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극 '아이가 다섯', 안방극장 달구는 싱글대디·싱글맘 재혼 로맨스
가장 친한 친구가 서른이 넘도록 백수다. 그런 친구가 안타까워 남편 회사에 취직하게 도왔다. 사무실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며 일하던 남편과 친구는 결국 바람이 났고 아내는 얼결에 애 셋 딸린 이혼녀가 됐다. 또 다른 사연도 있다. 천사 같은 아내가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남매를 둔 ‘싱글대디’가 됐는데 장인과 장모는 “사위도 아들”이라며 더 극진히 챙긴다. 아내 없는 처가와 살림을 합친 뒤 때론 집에 있어도 회사에 있는 듯 긴장되는 삶이다.

KBS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연출 김정규, 극본 정현정)의 주인공 미정(소유진 분)과 상태(안재욱 분)가 갖고 있는 갈등이다. 남편(권오중 분)과 친구(왕빛나 분)의 불륜으로 이혼한 미정은 그 사실을 아이들은 물론 유일한 의지처인 할머니(성병숙 분)에게도 비밀로 한다. 상처(喪妻) 후 부유한 처가의 강권으로 살림을 합친 상태는 본의 아니게 장인(최정우 분)과 장모(송옥숙 분)의 간섭과 감시를 받는다. 막장에 치정까지 얹혀진 ‘사랑과 전쟁’ 류의 서사 구조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데도 ‘아이가 다섯’이 싱글맘과 싱글대디의 가족과 얽힌 삶을 섬세하게 다뤘다는 평을 들으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3월27일 기준 26%)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와 배경인데도 매회 시청률이 급상승하는 비결은 어둡고 답답한 상황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풀어내는 데 있다.

캐릭터를 소개하고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는 초반은 심각한데도 웃음이 터져나오도록 안배했다. 딸도 없는 사위를 끌어안고 ‘아드님’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는 장인과 장모에게 “사위 자식은 개자식이라는 말도 있다”며 꼬집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이혼한 전 남편이 동네에 빵집을 차리며 분란을 일으키자 “바람피웠던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어”라며 ‘어퍼컷’을 날리는 주인공도 있다.

미정이 처한 상황이 수면에 드러나는 2회 엔딩은 여느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과정을 고속카메라로 슬랩스틱 코미디(연기가 과장되거나 우스꽝스러우며 사회적인 풍자로 이뤄진 것)처럼 묘사해 뻔한 막장이 아니라 신선한 코믹 가족물임을 드러냈다.

영화적인 기법이 가미된 명품 드라마의 표피를 갖고는 있으나 주제 자체가 주는 어려움은 여전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혼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면을 채우는 요즘 아이 셋인 싱글맘과 아이 둘인 싱글대디의 로맨스를 전제로 한다는 점은 얼핏 거부감부터 든다. 드라마 속 주변 인물이 틈만 나면 “아이는 엄마 아빠가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콩쥐나 신데렐라 이야기를 예로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0대 이상의 재혼율이 50%를 넘긴 지 오래다. 각자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의미의 재혼 가정을 이뤄 행복을 찾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다섯’에서 그려지는 유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는 최근의 엽기적인 사건을 감안하면 한층 더 판타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앞으로 그려질 다섯 아이 사이의 갈등과 화합, 주변 인물의 변화는 많은 기대를 자아낸다. 초등학교 한 반에 싱글맘, 싱글대디, 조손 가정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