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에서 금발마녀 글린다(아이비)와 초록마녀 엘파바(박혜나)가 에메랄드시티에 도착해 놀라워하고 있다. 클립서비스 제공
지난 18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에서 금발마녀 글린다(아이비)와 초록마녀 엘파바(박혜나)가 에메랄드시티에 도착해 놀라워하고 있다. 클립서비스 제공
“배우마다 자신만의 그릇이 있어요. 차지연 씨는 무대에 서면 독보적인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게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 위에 차지연 씨만의 색깔을 덮어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냅니다.”(박혜나)

“저는 남들 주목받는 꼴을 못 보는, 나르시시즘이 강하고 철없는 글린다예요. 아이비 언니는 좀 더 A형 같은 느낌이에요. 소심하지만 사랑스러운 글린다죠. 느낌이 정말 다르니, 두 공연 다 보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정선아)

지난 20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만난 ‘위키드’ 원년 멤버들이 새로운 멤버에 대해 한 말이다. 뮤지컬 위키드가 최고 여배우들과 함께 돌아왔다. 오는 6월19일까지 열리는 이 공연에 이어 7월12일부터 8월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서울 관객을 만난다. 초록마녀 엘파바 역의 차지연(34)·박혜나(34), 금발마녀 글린다 역의 정선아(32)·아이비(34).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여배우들인 만큼 각자 자신만의 ‘마녀’를 개성있게 표현해낸다. 차지연·정선아 페어, 박혜나·아이비 페어의 공연을 하루 간격으로 같은 좌석에서 지켜봤다.

위키드는 명작 동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뒤집은 작품이다. 조연이던 두 마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양철인간, 사자, 허수아비는 왜 그렇게 변했을까’ ‘서쪽의 나쁜 마녀는 어떻게 물 한 바가지에 사라져버렸나’ 등 원작을 읽고 궁금하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늘 특이한 외모 때문에 소외되지만 똑똑하고 정의로운 초록마녀 엘파바와 철없지만 마음 착한 금발마녀 글린다의 우정과 성장 과정이 큰 줄거리다. 그 안에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는 진리를 전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2003년 초연한 이후 12년째 박스오피스 1위(연간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54번의 무대 변화, 350여벌의 화려한 의상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20일 첫 공연을 마친 차지연은 초록 마녀 그 자체였다. 폭발적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는 물론, 170㎝를 훌쩍 넘는 큰 키와 긴 팔, 큰 손 등 신체적 조건에서 나오는 존재감도 컸다. 박혜나가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묵직한 엘파바라면, 차지연이 표현하는 엘파바는 좀 더 한스러운 정서가 녹아있다. 특히 정의를 위해 계속 싸우겠다는 뜻으로 부르는 ‘중력을 벗어나’에선 폭발적인 에너지와 카리스마로 공연장을 휩쓸었다.

1막에선 뺑뺑이 안경에 골무 모자를 쓰고 외모 때문에 늘 자신감 없는 엘파바를 선보인다. 차지연이 이런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처음인데, 그런 모습이 엘파바의 변화를 더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글린다와의 우정을 노래하는 듀엣 ‘널 만났기에’에서는 음악적 섬세함도 놓치지 않았다.

글린다 역의 아이비가 왕관을 쓰고 내려오는 장면에선 바비 인형이 내려오는 듯했다. 정선아의 글린다가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라면, 아이비는 좀 더 사랑스럽고 상냥한 글린다를 연기한다. 성악 발성과 진성을 오가는 부분에서도 안정적인 노래를 선보인다. 아이비는 공연 전 “위키드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꿈을 이룬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했다. 금발 마녀 역을 위해 머리카락까지 탈색했다. 가발 틈새로 보이는 검은 머리가 싫다는 오리지널 팀 프로듀서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성악 발성을 위해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 노력의 결과가 무대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선아와 박혜나는 2013년 공연 때보다 더 무르익은 연기와 노래를 선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엘파바를 연기한 박혜나는 한층 단단하고 묵직한 엘파바를 선보인다. 음악은 더 정교해지고 섬세해졌다. 정선아는 특유의 사랑스러움에 애드리브까지 소화한다.

네 사람에게 노래, 연기, 딕션(발음)은 그야말로 기본이다. 정선아가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것처럼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혹독한 연습의 결과다. ‘네 마녀’는 탄탄한 기본기 위에 자기만의 그릇으로 캐릭터를 표현해낸다. 어떤 페어를 골라도 후회가 없는 공연이다. 6만~14만원.

대구=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