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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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어린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무대에 오른 문근영은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다시피 했고, 그의 연기 외적인 것들 또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였든 간에 대중의 기억 속에 문근영은 항상 ‘주연급 연예인’이었다.

2015년 문근영의 행보는 이전과 조금 달랐다. 영화 ‘사도’에서는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 사이를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혜경궁 홍씨를 맡았으며,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에서는 이미 벌어진 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퍼즐조각을 모으는 한소윤을 연기했다. 이를 두고 ‘주연급 연예인’이었던 문근영이 무대 중앙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는 문근영은 2015년, 무대를 넓게 쓸 줄 아는 배우가 됐다.

Q. ‘마을’은 장르의 특성상 지상파에서 방송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드라마다. ‘마을’의 주인공을 선택하고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문근영 : 원래부터 장르물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지상파에서 이런 장르물을 제작하고, 게다가 멜로가 전혀 없다는 말에 호기심이 갔다. ‘그래, 내가 한 번 해보지’ 하는 마음으로 감독님과 작가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과 작가님도 “새로운 시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도전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을’에 참여하게 됐다.

Q.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없는 것 같다.
문근영 :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낯도 많이 가리고, 마음을 여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어떤 부분에선 굉장히 담대하게 시도하고 도전한다. 연기적으로도 비슷하다.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픈 마인드였던 것 같다.

Q. 지난 여름 KBS2 ‘1박 2일’에 출연해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들을 보여줬다.
문근영 : 친한 친구들은 평소 내가 TV 나오는 것을 보면 부끄럽다고 말한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문근영 같지가 않다고. 그런데 ‘1박 2일’에서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편하게 봤다고 말하더라. ‘1박 2일’에서 보여준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다. 그런데 주변에선 ‘색다르다’, ‘재발견이다’ 이런 말을 해주니까 너무 의아했다. 그냥 원래 내 모습대로 행동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그동안 대중들이 날 색안경 끼고 봤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더라.

Q. 앞으로 예능 출연 계획은 없나?
문근영 : ‘1박 2일’은 정말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 못할 정도로 즐거웠다. 내가 그랬으니까 보시는 시청자들도 즐겁게 보고, 웃고 재미를 느끼셨을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예능을 한다면 ‘1박 2일’ 만큼 재미있게 할 자신이 없다. (웃음)

Q.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크라임 씬3’를 제작한다면, 거기에 한 번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에 ‘마을’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문근영 : 안 그래도 ‘크라임 씬’에는 꼭 한 번 나가보고 싶다.

Q. 얼른 ‘크라임 씬’ 팀은 새 시즌을 준비해야겠다. (웃음) ‘마을’은 배우들도 범인을 추리하며 촬영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주인공이었던 문근영은 추리에 성공했는지 궁금하다.
문근영 : 어쨌든 범인은 맞췄지만, 중간에 많이 헤맸다. 기헌 오빠(온주완)와 김혜진(장희진)의 친엄마가 누구인지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난 뱅이아지매(정애리)라고 했고 기헌 오빠는 윤지숙(신은경)이라고 했다. 결국 혜진의 친엄마가 지숙으로 드러나면서 10만원을 잃었다.

Q. 쉬는 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서 범인이 누구일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겠다.
문근영 : 다 같이 게임하듯이 범인을 추리하고, 모두들 모이면 서로 “네가 범인이지”라고 추궁했다. 모두 범인을 궁금해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범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웃음)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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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을’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소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었던 아가씨(최재웅)을 집으로 불러 저녁밥을 차려줄 때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문근영 : 어쨌든 대본에 쓰여 있는 내용이니 난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대본을 고쳐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래서 대본을 받고 감독님과 이런 저런 얘기 많이 했었다. “감독님, 이 신은 찍으라니까 찍겠는데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집까지 데려와서 밥을 먹여주는 거예요”라고 말하니까 “얘(아가씨)가 언니에 대해서 알고 있잖아. 무서워도 정보를 어떻게든 알아내야지”라고 말씀하시더라. 그 자리에서 납득이 됐다. 어떻게 찍어야 할지 방향도 잡혔고. 날 죽이려고 했던 살인범이고, 무섭지만 언니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으니까 그 정보를 들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Q. 연기적인 고민들은 어떻게 해소하는가?
문근영 : 우선 대본을 많이 보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고민을 하고, 연습을 하는 것이 1단계다. 앞뒤 맥락을 다 봐도 납득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면 감독님과 작가님께 여쭤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안 되면 될 때까지 감독님께 묻던가 아니면 ‘계산’이란 걸 한다. 스태프들한테도 물어본다. 내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들은 스태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날 가장 먼저 보는 첫 번째 시청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내 연기가 어땠는지, 어떤 장면에서 이해가 갔는지를 자주 묻는다. 그런 대화들을 많이 하면서 고민들을 스스로 정리를 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무엇인가?
문근영 : 16회 아가씨의 집에서 그와 정면으로 대면하는 신이 기억에 남는다. 신 넘버도 생각난다. 신 넘버 68, 그 장면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분량이 A4용지 4~5장이었다. 감정의 폭도 크고 중간에 액션도 가미돼 있었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긴 신이었다. 한 다섯 신을 한 번에 찍은 셈이었다. 찍기 전부터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았다. 그래도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많이 배려해줘서 걱정보다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그게 마침 ‘마을’ 전체 마지막 촬영이었다. 밤새면서 말 그대로 하얗게 불태웠었다.

Q. ‘마을’에서 소윤이는 과거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마치 기자처럼 취재를 하고 다녔다. 소윤은 가장 중요한 사건인 ‘누가 김혜진을 죽였나’에 휘말려 있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조금 심심했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많이 주목을 받지 못해 아쉽지는 않았나?
문근영 : 처음부터 그런 역할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나 속상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내가 어느 선까지 감정을 보여줘도 되는 건지 고민이 많았다. 내가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사연들을 들으며 김혜진과 윤지숙 사이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는 역할을 했다. 순차적으로 조각을 찾는 것도 아니고, 매번 빠진 조각을 찾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내 연기를 하다가 자칫 극의 전체 밸런스를 깨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조심스럽게 연기를 했다.

Q. ‘마을’의 내레이터로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캐릭터는 무엇이었나?
문근영 : 아가씨다. 가장 흔치 않은 캐릭터 아닌가. 남장여자에다가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는 연쇄살인범. 또, 되게 똑똑한 사람이다. 약을 조제할 수 있는 기술도 있고, 중국에 서버를 둔 채팅 프로그램을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도 하고, 주식으로 돈도 많이 벌고. 한번쯤 그런 비상한 사람이 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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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윤이가 언니를 열심히 찾아다녔던 것에 비해 정작 장희진과 같이 등장하는 신은 거의 없었다.
문근영 : 죽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 번씩 보고, 꿈에서도 보고. 몇 번 못 만났다. (웃음)

Q. 소윤이가 혜진이랑 같이 보낸 시간은 고작 5년 밖에 되지 않는다. 5살에 헤어진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소윤을 이해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문근영 :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소윤에게 ‘어린 시절 내 가족’이라는 기억이 크게 각인됐던 것 같다. 혜진이 비록 피를 나눈 언니는 아니지만 ‘핏줄 그 이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나 역시 지금 당장 내 동생이 같은 핏줄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끝까지 ‘내 동생은 내 동생’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팩트를 뛰어넘는 감정의 공유가 존재한다. 덧붙여 소윤이는 자의는 아니었지만, 언니를 버린 사람이 됐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살아서 언니와 만났다면, 첫 질문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였을 텐데 백골이 돼서 만났으니까 당연히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지 않았을까.

Q.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려는 아치아라 사람들 때문에 소윤이는 끝까지 언니의 죽음과 관련된 숨겨진 비밀들을 파헤치려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문근영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자. 진실에 집착하는 소윤이 때문에 진실을 숨기고, 외면하려는 아치아라 사람들의 진짜 얼굴이 더 실감나게 느껴진 것은 아닐까. 나는 소윤이는 그저 언니와 관련된 진실들이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윤이가 마을 사람들과 맞서서 뭘 어떻게 하겠나, 그들에게 맞설수록 자기만 답답한데. 그러니까 자길 죽이려고 했던 아가씨를 다시 찾아가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저질렀던 거지. 소윤이에게 ‘난 너희들과 달라. 진실을 밝힐 거야’ 같은 사명감과 의무감은 없었다.

Q. ‘마을’에는 성범죄, 출생의 비밀, 불륜, 희귀병 등 웬만한 막장 드라마가 사용하는 재료들이 모두 있었다. 그것들을 가지고 명품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문근영 : 작가님께서 ‘마을’을 통해 “작은 불의를 눈감으면 큰 불의까지 눈 감게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고 하시더라. 바꿔 말하면 우리 작은 불의를 눈감지 말자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의 소재를 사용했지만, 이를 1차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치아라에서 일어난 어떤 불의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그것을 끝까지 파헤치고, 끈질기게 보여줬다. 지금도 여전히 상처받는 사람들을 낱낱이 보여줬기 때문에 막장 소재들이 사용됐음에도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평가해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Q. 연기를 하면서 가장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문근영 : 소윤이란 캐릭터 자체가 무난한 면이 있어서 연기를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진 않았 다. 대신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조심스러웠다. 내가 세게 말을 하면 주장이 되고, 힘을 완전히 빼고 연기를 하면 부드러운 설득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떤 톤을 유지한 채로 대사를 해야 하는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마음을 담아 연기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내가 어떻게 리액션을 하냐에 따라서 시청자들이 그 사연을 받아들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Q. 작품에서 한발 물러나 극중에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그 사건들을 소개시켜주고 연결해주는 내레이터 역할에 대한 노하우를 체득했겠다.
문근영 : ‘마을’에는 사건에 대한 퍼즐들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 퍼즐들을 모으는 것이 소윤이가 맡은 역할이고 ‘마을’의 또 하나의 축이었다. 그 축을 유지하고, 다른 축과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되게 어려웠다. 대충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웃음)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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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이 끝난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문근영 말고 누가 소윤이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 된다. ‘마을’을 처음 하겠다고 했을 때 감독의 반응이 궁금하다.
문근영 : “네가 소윤이를 꼭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씀은 안 하시고, “문근영, 독특하네~”라고 하셨다. (웃음) 감독님이 “이거 왜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시기에 이런저런 이유들을 이야기하니까 독특하다면서 “해준다고 하니 고마운데,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오히려 그런 얘기들만 하셨다. (웃음)

Q. 죽은 줄 알았던 노회장이 살아있다던 것이나, 한정판 신발을 언급한 것도 그렇고 ‘마을’이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시 ‘마을’ 시즌2 소식은 없었나?
문근영 : 감독님께서 일부러 여지를 남겨두고 마무리 지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래도 장르물인데 모든 걸 다 마무리 짓고, 한 번에 끝나면 아쉽지 않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기다리는 맛이 있어야 재미인데. 그래서 아치아라 마을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내용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고 생각한다. 시즌2가 제작돼도 소윤이는 내용상 캐나다로 갔기 때문에 내가 다시 출연하는 것은 힘들 것 같고, 카메오 출연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Q. 치정극이나 끈적끈적한 멜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눈물 연기도 일품이니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
문근영 : 해보고 싶다. 요즘은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많이 없다. 배우들끼리도 이제 그런 드라마가 한 번 나올 시점이라고 이야기한다. 끈적한 멜로가 됐든, 가슴 절절한 가족 이야기가 됐든.

Q. 국문과 출신이지 않나. 직접 그런 시나리오를 써보는 것은 어떤가?
문근영 : 내가 국문과에 다니면서 배운 건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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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쉽게도 ‘마을’에선 전작에 비해 문근영의 눈물 연기를 많이 볼 수 없었다. 문근영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것을 보면 시청자들 또한 그 감정에 빠져든다. 태생적으로 눈물 연기를 잘 하는 건가? 노하우가 따로 있는지?
문근영 : 감정이 예민해서 극중 상황에 금방 빠져드는 편이다. 전작에서 내가 그렇게 울었던 장면들은 내가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이미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울면서 읽었던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오히려 감정을 정돈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을 테고. 태생적으로는, 나도 몰랐는데 눈물이 가득 차게 돼 있는 눈이다. (웃음) 같이 일한지 8년 된 스타일리스트가 나한테 “눈이 이상하다”고, “움푹 파인 부분이 있어서 눈물을 담아뒀다가 댐에 물이 꽉 차면 수문을 열듯이 눈물이 쏟아내는 것 같다”고 하더라. 이렇게 태어나게 해주신 엄마, 아빠한테 감사드린다. 이런 식으로 눈물 흘릴 배우가 몇 안 되는 것 같다. (웃음)

Q. ‘신데렐라 언니’가 끝나고 나선 ‘문근영 군대 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공백기가 긴 편이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그런 걸까?
문근영 : 자꾸 이상한 캐릭터만 찾다보니까 (웃음) 작품을 많이 할 수 없더라. 마음은 다작을 하고 싶은데, 내가 작품을 고르는 취향은 다작과 거리가 멀다. 또,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전형성을 띠고 있는 것들인데 자꾸 난 그럴 수 없는 걸 찾는다. 그러다보니까 흥행이나 이슈적인 면에서 팬들의 갈증을 많이 못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몇 번은 나한테 마음에 덜 와 닿더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후회만 남았다. 나는 연기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인데, 재미있지 않은 캐릭터를 하고 있으니까. 그냥 에너지만 소모하는 느낌? 그래서 이왕 하는 거 내가 재미있는 캐릭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Q. 마지막 방송이 있던 날, 종방연에 참석할 시간도 쪼개가며 팬들이 모인 ‘막방 단관’ 현장을 찾았다. 팬들과 애틋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팬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근영 : 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없다. (웃음) 팬들은 내가 있어달라고 말한다고 있어줄 사람도 아니고, 내가 가라고 해서 갈 사람도 아니지 않나. 곁에 있어주면 고맙고, 떠나면 아쉽고. 난 연기를 재미있게 하고 싶다. 내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다면 계속 옆에 있고, 아니면 말고. (웃음)

Q. 최근 인터뷰에서 “오춘기를 깊게 겪었다”는 말을 했더라. ‘오춘기’에 어떤 고민들을 했었는지 궁금하다.
문근영 :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생각들이 다 부정적이고, 불안정하다 보니까 내 몸도 잠식되는 느낌이었다. 한 1년 정도 약간 불안장애 비슷한 증세를 겪었다. 머리에 고민도 많고, 몸도 조종당하는 느낌? 딱히 뭐가 힘들고 괴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자신이 너무 못 미덥고, 매일매일 너무 무섭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Q. 어떻게 그 고민들을 해결했나?
문근영 :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를 해봤다. 이전의 문근영은 누군가한테 의지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지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난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힘드니까 뭐라도 붙잡아야겠더라. 가장 먼저 엄마한테 힘든 걸 얘기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도 말했다. 그러고 나니 지금껏 난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도 남들에게 의지해도 되는 구나.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날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해주고 있구나.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다. 생각들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Q. 이제 서른 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배우로서, 여자로서 서른이란 나이는 굉장히 유의미하게 다가올 텐데 문근영의 30대를 미리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문근영 : 많은 것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살고 싶다. 그게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다. 내 마음 속에 뭔가를 사랑하고, 갈망하는 감정들이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맘껏 자유롭게 사랑하고, 맘껏 즐기면서 보내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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