는 소스를 찾는 관점을 늘리는 겁니다. 항상 이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이나 음악을 확인하면서 뭔가를 만들려고 노력하라고 말입니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도 메모해두고요. 전통이 쇠약하면 완성도 좋은 창작품이 나오지 않으니, 두 가지가 모두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10.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정재일 : 후배들이 많지 않지만(웃음) 사실 특히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주위에 없어요. 충격을 받고 뭔가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드는 기회는 잘 없는데, 저에게 판소리는 그랬거든요. 그 느낌을 공유할 사람이 흔하지 않죠.

10. 지키고 자랑하고 싶은 판소리이지만, 다른 음악보다 연륜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판소리를 하는 어린 친구들이 더 기특하고요.
한승석 : 뭐든 그렇겠지만 특히 성악은 타고나야 해요. 그중에서도 판소리는 한(恨)부터 씩씩하고 즐겁고 진한 슬픔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죠. 그중 백미가 진한 한의 정서이고요. 이게 완성이 안되면 화룡점정을 찍을 수가 없어요. 할 수는 있지만 완성이 안되는거죠. 딱 내놨을 때 슬픔의 정서, 판소리에서는 그걸 애원성이라고 하는데 ‘슬프고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란 뜻이죠. 그런 애원성이…연습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어쩌다보면 눈에 띄는, 그런 목소리를 가진 아이들이 있어요. ‘전통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란 생각이 들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다가도 이어져요.(웃음) 국립창극단의 유태평양처럼 말이죠. 판소리를 두텁게 하는 건 진한 계면조인데, 그걸 표현할 수 있어야만이 판소리를 하는 거죠. 흔치 않지만 젊은 친구들 중에도 있어요.

10. 음악을 업으로 삼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없습니까?
정재일 : 예술을 소비할 때 제 인생에 도움이 돼요. 만드는 건 (통장)잔액에 도움이 되고요.(웃음) 저는 예술을 감동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감을 찾아서 어딘가를 가는 게 아니라,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찰나의 순간에도 찾아오죠. 물론 창작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요. 몇 번이나 ‘난 바보인가, 아니 천재인가?’를 오갑니다.
한승석 : 때론 온전하게 예술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죠. 하하.

10.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남겨주세요.
한승석 : 이번 음반의 첫 곡과 마지막 곡에 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습니다. 바라는 좋은 세상이 언제올지, 마른 땅에 꽃이 언제 필런지 모르겠지만, 발원한 물이 끝내 바다에 이르듯 그런 희망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세상이 오리라고 믿으면서 살 수밖에요.(웃음)
정재일 :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연주하는 만큼 든든하기도 하고 부담도 있습니다. 저는 공연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극장에 들어가면서 나올 때의 내가 달라져 있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씨앗으로 남아 이전과 다른 마음을 갖게 하고 또 삶을 살게 하죠. 그게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음악도 듣는 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공연을 보기 전과 후의 다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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