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민 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말러 이어 바그너 오페라 도전"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클래식 무대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들어볼 기회가 흔치 않았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생소하고 난해한 말러 음악의 연주를 꺼렸기 때문이다. 1999년 마에스트로 임헌정이 이끄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전곡(1~10번) 연주에 나섰을 때 클래식계에서 ‘무모한 도전’이란 평가가 나온 이유다. 부천필하모닉은 뚝심으로 밀어붙여 2003년까지 완주에 성공했다. 국내 ‘말러 열풍’의 시작이었다.

부천필하모닉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번엔 오페라의 대가 리하르트 바그너다. 지난해 1월 임헌정에 이어 부천필하모닉을 맡은 박영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사진)가 바그너 시리즈를 이끈다.

“말러에 이어 바그너 오페라란 새 역사를 쓰고 싶습니다. 오는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이는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공연을 출발점으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

박 감독은 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일 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장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1~7번)을 연주해 주목받았다. 그가 새로운 도전으로 교향곡이 아니라 바그너의 오페라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바그너 오페라에선 오케스트라가 성악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작품의 흐름을 이끌며, 웅장한 관현악을 선보입니다. 첫 번째 연주곡인 탄호이저는 바그너 오페라 중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와 ‘순례자의 합창’ 등 잘 알려진 음악으로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입니다.”

‘탄호이저’ 공연은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반 오페라 공연과 달리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른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성악가의 노래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 감독은 “오케스트라 역량이 한껏 발휘되는 무대가 될 것”이라며 “말러 붐을 일으킨 것처럼 이번엔 바그너란 큰 산을 넘어 그의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그너 시리즈를 계기로 부천필하모닉을 오페라 등 다양한 종합예술을 지향하는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박 감독은 “베를린필하모닉도 오페라 무대를 많이 갖는다”며 “그런 경험이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보다 풍성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연주도 늘린다. 지난달엔 일본 가나자와에서 열린 ‘라 폴 주흐네’ 축제에서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공식 초청을 받았다. 박 감독은 “클래식 수준이 높은 일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며 “자리를 구하지 못한 관객이 입석 관람권까지 구해 감상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 투어를 할 계획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먼저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인정받은 뒤 유럽으로 나아가 세계 속의 오케스트라로 성장할 것입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