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이 1792인 택시를 탔는데, 숫자가 상당히 따분하게 느껴지더라네"(하디 교수)

"그것은 정말 재미있는 숫자입니다.두 쌍의 3 제곱수 각각의 합이 서로 일치하는 숫자 중 가장 작은 수입니다."(라마누잔)

이런 대화를 '밥은 먹었니?'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숫자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보이고, 그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수학 공식이 검증과정도 없이 어느 날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학 천재들이나 가능할 것이다.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맷 브라운 감독)는 인도 빈민가에 살던 수학 천재 라마누잔과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영국 왕립학회의 괴짜 수학자 하디 교수,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라마누잔을 보고 있노라면 실화라는 사실이 더 놀랍게 느껴진다.

라마누잔은 수리분석, 정수론, 무한급수 등 설명조차 어려운 3천900개의 수학 공식과 이론을 증명하며 '제2의 뉴턴'이라 칭송받는 천재 수학자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수의 분할' 공식을 증명하는 데 성공해 인도인 최초로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펠로우(특별연구원)에 임명됐다.

그동안 역사를 돌이켜볼 때 천재들의 삶은 불운한 경우가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그들의 능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천재들은 혼자서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마누잔의 삶은 태생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식민지 국민에다, 자국에서조차 최하층 계급이어서 인도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금지돼있다.

그런 그를 영국으로 불러 위대한 수학자로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바로 하디 교수다.

영화는 영국 식민시대인 1910년대 영국으로 건너가 갖은 차별 속에서도 연구에 몰두했던 라마누잔의 열정뿐만 아니라 그를 옆에서 응원하고 이끌어준 하디 교수와의 우정에도 초점을 맞춘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우 데브 파텔이 라마누잔 역을 맡아 열정적이면서도 고뇌에 찬 천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라마누잔의 멘토인 하디 교수 역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았다.

하디 교수는 평생 수학만 파고들어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하디 교수가 영국왕립학회 회원들 앞에서 라마누잔의 업적을 칭송하는 연설 장면에서는 그의 진정성과 뜨거운 우정이 객석으로까지 전해진다.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이 고안한 수학 공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의 공식이 세상에 나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증명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라마누잔은 수학 공식이 머릿속에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떠오른다며 증명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마치 한국 드라마 '대장금'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하였는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신다면"이라는 어린 장금의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일반인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의 직관을 보여준다.

수학 천재 라마누잔 이야기가 더 다가오는 것은 최근 한국사회에 수학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천재이면서도 수학자로 이름을 빛내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라마누잔의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줄지, 그 반대일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12세 이상 관람가.

11월3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