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시대, '쇼핑왕 루이'가 사는 법
남성 변기를 ‘샘’이란 제목으로 전시한 프랑스의 마르셀 뒤샹(1887~1968)은 당시 미술계의 문제아였다. 기능과 의미가 정해진 공산품을 엉뚱한 제목으로 전시해 예술작품이라 고집하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비슷한 작품을 연이어 내놓자 미술계는 점차 뒤샹의 예술 세계에 주목했다. 변기가 샘일 수도, 자전거 바퀴가 조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예술가의 아이디어나 과정도, 바라보는 시각도 예술’이라는 개념미술의 시작이다.

MBC 드라마 ‘쇼핑왕 루이’(사진)는 여러 면에서 뒤샹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루이(서인국 분)는 재벌 2세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한 저택에 고립된 채 산다. 즐기는 것은 오직 쇼핑. 세계 한정판은 물론 희귀한 제품을 귀신같이 잘 찾아낸다.

한 명품관 지배인이 비결을 묻자 루이는 대답한다. “앵프라맹스(inframince)! 그 물건들이 나에게 사달라고 말을 걸어요.” 앵프라맹스는 뒤샹이 말한 ‘알아채기 힘들 정도의 미세한 차이’. 이를 루이는 구분한다는 것이다.

고복실(남지현 분)도 마찬가지다. 루이가 재벌 2세로 자라 부유한 환경에서 안목을 키웠다면, 고복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산삼을 캐며 맑은 감성과 고운 심성을 키웠다. 세상의 첨단 문명과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 취약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 하나로 미세한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루이는 귀국해 만찬장으로 가던 도중 사고로 기억을 상실해 노숙자가 된다. 그는 산골에서 상경해 온라인 쇼핑몰 골드라인의 계약직 사원이 된 고복실과 우연히 만난다. 복실은 차츰 감성적인 스토리를 쇼핑몰 상품에 적용하는 재능을 발휘하고, 루이는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쇼핑왕’으로서의 안목을 살려 소비자를 도우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재벌 2세가 주인공이다 보니 기업을 지키고 뺏으려는 암투도 다룬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주된 얘기는 루이와 복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능력이다. 수천만원짜리 명품만 구입하던 재벌 2세 루이가 단돈 1만원으로 중고시장에서 트렌디한 맞춤옷 서너 벌을 너끈히 찾아내는 모습이 그렇다.

안목이란 경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복실이 아이디어를 팀장에게 빼앗긴 뒤에도 감성 여행 상품을 제안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 역시 힘없고 배경 없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루이와 복실을 두고 경합을 벌일 차 본부장(윤상현 분)도 마찬가지. 타고난 깐깐함과 패션 감각은 그 나름의 심미안이 있음을 드러낸다. 복실의 재능을 알아보고 루이의 엉뚱함을 인정하는 차 본부장은 창의적인 청춘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직장 상사의 모습이다. 백수건달 ‘취준생’ 인성(오대환 분)은 세상 물정 모르는 루이와 복실을 등쳐 먹는 못난 청춘 같지만 루이가 사기당하고 핍박받을 때 슈퍼맨처럼 달려가 해결하는 ‘사이다’ 사나이다.

휴대폰 하나로 세계 어디에서나 원하는 것을 사고 소유하는 첨단 자본주의 세상이다. 몸에 좋다면 무조건 사들여 가족을 괴롭히는 중년 여성(김보연 분), 한정판 명품 옷으로 무장하다 시즌이 바뀌면 내버리는 재벌 딸(임세미 분) 등 ‘끝없는 소비로 삶이 굴러가는 시대’에 더욱 허무해하는 현대인에게 쇼핑왕 루이는 질문을 던진다. “앵프라맹스! 그 물건엔 당신만을 위한 미세한 차이가 있나요?”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