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정우 /사진=오퍼스픽처스 제공
'재심' 정우 /사진=오퍼스픽처스 제공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숙하게 안부를 물어온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어색함 없이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간다. 어느 한 곳도 모난 구석이 없을 것 같은 사람, 배우 정우의 이야기다.

좋은 배우의 덕목 중 하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했다. 정우의 연기는 친화력 좋은 그의 성격과 많이 닮았다.

경상도 사나이들의 추억을 소환했던 영화 '바람'(2009)부터 산악인 엄홍길의 실화를 담은 '히말라야'(2015)까지. 그는 어떤 작품에서건 위화감 없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우의 장점이 영화 '재심'(김태윤 감독)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이 영화는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모티브다. 당시 16세였던 최모군은 경찰의 강압수사에 누명을 쓰고 살인죄로 10년을 복역했다.

16년 뒤인 지난해 최군은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신청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진범으로 지목된 김모씨는 검찰에 구속기소 돼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정우는 이 사건의 변호인과 동명의 캐릭터 준영 역을 연기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한 장씩 아껴가며 읽을 때 만해도 실화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흐름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실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충격적이었죠. 믿기지도 않았고요. 현실에서 내가 만약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하는 생각에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정우를 촬영 현장으로 인도한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 없는 사회가 어디 있을까요. 단지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방대학 중퇴에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한방'을 노리는 속물 변호사 준영은 로펌 대표의 환심을 얻기 위해 나선 무료변론 봉사에서 살인사건 누명을 쓴 현우(강하늘)과 만난다.

준영은 세상에 등 돌린 현우의 억울한 사연을 안고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두 사람은 점차 형제처럼 가까워지고 삶의 의미와 희망을 부여하는 관계가 된다.

"흔히 법조인을 떠올렸을 때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준영은 달랐습니다. 얄미울 수는 있지만 빈틈 있어 보이는 모습들에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죠. 그런 사람이 점차 정의로운 인물로 변화하는 모습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입니다."
'재심' 정우 /사진=오퍼스픽처스 제공
'재심' 정우 /사진=오퍼스픽처스 제공
'재심'을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사회고발성 영화는 아니다. 극적 장치를 통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게 하고 결국 따뜻한 감동을 유발한다.

"영화의 목적은 진실을 파헤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화죠. '재심'이라는 제목이 좀 딱딱하지 않나요? 소재 자체가 무겁다 보니 초반에 빈틈 있어 보이는 모습을 더 유쾌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촬영하면서 정우는 사건이 보도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박준영 변호사와 만나기도 했다.

"실존 인물을 만나고 영상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 선입견이 생길까 조심스러웠죠. 제 연기가 그분의 이미지가 될 수 있고, 파생되는 상처가 있을 수 있거든요. 스스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찾고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본능의 연기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듯한 준영의 감정선은 보는 이의 몰입도를 높인다.

"유쾌하게 시작해 진중한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신을 비교했을 때 준영의 눈빛이 달라져 있죠. 그의 감정선을 일직선이 아니라 변곡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했습니다."

정우에게 연기란 배움의 연속이다. 첫 주연작 '스페어'에서는 중압감과 예민함을, '바람'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희열과 즐거움을 가슴에 새겼다.

"관객에게 영화 한 편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작품을 거듭해 나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평단의 관심과 팬들의 사랑을 받고 영화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모든 일이 배우로서의 정우를 단단하게 만드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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