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문화재 배틀쇼 '천상의 컬렉션', 개그맨과 문화재의 만남 '신선하네'
“여러분 혹시 김홍도의 직업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김홍도는 요즘 인기 직종인 공무원이었습니다. 소위 금수저는 아니었어요.”

개그맨 서경석이 호스트로 출연해 단원 김홍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동수저 정도 됐습니다. 양반이 아닌 중인이었거든요. 출근해서는 모범생 같은 딱딱한 그림을 그리다가, 퇴근만 하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그 시대에 상상할 수 없었던 불온한 그림을 그리는거죠.”
KBS 문화재 배틀쇼 '천상의 컬렉션', 개그맨과 문화재의 만남 '신선하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는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단원 김홍도의 ‘사계풍속도병’ 영상이 나온다.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움직인다. 서경석은 장면 장면을 들여다보며 그림 곳곳에 녹아있는 고도의 풍자와 해학의 정서를 읽어낸다.

개그맨, 영화감독, 모델이 문화재를 만났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이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낸다. KBS 1TV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신개념 문화재 경연 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 얘기다. 세 명의 문화재 호스트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한 수많은 보물 중 하나를 소개하고, 현장평가단 100명이 투표를 통해 그 중 최고를 가리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7일 방송 첫 회는 8.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이야기꾼 장진 영화감독의 ‘몽유도원도’, 톱모델 이현이의 ‘황금 보검’, 국민배우 안내상의 ‘고종 황제 어새’가 경연을 펼쳤다. 일반인도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비운의 왕자 안평대군의 꿈을 듣고 안견이 그린 그림 ‘몽유도원도’에 대해서는 자신의 꿈도 아니고 남의 꿈 이야기 만을 듣고 사흘만에 그림을 완성한 과정을 풀어낸다. 안내상은 망국의 설움이 담긴 고종 황제의 어새를 통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고종 황제의 삶을 들여다본다. 지밀 도장이었던 황제 어새가 찍힌 문서는 지금까지 17장만 발견됐다. 안내상은 “얼마나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전달됐는지 1993년 어새가 찍힌 문서가 최초로 발견됐다”며 “편지 내용이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라고 소개했다.
KBS 문화재 배틀쇼 '천상의 컬렉션', 개그맨과 문화재의 만남 '신선하네'
이현이는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신라 시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이 화려한 보물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에 대해 “과연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맞을까”란 질문으로 시작해 “황금의 나라 신라를 찾아온 아랍 청년이 황금 보검을 들고 신라로 건너온 것은 아닐까”라고 상상한다. 이런 모양을 가진 황금 보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서다. 네팔과 맞닿아 있는 중국 서쪽의 한 동굴 벽화에서 비슷한 모양의 보검이 발견된 것과 관련, 그는 “벽화는 요즘으로 치면 ‘인스타그램’ 같은 것”이라며 “황금 보검을 차고 ‘나 이정도 되는 사람이야. 멋있지?’라고 인증샷을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연에서는 고종 황제의 어새가 첫 번째 천상의 컬렉션에 올랐다.

평소 잊고 지냈던 문화재를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에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출신으로 프랑스 약탈 문화재 반환 소송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문화재 보호를 위해 힘써 온 서경석을 비롯해 평소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호스트로 나선 것도 눈길을 끌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윤정 PD는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문화재 리스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천상의 컬렉션’은 2부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오는 4일 오후 7시10분에 방송되는 2부에서는 서경석, ‘정도전’ ‘어셈블리’등을 쓴 드라마 작가 정현민, 뮤지컬 배우 겸 가수 배다해가 문화재 호스트로 나선다. 세 사람은 각각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김홍도의 불온한 그림인 ‘사계풍속도병’, 새 시대에 대한 염원이 담긴 이성계의 ‘발원사리함’, 그리고 국내 최초의 해저 보물선 신안선에서 발견된 ‘시가 쓰인 접시’를 소개할 예정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