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연기에 처음 도전한 수지…"진채선처럼 소리가 단단해졌어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검댕 칠을 하고, 뱃심을 키우겠다며 폭우 속에서 악을 써 댄다. 가요가 아니라 구성진 소리로 무대에 오르고, 눈웃음 대신 결연한 얼굴로 관객을 쳐다본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도리화가’에 나오는 ‘국민 첫사랑’ 수지(본명 배수지·21·사진)의 변신이다. 조선 최초의 여성 소리꾼 진채선 역을 맡은 그를 19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제가 마냥 첫사랑 소녀 같지만은 않아요. 성격이 털털한 면도 있고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독기도 있죠. 걸그룹 연습생 시절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이번 영화에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진채선은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다는 당시의 금기를 깬 인물이다. 법도를 목숨처럼 여기던 조선시대에 신재효(류승룡 분)를 설득해 판소리를 배우고 명창 반열에까지 올랐다. 수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채선에게 강하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술술 읽혔습니다. 마지막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연습생 시절 제가 느낀 속상함이 생각나기도 했죠.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셨거든요. 목이 상할 때까지 소리를 연습하는 채선이 제 모습과 겹쳐서 이 역할을 꼭 맡고 싶었어요.”

2010년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한 수지는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대중가요 무대에는 수없이 서봤지만 판소리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를 위해 1년 이상 박애리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수지는 “가요와는 발성법이 크게 달라 처음부터 차근차근 판소리를 익혔다”며 “촬영이 영화 줄거리 순서대로 이뤄져 실력 변화가 그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판소리에는 악보가 따로 없어서 박 명창이 부르는 곡을 녹음해 거의 매일 들었어요. 세세하게 음이 꺾이는 부분을 기억하려고 특히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제 소리가 예전보다 단단해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판소리를 배우고 싶어요.”

그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하게 돼 부담이 됐지만 그만큼 도전하고 싶었다”며 “영화로 많은 사람에게 판소리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촬영 때는 음정보다 감정 전달에 신경을 썼다. 소리꾼이 되고 싶은 채선의 간절한 마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10시간 동안 살수차 물을 맞으며 연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온갖 어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예계에 데뷔하고 나서 몸이 힘든 순간이 많았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 짧은 옷을 입고 야외무대에 서기도 하고, 아프고 피곤해도 촬영 현장에 나갔죠. 그래도 항상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에요. 나중에 돌아보고 후회하는 게 더 춥고 아프잖아요. 채선이 혹독한 노력으로 소리를 완성했듯 저도 꾸준히 발전하고 싶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