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한석규 / 사진=쇼박스 제공
한석규 / 사진=쇼박스 제공
“20년을 넘게 연기하면서 관객들이 저에게 익숙해진 것 같아요.”

배우 한석규는 ‘연기의 신’으로 불린다. 대중들은 그의 연기력에 깊은 신뢰를 드러낸다. 한석규는 그런 대중들의 시선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의도나 목적을 보는데, 내 애티듀드(태도)가 익숙해진 것 같다”며 “25년 동안 연기하는 나를 통해 내가 왜 연기를 하는지 관객들이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석규는 “그게 꼭 좋은 것일까? 연기만 놓고 봤을 때 좋은 것은 아니다. 연기자와 관객은 서로를 몰라도 된다. 너무 속속들이 알면 보는 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한석규가 변신을 감행한 걸까? 그는 영화 ‘프리즌’(감독 나현, 제작 큐로홀딩스)을 통해 절대 악역으로 돌아왔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이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와 범죄를 저지르는 ‘프리즌’에서 한석규는 죄수와 교도관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고 쥐락펴락하는 교도소의 절대제왕 익호 역을 맡았다. 그러나 한석규는 연기 변신보다 이번 작품을 통해 “권력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조와 정조의 이야기를 다룬) ‘비밀의 문’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장남과 아버지는 보통 사이가 안 좋아요. 나도 아들이 있는데 나중에 사이가 안 좋아질 거라는 상상이 잘 안 갔거든요. ‘낭만닥터 김사부’는 직업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연기를 직업으로 삼은 지 25년이 됐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직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일을 통해 그 사람이 완성되어 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리즌’은 권력과 인간에 대한 얘기에요. ‘군주론’(마키아벨리 작)을 읽었는데 인간 문명사가 있는 한 권력, 지배와 피지배 문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요. 답을 내려고 한 건 아니지만 연기를 통해 그런 문제를 한 번 환기하고 팠죠.”

한석규는 1990년대 영화계를 이끌었던 주역이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넘버 3’,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텔 미 썸딩’ 등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그는 “당시에는 개인으로서 뭔가를 해내고, 이루는 게 중요했다”며 “연기자로서 목표에 정신이 많이 팔렸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를 완성한다보다 계속 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목표를 이루기보다 목표를 잊지 않고 한다는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한석규 / 사진=쇼박스 제공
한석규 / 사진=쇼박스 제공
“언젠가 영화라는 매체는 없어질 것 같아요. 영화는 기술과 밀접한 매체잖아요. CG로 피부, 표정, 액션이 다 표현이 돼요. 그런데 잘 만든 CG영화를 봐도 눈은 비어 있더라고요. 눈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CG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관객들이 눈을 보려면 연극을 찾지 않을까 해요.”

한석규는 배우로서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야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희망과 사랑 그리고 고통의 방식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등이 희망이라면 ‘초록 물고기’, ‘프리즌’ 등은 고통이다. 그는 “‘프리즌’은 독이에요. 사실 나는 가능하면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은 느낌이 들어요. 가족, 우정, 죽음 등 추성적인 단어들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그걸 사랑으로 또 희망으로 그려낸 영화잖아요. 솔직히 지금은 ‘8월의 크리스마스’가 또 다시 제작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네요.”

“나이 먹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한석규의 연기 욕심에는 끝이 없다. 무엇보다 한석규는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

“배우나 창작자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있어요. 나도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뭔가를 해낸 거죠. 사실 전 평생 동안 몰입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요. 늘 뭔가가 방해를 해요. 사실 전에는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더 좋아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제어하는 편이에요.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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