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소리질러’로 돌아온 가수 원미연 / 사진제공=천상엔터테인먼트
‘소리질러’로 돌아온 가수 원미연 / 사진제공=천상엔터테인먼트


가수로서 히트곡을 갖고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축복이 부담이 되는 것도 한순간. 1985년 MBC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노래라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원미연은 1991년 내놓은 2집 ‘이별여행’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시원한 창법에 남다른 감성까지 더해 완성한 ‘이별여행’은 원미연의 앞에 늘 따라붙었다.

금세 또 다른 곡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별여행’의 위력은 대단했다. 내로라하는 작곡가들과 손을 잡고도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충격도 컸고 딜레마의 연속이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대신 노래만큼이나 자신 있는 몇 가지 재능으로 방송을 섭렵했다. 지방 곳곳을 누볐고 금세 또 다른 특기로 인정도 받았다. 다만 한 가지, 노래에 대한 갈증과 공허함은 늘 가슴 한편에 존재했다. 무대 위가 가장 행복한, 관객들의 눈을 맞추며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편안한 ‘천생 가수’ 원미연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이별여행’을 뛰어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오늘도 그는 무대를 찾는다.

10. 무려 8년 만이다.
원미연 : 그 사이 아이를 키우면서 지냈다.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됐는데, 바쁘게 보내서인지 기분으로는 분기별로 노래를 낸 느낌이다. ‘소리질러’는 지난해 1월에 받은 노래다.

10. 신곡을 받고 1년이나 걸렸다. 이유가 있었나.
원미연 : 가사 작업이 조금 오래 걸렸다. 그전에 두 곡을 더 받아서 녹음도 해보고 그러면서 MBC ‘일밤-복면가왕’에도 한 번 나가고.(웃음) 1년이 쉽게 가버렸다. 무엇보다 오랜만이라 욕심을 좀 낸 것도 있다. 계획은 지난해 12월이었는데 조금 늦어졌다.

10. 아무래도 8년 만에 새 음반을 내놓는 것이다 보니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원미연 : 차에서 녹음된 노래를 듣는데, 뭔가 2% 부족한 거다. ‘이것밖에 못하니’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워낙 ‘나’에 대해서 질문을 할 때가 많다. 이번 역시 ‘이게 한계야?’라고 묻고 또 물었다.

10. ‘소리질러’는 기존 원미연표 발라드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더 그랬을지도.
원미연 : 멜로디가 굉장히 단순한 곡이다. 이전 곡들과 다른 분위기인데다 힘을 빼고 호흡과 목소리를 덤덤하게 부르라는데, 쉽지 않더라.(웃음) 힘을 빼라고 하고, 촌스럽게 성우식 발음도 하지 말라고 하고.(웃음) 작곡가가 세심하게 지적을 했다.

10. 당대의 히트곡을 만든 이경섭 작곡가와 손을 잡은 것도 주목받았다.
원미연 : 나는 그저 나인데, 왜 바꾸려고 하지란 생각이 처음엔 들었다. 알고보니 요즘 흐름에 맞도록, 나를 위해 해준 거였다. ‘누나, 요즘엔 그렇게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아도 다 알아 들어요’라고.(웃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원래 말하는 방식이 그렇다. 연기를 전공했고 라디오 DJ도 오래 하며 발음으로 먹고살았다.(웃음) 발음이 약화된 소리를 낸다는 게 가장 어렵더라. 이경섭 작곡가…무서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하.

10. 덕분에 ‘소리질러’는 색다른 분위기로 탄생했다.
원미연 : 녹음을 끝냈는데 ‘아주 좋다’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스태프들에게 물었고, 조심스럽지만 다시 녹음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더라. 그때 ‘그래, 바꾸자!’고 해서 스튜디오도 바꿔서 재녹음을 한 거다.

10. 지금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원미연 : 우선 ‘나’를 내려놓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스태프들이 이끄는 대로 하다 보면 소리가 나오겠지라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하니까 그제야 어떤 말인지 이해를 했다. 내가 들어도 두 곡 중에 재녹음을 한 노래가 훨씬 좋다. 처음엔 ‘나 노래 잘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두 번째는 뭔가 하나 내려놓은 것 같은 편안함이 있다. 스태프들이 원하는 것, 작곡가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주위에서도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목소리가 편안하다고 말해주더라. ‘노래 잘하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다시 알릴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사실 녹음해놓고 처음엔 잘했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반응이 미지근하기에 ‘노래가 좀 쉽지?’라고 물었다.(웃음)

10. 새삼 깨달은 것이 있겠다.
원미연 : 작곡가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걸 알았다. 곡을 만들면서 분명 생각한 느낌, 분위기가 있을테니까. ‘소리질러’란 곡 제목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곡의 제목은 이것뿐’이라고 납득됐다. 이전에 작업했던 작곡가들도 모두 음악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훌륭한 분들이라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얻은 게 많다.

10. 1989년에 데뷔해 어느덧 30년 째 가수로 살고 있다. 음악 시장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텐데.
원미연 : 노래를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래란 직업은 선택받는 것이란 걸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원미연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가수, 연기, 진행, DJ, 홈쇼핑까지 출연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엔터테이너라는 게 요즘 세상에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게 좋았던 건 아닐까. 뭘 하든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어떤 장르든 연예계에서 ‘원미연’이란 단어와 연결된 뭔가를 수십 년 쉼 없이 했다. 그랬더니 정확한 ‘내것’이 없더라. 가수 원미과 노래가 같이 따라와야 하는데…’이별여행’ 이후론 이렇다 할 작품이 없고, 가수가 노래를 하지 않으니. 그렇다고 보여줄 곳도 없는데 음반을 내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나. 딜레마가 늘 따라다녔다.

10.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원미연의 딜레마, 의외다.
원미연 : 노래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런데 그건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 때만 기다려야 한다. 선택을 당해야만 부를 수 있는 거니까.

원미연 / 사진제공=천상엔터테인먼트
원미연 / 사진제공=천상엔터테인먼트
10. 히트곡 ‘이별여행’이 딜레마에 한몫했을 것 같다. 축복받은 곡인 동시에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으니 말이다.
원미연 : 오랜 고민과 갈등 끝에 뛰어 넘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정리했다. 그때 그 목소리로 갈 수도 없고 당시엔 ‘이별여행’이란 조합 역시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김형석, 김동률, 유영석, 윤종신 등 다양한 작곡가들과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별여행’을 넘는 곡은 내놓지 못했다. 사실 작곡가들에게도 미안했지, 만약 내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불렀으면 히트를 쳤을 수도 있으니까. 음반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니까 다 싫어지더라. 그렇게 진행하던 라디오에서도 하차를 하고, 부산의 교통방송에서 라디오 DJ 제안을 받고 내려갔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힘들어서 아주 부산으로 내려가서 방송을 시작했다. 정말 바쁘게 살다가 부산에 가니, 남는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거다.

10. 부산에서 굉장히 활발히 활동했다는 걸 알고 있다. 충격은 잠시였나 보다.
원미연 : 네 명의 딸 중 맏딸이다. 생활력도 있고 특유의 성격도 도와줬던 것 같다. 방송도 활발하게 했고 다시 원미연을 찾는 곳도 많아졌다. 서울에서도 연락이 왔고 또 활발하게 활동을 하게 됐다. 결혼도 했고.(웃음)

10. 당시 많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스스로 대견하겠다.
원미연 : 그 시기가 없었으면 나쁜 생각, 마음의 병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무서운 건 자신감을 상실하는 건데 그런 적이 처음이었으니까. 서울에서 뭔가를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 생활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 툭툭 던지는 사람들의 말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런데 그냥 부딪혔다. ‘원미연씨 뭐 하러 부산에 왔습니꺼?’라고 물으면 ‘다 잘려서 왔습니더’라고 오히려 더 웃으며 대답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해야하는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0. 노래에 대한 갈증도 있었을 텐데.
원미연 : 노래를 하고 싶어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당시 강수지와 4회차 공연을 했고, 게스트로 주진모도 나왔다.(웃음)

10. 역시 무대가 가장 좋은 천생 가수다.
원미연 : 정말 무엇보다 무대가 가장 좋다. 가장 익숙하고 기분 좋은 곳이다.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노래하는 게 좋아서 일부러 객석에 내려가서 부른다. 그런 관객과의 소통이 좋다.

10. 그렇다면 지난해 출연한 ‘복면가왕’은 정말 원하는 무대였겠다.
원미연 : 관객들의 눈빛까지 다 보이니까 좋더라. 연습을 6개월간 했다. 목소리가 평범하지 않으니,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다른 방송에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 알아보지 못하도록 무기를 마련하려고 했고, 실제 방송에서도 첫 소절은 다르게 불러봤다.

10. 6개월이라니, 철저하고 치밀하게 비밀로 했다.
원미연 :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딸도 몰랐다. 같이 방송을 보는데 ‘엄마랑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하더라. 엄마일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누구지?’라고 보는데, 바로 옆에서 같이 봤다.(웃음) 가면을 벗으니까 정말 깜짝 놀라더라.

10. 놀랄 수밖에.(웃음) 딸이 음악적인 재능을 물려받지는 않았나.
원미연 : 노래를 부르면 ‘첫음이 그게 뭐야’라고 지적도 한다. 바이올린을 하는데, 노래도 곧잘 하는 걸 보니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다만, 3명 이상 모이면 긴장해서 노래를 못한다. 하하. 사실 이번 신곡 발표도 딸이 한몫했다. 친구들이 엄마가 가수인지 모른다고.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히트곡을 내는 게 소원이라고 스태프들에게 말했더니, 바로 추진됐다.

10. 정말 특별한 음반이다.
원미연 : 맞다.(웃음) 이번 곡 이후 새 싱글도 발표할 예정이고, 공연도 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거다. 오랜만에 내놓은 신곡을 많이 들려드리기 위해서 발로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으니, 전국의 라디오에 출연해서 청취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불러만 주시면 전국 어디든지, 내 목소리를 들려 드릴 생각이다. 누군가 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 무대이니까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려고 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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