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의 강' 동양 특유 한(恨)의 정서, 객석 사로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설 때 고통은 말할 수 없다.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슬픔에 그 경계를 뛰어넘어 다시 만나기를 염원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현대 오페라 ‘도요새의 강’(사진)은 이런 사별(死別)의 고통을 직시한다.

“날 데려가요, 날 놔줘요(Let me in, let me out)”라는 여인의 울부짖음은 절절하다. 그 여인은 아들을 잃은 뒤 극심한 고통으로 미쳐버렸다. 절망의 끝이다. 죽음의 문턱으로 들어선 아들을 뒤따라 자신도 함께 가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느껴진다.

지난 28~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펼쳐진 ‘도요새의 강’은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과 아픔을 다룬 낯선 오페라다. 남녀 간의 사랑이나 권력 문제를 다룬 기존 오페라와는 달랐다. 강렬한 흡인력은 낯섦을 압도했다. 불안과 아픔의 시대, 치유와 구원의 메시지를 묵직한 울림으로 전달했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쓰고, 이경재가 연출한 이 공연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관객석에서 시작됐다. 수도승 9명이 “오, 쓰러진 아이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자”라고 노래를 부르며 관객석에서 무대로 내려왔다. 그들은 공연 내내 낮은 목소리로 깊은 슬픔의 합창을 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일부 관객은 그들의 노래에 맞춰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조성 없이 흘러가는 악기 선율은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불협화음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며 죽음을 다룬 극과 어우러졌다. 브리튼이 일본 전통극 ‘노’를 보고 만든 음악인 만큼 동양적인 선율도 강렬하게 울려퍼졌다. 이는 동양 특유의 ‘한(恨)’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다.

어머니 역까지 모두 남자 성악가로만 채워진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얼굴에 페인팅을 한 것도 도움이 됐지만, 그보다 세심한 연기가 성별의 차이를 잊게 했다. 어머니 역을 맡은 테너 서필은 미성에 가까웠으며, 아픔을 견디다 못해 쏟아내는 폭발적인 울분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죽은 아이의 영혼이 나타나는 장면에선 많은 관객이 울음을 터뜨렸다. 저 멀리서 들리는 듯 흐릿한 음성이었지만 맑고 투명한 아이의 목소리가 신비함을 더했다. “죽음은 다시 오는 것이에요. 그 축복받은 날, 천국에서 만나요.”

이 작품에서 푸치니, 베르디 등의 오페라에서 흔히 보던 화려함과 웅장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어둡고 때로는 감정의 불편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슬픔이 조용히 잊혀지길 기다리며 ‘Let me out’만을 외쳤던 현대인들에게 그 감정을 꺼내보고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하는 ‘Let me in’의 작품이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