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 "악역 익숙해요!…그릇에 어울리는 음식 만들어야죠"
“제 영화를 보면 항상 아쉽습니다. 이번에도 만족도가 크진 않아요. 강조했던 지점들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어요. 가령 총격 신에서 좀 더 밀도감을 높였으면 좋았을 겁니다. 저의 쌍둥이 배역도 너무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렀고요.”

조진웅(사진)이 29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사냥’에서 황금에 눈먼 두 형사 역으로 나선다. 아쉽다며 짜게 점수를 매긴 그의 평가와 달리 ‘사냥’은 “볼 만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산속에서 금맥이 발견된 뒤 사냥꾼들이 총을 갖고 몰려들면서 살육극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조진웅은 여기에서 황금을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형사라는 직분을 잊은 채 범죄를 저지르고 목격자(안성기 분)를 뒤쫓는다. 지난해까지 ‘끝까지 간다’ ‘명량’ ‘암살’ 등에서 인상적인 조역으로 활동한 그가 올 들어 드라마 ‘시그널’의 정의로운 형사 역으로 인기몰이를 한 데 이어 상영 중인 영화 ‘아가씨’의 변태 노인, ‘사냥’의 악역까지 주역으로 올라섰다.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해저의 보물섬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런 황당한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했죠. 이 영화도 금광을 찾아낸 사람들의 얘기예요. 금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하나의 아이콘이죠. 금을 보면 멀쩡한 눈도 돌아갑니다. 그것도 인적이 드문 산속이니까, 탐욕과 광기가 드러나기 훨씬 쉽겠지요.”

그는 여기에서 도시 경찰인 동근과 시골 경찰인 명근 역을 해냈다. 같은 직업이면서 쌍둥이다. 이우철 감독은 관객에게 혼돈을 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설정이라고 했다. 명근이 타고난 악인이라면 동근은 황금을 본 뒤 점점 악인으로 변하며 광기로 치닫는다.

조진웅 "악역 익숙해요!…그릇에 어울리는 음식 만들어야죠"
“동근이는 내린 머리에 꼭 맞는 옷을 입고, 산속에서 활동하는 인물이죠. 명근이는 올백스타일 머리로 산 밖에서 활동하고요. 형인 동근이가 좀 더 무겁고 사교성이 부족한 캐릭터죠. 명근이는 ‘어차피 반장이 될 것인데’라고 생각하며 만사를 귀찮아하는 타입입니다. 쌍둥이 간에 약간 차이를 두려고 했어요. 하지만 쌍둥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보고, 연기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국민배우’ 안성기와 싸우는 액션 연기에서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극 중 그는 사냥꾼 안성기를 때려서 쓰러뜨리고 마구 발길질을 한다.

“쓰러진 선배를 밟으니 괴로웠죠. 하지만 안성기 선배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해줬어요. 체력이 대단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선배로 불러달라고 하시더군요. 너희와 동료라면서요.”

그는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섰다. 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비결이 뭘까. 정의감 넘치는 형사(‘시그널’), 탐욕에 빠진 형사(‘사냥’ ‘끝까지 간다’), 변태 노인(‘아가씨’), 일본 장수(‘명량’), 독립군(‘암살’) 등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그럴듯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영화계에서는 보고 있다. 변태 노인 역을 위해 살을 18㎏이나 뺀 일화는 유명하다.

“역할은 다르지만 조진웅은 한 사람입니다. 변해봤자 얼마나 변하겠어요. 그러나 전작에서 한 캐릭터를 다른 작품에서는 달리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땐 그거고, 지금은 이거죠. 그래서 감독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합니다. 영화 속에 녹아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죠. 암살이나 명량에서는 배역을 위해 역사 공부도 했어요.”

이번 영화처럼 악역을 많이 맡는 데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는 “악역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며 “나는 하나의 재료일 뿐 용기에 어울리는 음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