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의 문화경영과 리더십 피어난 '그 집'…설치미술이 되다
OCI(옛 동양제철화학)의 창업주 송암(松巖) 이회림 회장(1917~2007)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린다. 생전에 그는 신용·검소·성실이라는 개성상인의 3대 덕목을 몸소 실천하며 청렴한 기업인의 귀감이 됐다. ‘상식을 벗어나지 말라’를 삶의 철칙으로 삼은 송암은 서예를 통해 기업가정신과 역동적 리더십을 키웠고, 장우성·김기창 회백 등 대가들과 교류하며 문화사업 지원에 힘을 쏟았다. 한국 고미술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1992년 인천 남구 학익동에 ‘한국 고미술의 곳간’ 송암미술관을 세워 문화재 보존에 지극정성을 다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대대로 보전,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의 발로였다. 2005년에는 평생 수집한 문화재 8400여 점과 미술관을 통째로 인천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올해는 ‘문화경영의 선구자’ 송암 탄생 100주년이다. 서울 수송동 송암의 사저 터에 세워진 OCI미술관(관장 김경자)은 ‘그 집으로의 초대’란 타이틀로 고미술·현대미술 작가들과 협업하는 기념전을 열고 있다.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 송암의 의지가 후대에까지 이르러 현재 OCI미술관의 모습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는 기획이다. 다음달 1일까지 고서화는 물론 도자기, 북한 그림, 현대미술 유망주 14명의 작품 30여 점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이지현 부관장은 “‘그 집’은 미술관이 된 집터에서 미술품이 주인공이 돼 쌓아올린 상상의 집”이라며 “송암이 평소 강조해온 ‘사회와 인간정신의 균형발전,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경영철학을 관객과 나누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지현 OCI미술관 부관장이 조선시대 마지막 궁중화가 채용신의 작품 ‘팔도 미인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지현 OCI미술관 부관장이 조선시대 마지막 궁중화가 채용신의 작품 ‘팔도 미인도’를 설명하고 있다.
문화를 향유하며 그 중요성이 무엇인지 고민한 송암의 뜻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3개층 전관은 ‘그 곳’ ‘그 집’ ‘그 방’이란 세 개의 테마로 나눠 기업가의 문화적 에너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곳’ 제목이 붙은 1층 전시장에는 다채로운 풍경화를 걸어 자연을 유유자적 즐기며 속세에 초연하고 싶어 하던 송암의 바람을 담았다. 개성 출신의 화가 우청 황성하의 10폭 산수화를 중심으로 현대 미술가(박종호·유근택·이현호·임택·허수영)의 작품, 북한 출신 화가 한상익의 금강산 풍경 ‘삼선암’ 등이 세월을 넘어 조우한다. 황씨 4형제 화가(황종하 황성하 황경하 황용하) 중에서도 유독 화력이 뛰어난 황성하의 산수화는 점묘법 형태로 한국의 사계절을 섬세하게 짚어내 고객을 끄덕이게 한다. 박종호의 인천 노을, 임택의 현대판 조형산수화, 이현호의 숲 그림, 유근택의 충주호 풍경화 등도 한국 산수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발길을 2층 전시장 ‘그 집’으로 옮기면 송암의 청빈한 삶의 터전을 은유한 색다른 작품들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 후기 궁중화가 석지 채용신의 작품 ‘팔도 미인도’와 민중화가 이우성의 걸개그림 ‘돌고 돌아 제자리’로 사람들이 북적한 느낌을 살렸다. 정재호가 그린 낡은 아파트 그림과 문패를 소재로 작업한 전은희의 작품으로 거리를 만들었고, 목조각가 양정욱의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을 세웠다. 여기에 조선시대 민화 책가도와 고색창연한 도자기, 홍정욱의 설치 작품을 배치해 시공의 합일을 시도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기업을 일궈낸 송암의 생활 터전을 시각예술로 짚어낸 점이 흥미롭다.

3층 ‘그 방’은 전방위 예술가 박경종의 설치 작품(‘좌표 2017’) 한 점으로 꾸며 송암의 문화적 취향과 일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유쾌한 시각 체험을 선사한다. 박씨는 과거 송암이 사용한 붓, 지팡이, 골프채, 인삼주 등 다양한 일상용품을 활용해 흥미로운 시공간을 연출했다.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고자 한 송암의 정신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김경자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양한 미술품을 벽돌 쌓듯 차곡차곡 모아 시간과 정성, 인연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설치 미술”이라며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라고 내어준 송암의 옛집으로 많은 관람객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