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배우 허정민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허정민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허정민이 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유도복을 갖춰 입고 슬럼프의 빠진 유도선수 경찬을 표현한다. 어둠을 뚫고 끝내 빛을 보는 경찬은 실제 허정민과도 꼭 닮아있다. 아역 연기자로 데뷔해 ‘배우’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기도 했지만, 연기를 하며 버텼다. 무대에 올라야만 채워지는 무언가를 위해 연극을 놓을 수 없었다.

올해는 ‘유도소년'(연출 이재준)을 만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겼다. 유도선수 역할인 만큼 실제 유도장에서 3개월 동안 구슬땀을 흘렸고, ‘집돌이’ 허정민은 ‘기적’처럼 경찬으로 다시 태어났다. 스포츠와 달리, 연기에는 기권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여유를 찾은 지금이 더없이 행복하다.

10. tvN ‘또 오해영’ 이후 ‘내성적인 보스’와 연극 두 편을 올리며 바쁘게 보내고 있다.
허정민 : 드라마를 찍으면서 ‘운빨 로맨스’와 ‘유도소년’의 연습을 시작했다. 사실 ‘유도소년’은 처음 제안을 받고 거절했다.

10. 거절한 이유는?
허정민 : 재미있고 인기가 많은 작품이란 건 알았지만, 반면 힘들고 고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웃음) 개인적으로 운동을 정말 싫어한다. ‘집돌이’라서.(웃음) 나와는 전혀 반대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이유는?
허정민 :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는데, 주변에서 난리인 거다. ‘무조건 해야한다’고. 남자 배우들이 못해서 안달인 작품이라고 하더라. 그래? 그 정도야? 싶었다. 귀가 또 ‘팔랑귀’라.(웃음) 이후 무대에서 해봐야, 실제로 유도를 하겠어?란 마음으로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 ‘해볼게요’라고 했다.

10. 연습이 시작됐을 때, ‘아차’ 싶었겠는데.(웃음)
허정민 : 연습 첫날 유도장을 가라는 거다. 많아야 두 번 정도, 자세만 배우는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가자마자 매트에 내리꽂혔다.(웃음) 도망도 못치고 도장을 매일 다녔다. 그렇게 3개월 동안. 하하.

10. 집돌이인데…(웃음)
허정민 : 운동도 해본 적도 없고 싫어한다. 집에 있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말이다. 작품을 추천한 동생들도 ‘기적’이라고 했다.

10. 근육통도 처음으로 경험했을 것 같은데.
허정민 : 처음엔 기어 다녔다. 몸에 근육이라곤 없는 사람이니 오죽하겠나. 그런데 신기한 게 나중엔 아프지 않더라. 반복학습의 효과일까.

10. ‘유도소년’의 기자간담회 당시 무대에 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제야 뜻을 알겠다.
허정민 : 매번 도망치고 싶었고 드라마 촬영이 일찍 끝나도 무서웠다. 도장에 가서 연습을 해야 하니까.(웃음) 하루도 쉬지 못하고 연습했고 자책도 많이 했다. 정말 공연을 올리는 것이 기적이었다.

10. 그 어떤 작품보다 첫 공연이 남달랐겠다.
허정민 : 태어나서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었고, 뿌듯했다. 30년을 날로 먹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웃음)

‘유도소년’ 신성민(왼쪽), 허정민 / 사진제공=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주)창작하는 공간
‘유도소년’ 신성민(왼쪽), 허정민 / 사진제공=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주)창작하는 공간
10. 도망치지 않고 해냈다.
허정민 : 이재준 연출이 앞선 시즌의 ‘유도소년’ 공연 중 한 배우가 어깨가 빠진 상태로 마쳤다고 한다. 스포츠에는 기권이 있지만, 연기에는 없다고. 그 말이 참 와 닿았다. 모든 배우들이 부상을 입으며 연습을 하면서도 낙오자 없이, 기권 없이 공연을 올렸다는 게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모든 작품이 하면서 끈끈한 정이 생기는데 ‘유도소년’은 더 그렇다. 합이 맞지 않으면 부상으로 이어지니, 서로 챙기고 감싸주는 게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 무대 위에서도 더 긴장하고 집중해야겠다.
허정민 : 공연 시작 전에 몸을 풀고 대련도 맞춰본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금세 까먹는다. 합이 틀려지면 부상을 입으니, 긴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10. 또 다른 연극 ‘운빨 로맨스’도 첫 공연을 마쳤다.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인데.
허정민 : ‘유도소년’에서 하지 못한 걸 ‘운빨 로맨스’에서는 할 수 있다. 연애의 감정과 아기자기한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두 작품을 오가며 서로 다른 아쉬움을 채우고 있다.

10. ‘유도소년’ 덕분에 오히려 체력은 좋아졌을 것 같은데.
허정민 : 맞다.(웃음) 어떤 공연이든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만심도 생겼다. 체력이 정말 저질이었는데, ‘운빨 로맨스’의 첫 공연을 마치고 동료 배우들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10. 연극을 연이어 선택하는 행보가 의아했다. 연기에 대한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된 걸까.
허정민 : 드라마를 하고 나면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 즉각 반응을 느낄 수가 없고 잘한 건지 의심도 들고, 또 소모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소재가 고갈된다고 해야 할까. 코미디언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찾듯, 배우들도 찾아야 될 곳이 필요한데 내게 그건 무대이고 연극배우들과 호흡하는 거다. 그들의 장점을 보고 배우고, 또 내것으로 만드는 식이다. ‘또 오해영’을 마치고도 공허함이 몰려와서 연극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몸은 좀 힘들었을지언정, 마음만큼은 풍요로워졌다.(웃음)

10. 한 배우는 무대 연기를 하고 매체로 돌아가면 많은 무기를 장착한 것 같다고 표현하더라.
허정민 : 맞다. 정확한 말이다. 무대에 오른다는 건 무기를 장착하고 갈고 닦는 일인 것 같다.

10.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지 않나.
허정민 : 다른 이들의 반응을 일일이 신경쓰다 보면 내 것을 잃게 된다. 소극적으로 변해가는데,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반응이라면 소신이 필요하다. 원래 극도로 소심한 성격이라, 관객 반응 하나에 상처받았고 숨었다. 어느날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일일이 신경을 쓰면 밥 먹고 못 산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선 내 것을 찾자는 생각에 지금은 바뀐 거다.

10. 생각과 행동이 바뀐 계기가 있었나.
허정민 : 아역 연기자부터 시작했으니 군대를 다녀오고 슬럼프를 겪었다. 나를 찾아줘야 하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거다. 위축돼 있는 상태에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데 떨어지다 보니까 ‘모자란 사람이었구나’란 생각에 숨게 됐다. 그때 송현욱 감독이 단막극 제안을 했는데, 당시 ‘네가 요즘 위축돼 있는 것 같다. 이 역할은 네가 딱이니 마음껏 하라’고 해주셨다. 정말 마음대로 했다. 대본을 수정하기도 하고, 애드리브도 마음껏 했고.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그때 자신감도 찾았다. 자신감을 갖고 하면 되는구나.

10. 파란만장하다면 파란만장한, 지금의 배우 허정민이 있기까지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할 것 같은데,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허정민 : 평생 살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20대는 뭐랄까, 조급함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 포기하고 정리되고 이제는 묵묵히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하고 내 인생을 살면 되니까 정말 행복하다. 좋지 않은 건 다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웃음) 0부터 시작하니까 세상 무서울 것이 없고, 행복한 일을 하면서 하니까 즐겁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좋다.

허정민 / 사진제공=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주)창작하는 공간
허정민 / 사진제공=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주)창작하는 공간
10. 힘든 순간에도 연기는 놓지 않았다.
허정민 :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의심 없이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2년간 문차일드로 활동했는데, 굉장히 오래 했다고 생각하신다.(웃음) 배우는 어렸을 때부터 직업이었고 학생 때도 연기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서 자연스러웠다. 물론 다른 일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할 줄 아는 게…(웃음) 가난할지언정 묵묵하게 했던 것 같다.

10. 무대 연기만의 짜릿함이 있다면?
허정민 : 처음과 끝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엔 심장 박동이 터질 것 같고,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 때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후련함을 느낀다. 두 시간 동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짜릿하다.

10. 그런 짜릿한 무대에서 내려와 느끼는 공허함과도 늘 싸워야 한다.
허정민 : 술을 좋아해서 혼자 마시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푼다.

10. 지금까지 드라마 속 유쾌하고 발랄한 모습이 실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정반대인 것 같은데, 정말 연기를 하는 거다.(웃음)
허정민 : 반대의 성격을 연기하는 게 쾌감이 있다. 평소에 할 수 없는 걸 연기로 푸는 거지. 오히려 얌전한 연기를 하면 나락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10. 연기를 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
허정민 :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유도소년’ 속 경찬은 슬럼프를 겪고 있는 고등학생이니까, 캐릭터를 표현할 때 정점을 찍었다가 또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다.

10. ‘유도소년’은 슬럼프를 이겨낸 소년의 삶을 조명하며, 끝내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허정민 : 나 역시 슬럼프가 있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가장 슬픈 건 남이 나를 포기할 때다. ‘할 만큼 했어, 여기까지야’라고 할 때가 정말 괴롭다. 마치 안락사를 당하는 기분처럼 슬프다. 그럴 때가 있지만, 어쨌든 잘 된다는 걸 말해주고픈 작품이다.

10. ‘유도소년’으로 체력이 좋아진 만큼, 올해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을까.
허정민 : 5월까지는 우선 ‘유도소년’과 또 ‘운빨 로맨스’를 잘 마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하는 곳에 언제든지 달려갈 생각이다. 그전에 딱 일주일만 쉬고 싶다.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 배우로서는 지금처럼만 살면 될 것 같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묵묵하게 하면, 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허정민으론 술을 좀 줄이고 운동도 조금씩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관리에 힘쓰겠다.(웃음) 그리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걸까.(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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