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희 이화여대 교수가 학고재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투워즈’를 설명하고 있다.
김보희 이화여대 교수가 학고재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투워즈’를 설명하고 있다.
동양화가 김보희 이화여대 교수(65)는 스무 살 무렵 경기 양평군 양수리 인근 이모 댁 근처의 풍경에 매료됐다.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양수리의 안개 낀 풍경을 곧바로 화첩에 옮기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서울 인근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실제 풍경을 비틀어 보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작업실을 아예 제주도로 옮겨 자연의 내면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40여년 동안 자연의 ‘쌩얼’(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란 의미에서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에 심취된 김 교수의 개인전이 오는 30일까지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전통 색감을 더해 명상적 화면을 창조한 그는 캔버스를 사용하고, 아크릴이나 바니시(도료) 등 서양 재료를 다양하게 수용하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는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4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자연이 되는 꿈’. 제주의 야생적인 자연을 비롯해 바다 풍경, 씨와 열매를 상상의 형태로 잡아낸 근작 36점을 걸었다.

제주 토종 식물과 바다 풍경을 주로 그려온 작가는 지난 4년 동안 열매와 씨앗을 통해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 개념을 화면에 풀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예찬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자연의 본질에 한층 더 충실해지고 싶어서다. 작가는 “삶과 죽음, 유와 무 등 상반된 개념 자체를 자연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열매와 씨앗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씨앗이나 열매를 재해석한 작품 ‘투워즈(Towards)’ 시리즈는 생명의 환희가 넘치고,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절로 숨통이 터진다. 마치 파인애플 같아 보이는 씨앗은 표면에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열매 하나, 씨앗 한 톨은 그 자체가 생명력으로 가득한 하나의 우주처럼 보인다.

예전에 작업한 제주 토종 식물과 바다, 산이 어우러진 작품도 눈길을 붙잡는다. 한국 전통 색감을 더한 화면 속 풍광은 바람처럼 일렁이며 기운 생동한 녹색 에너지를 뿜어낸다. 눈에 보이는 실제 풍경을 담은 작품이지만 사실성과 더불어 추상성도 읽힌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