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독주회 여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격동의 1910년대 겪은 거장들 숨결 들려줄게요"
모리스 라벨(1875~1937)은 전쟁의 포화를 온몸으로 겪은 작곡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해 전우들이 죽어가는 참상을 지켜봤다.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이끌고 의병 제대한 그는 3년 동안 거의 작곡을 하지 못했다. 15마디에 불과한 ‘프런티스피스’를 제외하고 이 시기에 여섯 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을 유일하게 남겼다.

17일 피아니스트 손열음(30·사진)이 서울 한남동의 음악감상실 스트라디움에서 전장에서 희생된 동료를 기린 이 곡을 연주하자 특유의 명징하면서도 처연한 감상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손열음이 독주회 투어공연으로 돌아온다. 2013년 첫 독주회를 열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전석 매진시킨 지 3년 만이다. 당시 프로그램은 알캉의 ‘이솝의 향연’,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등 다채로웠다. 이번에는 주제가 단순 명확하다. 20세기 초 음악이다. 사실은 더 좁다. 한 곡을 제외하면 전부 1910년대 작곡된 곡이다. 오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비롯해 20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대전 창원 군포 대구 울산 여수 부산 성남 등을 도는 투어공연의 타이틀은 ‘모던타임즈’.

“굉장히 하고 싶던 주제예요. 191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등 세상의 패러다임이 큰 폭으로 바뀐 시기예요. 이른바 ‘강제 세계화’가 된 시기이기도 한 것 같고요. 그때부터 딱 100년 지난 시점에서 당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어요. 한국도 엄청난 변화의 시기였죠.”

아돌프 슐츠-에블러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에 의한 아라베스크 변주곡’에서 시작해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을 거쳐 ‘스와니’ 등 조지 거슈윈의 세 곡을 연주한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페트루슈카’의 3악장을 들려준 후 라벨의 ‘라 발스’로 마무리한다. 1867년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해 아돌프 슐츠-에블러가 편곡한 변주곡이 유일한 1910년대 이전 곡이다.

“전쟁 전 유럽의 풍요롭던 시절을 보여주고 싶어 이 곡을 첫 곡으로 골랐어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1800년대 말 유럽의 중심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죠. 이 곡이 부귀영화를 보여준다면 끝 곡인 ‘라 발스’는 빈 왈츠의 형식을 무너뜨린 곡이어서 대조적이에요. 왈츠를 흉내내고 있지만 중반 이후부터 일그러진 형태의 왈츠들이 등장하거든요.”

그가 무척 아끼는 곡인 ‘페트루슈카’는 인간도 무생물도 아닌 기괴한 존재인 꼭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의 비극적 이야기가 담겼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심리적이고 내면적입니다.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사람인지 인형인지 고민하는 ‘페트루슈카’를 닮았다는 점에서 현대적 정서와도 맞물린다고 생각해요.”

이번 연주회 곡들은 17일 유니버설뮤직의 클래식레이블 데카를 통해 발매한 동명의 앨범에도 수록돼 있다. 음반도 쇼팽의 녹턴 앨범 이후 8년 만이다. 앨범에 수록된 알반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은 대중성을 고려해 공연에서 뺐다는 설명이다. 손열음이 공연에서 선보이는 거슈윈의 세 곡이 앨범에서 모두 빠진 것은 재즈와 관련한 음반을 따로 제작할 계획이어서다. 지난해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그는 “바로크음악만을 연주하는 공연도 하고 싶다”고 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