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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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에서 이어옴) 2000년대 한국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반인 이장혁 1집은 밴드 사운드로 포크 록을 구현했고 2008년 발표한 2집은 정반대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의 포크 팝을 담았다. 2집을 단출한 사운드와 심플한 편곡으로 어쿠스틱하게 간 것은 1집에서 시도한 다소 과도한 편곡을 자제하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4년 만에 발표한 2집은 내밀한 비밀 일기를 보는 것 같았고 더욱 깊어지고 농익은 이장혁 음악의 정수를 만나게 했다.
이장혁 2008년 공연1
이장혁 2008년 공연1
가슴 시려오는 ‘백치들’부터 몽환적인 피아노연주가 매력적인 ‘오늘밤은’, 심연 저 아래로 침잠하는 싸한 기분이 드는 ‘봄’, 싸이키델릭한 음악실험이 돋보이는 ‘나비’, 실로폰연주의 여운이 강력한 ‘얼음강’은 하나같이 청자의 마음을 시퍼렇게 멍들게 한다. 극한의 슬픔을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는 너무나 슬퍼서 아름다운 이 앨범의 백미다. “’봄’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의 작은 산을 산책하다 만든 노래입니다. 보통 곡을 만들어서 한 달 정도 모니터링을 하는데, 몇 시간 만에 만들었습니다. 코드 세 개로 만든 ‘얼음강’은 가사가 멜로디랑 맞물리지 않아 작업이 가장 힘들었던 곡입니다.”(이장혁)
이장혁 스튜디오 피쳐사진13
이장혁 스튜디오 피쳐사진13
2014년 가을에 발표된 3집은 1, 2집의 장점을 취합한 중간적 사운드를 선보였다. 자신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매미’와 재능은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낮달’까지 수록된 12곡은 빠트릴 곡이 없다. 1집에서 대곡으로 선보였던 ‘칼’은 자신의 모습을 젊은 날의 분노를 삭이며 살아가는 녹슨 ’칼집‘으로 비유해 완성체가 되었다. ‘불면’은 싸이키델릭한 슬라이드 기타솔로가 압권이다.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전달하는 ‘빈집’, 멜라니 샤프카(Melanie Safka)에 대한 오마쥬를 담아낸 ‘비밀’, 비트감이 감겨오는 ‘이만큼’도 좋다.
이장혁 스튜디오 피쳐사진7
이장혁 스튜디오 피쳐사진7
봄비 내리는 청량리 거리에서 만난 한 노인의 모습을 스케치한 ‘노인’은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훈훈한 곡이다. 멍든 청춘의 단상을 아코디언 선율에 그린 ‘레테’에 공감하지 않은 청자는 없다. 이처럼 과거의 외롭고 쓸쓸한 시간들은 그의 신곡들을 통해 생생하게 현재화된다. 즐거울 것이 별로 없는 그의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모두가 공감할 보편성이 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밝은 노래들을 써보려고 했지만 잘 안되더군요. 다행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내 음악에 공감을 해주었기에 계속 노래를 쓰고 부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장혁)
이장혁 2008년 공연9
이장혁 2008년 공연9
비관적 정서가 지배하는 그의 음악은 조금씩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혼란스런 스무살 청년과 인류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인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 그리고 총기 난사사건의 주인공에 천착했던 그의 시선은 살아갈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서글픈 노인과 쉽게 잊히지 않는 오래전의 연인에게로 옮겨져 있다. 그의 슬픈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청자가 많은 이유는 누구나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는 것은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특별한 것을 억지로 만들기보다 그저 살면서 경험한 것들과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흥을 그때그때 떠오르는 멜로디와 어울리는 가사를 메모해 두었다가 노래로 만듭니다.”(이장혁)
이장혁 2015년 벨로주 새해의 포크2
이장혁 2015년 벨로주 새해의 포크2
내 기억의 속의 이장혁은 모자를 쓰고 거의 멘트가 없이 노래했던 모습이다. 오랜만에 쇼케이스 무대에 올랐던 이장혁은 모자를 벗어던지고 수줍게 웃음 짓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적막감이 감돌았던 이전의 그의 공연과는 달리,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수더분하게 입담을 늘어놓는 이장혁의 인간적인 모습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는 이전의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음악이고 팬은 그 다음이라 말했다.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당돌한 대답인가. 사실 이장혁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평단의 평가나 음악 동료들과의 관계, 대중적 인기를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장혁 스튜디오 피쳐사진1
이장혁 스튜디오 피쳐사진1
음악활동과 더불어 언제나 직장생활을 병행한 것도 레이블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의 원형질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만족하는 음악완성을 위해 묵묵하게 걸어온 제 음악적 태도에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이장혁) 그는 피 눈물 나게 노력해도 세상의 폭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해결책이 없는 절망의 정서다. “20대에 원죄의식 같은 걸 느꼈고 그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 하나 조차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안 좋지만 거기에 대해 제가 담담해진 거죠.”(이장혁)
이장혁 영등포역 피쳐사진77
이장혁 영등포역 피쳐사진77
이장혁은 자신의 종교관이나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을 하면 그 뿐’이라는 음악적 태도로 인해 사회참여적인 예술관을 지닌 이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무밴드시절 ‘호로포피아’로 빚어진 논쟁은 그 중 하나다. 또한 음반이 나온 후에는 절대로 다시 듣지 않는 스타일이다. “내 노래는 내 관점에서 내놓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음악은 저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란 이야기죠. 공연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는 해도 음반을 다시 듣지는 않습니다. 앨범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그건 청자의 몫이기 때문이죠.”(이장혁)
이장혁 영등포역 피쳐사진79
이장혁 영등포역 피쳐사진79
이장혁은 금년에 4~5곡이 수록되는 EP를 발표할 예정이다. “시인과 촌장의 ‘비둘기에게’ 와 ‘스무살’을 방송 ‘라라라’에서 했던 분위기로 다시 녹음했습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부른 3집 수록곡 ‘레테’ 버전도 아코디언 소리가 마음에 들어 다시 녹음했고 미발표곡도 넣을 생각입니다.”(이장혁) 쉽게 인기를 얻고 인정받는 길을 이장혁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고집하고, 사람들의 수많은 기대로부터 스스로 등을 돌리는 이유는 그저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꿈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은 보잘것없는 저에게 남겨진 극소량의 희망이며, 그것을 높이 사지 않으면 저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이장혁)
이장혁 영등포역 피쳐사진78
이장혁 영등포역 피쳐사진78
이장혁은 잠이 들면 어김없이 꿈을 꾼다. 깨어나서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꿈들 때문에 숙면을 취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불면’이란 노래도 탄생했다. 예민하고 몽상가적인 기질이 다분한 그의 일기에는 엉뚱한 상상들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꿈과 상상은 그의 음악적 영감과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이장혁의 매끄러운 노래가사는 어린 시절부터 동작도서관의 문턱을 닳아 없어질 정도로 드나들며 섭렵한 독서의 힘이다. 고로 풍요로운 상상력을 안겨주는 매일 꾸는 꿈과 독서는 이장혁의 음악적 오리지널리티와 색감에 원천임에 분명하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팬들에게는 친절한 뮤지션이 절대 아닌 이장혁은 ‘노래 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지속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단순하고 선명한 꿈을 지금도 꾸고 있다.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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