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꽃할배' 귤화위지(橘化爲枳)?…힐링 빠지고 자극만 넘쳐나
미국 유명 인사 다섯 명이 한국 판문점에 간다. 남북한의 경계라는 선 위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떨어뜨리자 사이렌이 울리고, 군인들이 과장된 동작으로 일행을 위협한다. 일행 중 한 명이 영화 촬영지인 가짜 DMZ 시설에서 꾸며낸 장면이지만, 이를 모르는 나머지 출연자들은 “판문점은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도망간다.

지난 6일 밤 미국 전역에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베터 레이트 댄 네버(Better Late Than Never)’ 서울편(사 진)의 한 장면이다. 국내 예능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미국에 포맷을 수출한 tvN ‘꽃보다 할배(꽃할배)’의 리메이크판이다. 1회 시청자는 약 735만명으로 미국 전 방송채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이날 방영된 3회는 약 702만명이 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판 ‘꽃할배’는 한국 원본과 많이 달랐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연륜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풀어놓던 한국판 출연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현지 풍경을 담은 영상과 짧은 자막을 빠르게 전환해가며 얕고 자극적인 정보 위주로 외국을 소개한다. 일본 도쿄에서 후지산에 가보고 싶다는 출연진의 말에는 ‘후지산은 일본에서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자막이, 서울의 한 시장에서 산낙지를 본 출연자들이 “이건 음식이 아냐”라며 질색하는 장면 뒤엔 “매년 낙지 빨판이 목에 걸려 죽는 사람이 나온다”는 자막이 이어지는 식이다.

출연진의 태도는 털털함과 무례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찾지 못한다. 이들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내뱉은 첫 감상은 “여긴 키 작은 사람들 천지네”다. 한국의 찜질방이나 어시장 등 독특한 외국 문화 앞에선 “미친 거 같아(This is crazy)!”를 반복한다. 잔심부름과 가이드 역할을 맡은 젊은이가 방송 중간에 “미안합니다. 아시아분들”이라고 말할 정도다. 한국판 그리스 편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음을 느꼈다”고 한 배우 이순재, 프랑스 베르사유 잔디광장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청춘은 아름답다”며 감탄하던 배우 신구와 같은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자극적인 내용을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보였다. 이날 방송은 “한국 정부가 소녀시대 노래를 북한으로 방송했고, 이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고 했다. 걸그룹 소녀시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2005년 5월 대학생들의 미군 주둔 반대 시위 장면을 자료사진으로 함께 내보냈다.

현지 언론의 평가는 차갑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18일 리뷰 기사에서 “베터 레이트 댄 네버는 이 시대 ‘TV의 황금기’를 그대로 역행하는 방송”이라며 “아시아 음식은 모두 공포스러운 실험처럼 묘사하는 등 동양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함부로 제시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달 22일 베터 레이트 댄 네버에 대한 리뷰 기사에서 “2016년에, 주요 방송사에서 이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진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한국 프로그램의 포맷을 접목한 동서양 문화의 합작품임을 고려하면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