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쇠가 '비 든 실세'?…유쾌한 풍자 한마당
“딱 봉게 낙하산이구먼. 분명히 뒤에 누가 있어. 누구 라인이여?”(놀보) “저는 ‘비 든 실세’인데요.”(마당쇠)

‘비 든 실세’ 마당쇠와 놀보의 신경전을 시작으로 두 시간 내내 깨알 풍자가 쏟아진다.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마당놀이 ‘놀보가 온다’(사진)는 “풍자란 이런 것”이라고 작정하고 보여준다. 현실에 발을 딛고, 해학과 풍자를 통해 민중의 애환을 담아내던 전통 마당놀이의 의미를 고스란히 살려냈다. 손진책 연출, 배삼식 극본, 국수호 안무, 김성녀 연희감독 등 ‘마당놀이 드림팀’이 무대를 꾸몄다.

놀보의 만행은 임금 착취, 부당 거래, 세금 포탈, 편법 증여 등 ‘현대적으로’ 진화했다. 놀보가 부리는 심술은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각종 논란의 축약판이다. 놀보 처가 도망가면서 신발 한 짝을 놓고 가자 흥보 자식들은 “악마가 신는 프라다”라고 소리친다. ‘늘품체조’ ‘흑서(블랙리스트)’ ‘물대포’도 등장한다. 착한 흥보가 암행어사에게 놀보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자 놀보는 객석을 가리키며 외친다. “저 중에 ‘샤이 놀부’도 엄청나다!”

공연장은 관객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최근 오페라,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공연에서 줄을 잇는 ‘최순실 게이트’ 패러디 중 가장 자연스럽고 통쾌한 풍자극을 선보인다.

그렇다고 시국에 대한 풍자와 해학으로만 승부를 보는 작품은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전통예술의 매력을 자유롭게 뽐낸다.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옷을 입은 제비 떼의 몸짓은 우아하고, 배우들이 선보이는 소리는 귀에 착착 감긴다. 남사당패의 고난도 줄타기, 북청사자놀음 등 명인들의 다양한 기교도 감상할 수 있다.

국립극장 마당놀이의 터줏대감 김학용의 심술 가득하지만 귀여운 놀보, 국립창극단 막내 단원 유태평양의 우직한 흥보, 이광복의 재기발랄한 마당쇠 등 맛깔진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권선징악’이 울림을 주는 시대에 제대로 된 놀이판을 만났다. 내년 1월29일까지, 3만~7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