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듣는 셰익스피어…영국 래퍼 아칼라
“내가 토해내는 것이 증오일지/ 혹은 기개를 위한 식량일지” “죄 지은 자 미치게 만들고/ 죄 없는 자 겁먹게 하며/ 무지한 자는 헷갈리게 하는 것.”

두 문장 중 어느 것이 고전 희곡에 나올까. 영국 래퍼 아칼라(사진)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 관객들에게 으레 이런 퀴즈를 낸다. 답은 후자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2막 2장에 나오는 대사다. 전자는 미국의 유명 래퍼 에미넴의 ‘레니게이드’ 중 한 구절이다.

그룹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 아킬라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희곡 대사를 랩에 접목한 공연을 오는 3일 서울 신문로 복합공간 에무에서 선보인다.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아칼라를 1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통 다섯 구절 정도를 가지고 질문해요. 수백 번을 해봤는데 질문을 모두 맞추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대학 교수나 영국 글로브극장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랩에선 비트를, 고전 희곡에선 고정관념을 뺀 채 언어만 끌어내면 결국 둘이 같아진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 희곡은 예전에나 쓰인 말로 쓰였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대에 쓰이지 않는 단어는 전체 중 5%도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노래 가사엔 대부분 셰익스피어의 글이 들어가 있다. 컴퍼니는 공연과 함께 청소년이나 신진 예술가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소극장이나 감옥 등을 찾아가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워크샵을 열기도 한다.
아칼라
“우리는 랩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대중문화로 끌어옵니다. 영국에선 셰익스피어가 엘리트의 상징으로 통하지만 정작 그의 당대엔 관객의 90%가량이 문맹이었고, 그들이 대중문화의 주류였어요. 이를 되돌려보고 싶었습니다. 셰익스피어 랩 공연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자신감을 줘요. ‘어려운 줄 알았던 것이 알고보니 아무것도 아니네’라고 생각하게 하죠.”

아칼라는 이민 3세다. 조부모가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자메이카 음악 특유의 리듬을 듣다보니 랩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희곡 모음집을 읽는데 이게 동떨어진 남의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내 얘기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1세기에도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인간으로 사는 것에 대해 글을 썼으니까요. 선의와 재능, 위선, 사랑, 권력, 죽음 등을 다루잖아요. 예를 들어 멕베스는 권력 추구가 극에 달했을 때 인간성이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어제, 10년 전, 100년 전 신문을 보면 비슷한 일을 쉽게 찾을 수 있죠.”

그는 “음악이 그렇듯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움직이고, 상상을 자극한다”고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관객들도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전에도 이탈리아 등 영미권 밖 국가에서 공연을 열었다. “음악은 단순한 말이 아니에요. 랩의 흐름과 비트, 래퍼의 표정, 톤과 동작이 모두 음악이니 이해하기 더 쉽죠. 한국 관객에게도 어렵지 않을겁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